언리얼엔진 때문에 일 때려쳤습니다

뒤집기교주 작성일 23.02.16 16: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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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리얼엔진 관련 글 올릴 때마다 가끔 제가 예전에 올린 글들 기억 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때가 있습니다. 제가 올린 글 보시고 지나가면서 해주시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큰 힘을 얻고는 합니다. 오늘은 왠지 그 분들에게 그동안 좋은 말씀 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요즘은 이렇게 지내고 있다고 업데이트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글을 써봅니다.  

 

예전에 올렸던 글목록 찾아보니 제가 언리얼엔진으로 처음 뭔가 만들고 글써서 올려본게 2021년 3월이네요. 아직 언리얼엔진4로 배우고 있던 시절에 올린 글이었는데 벌써 그게 2년전이라니…. ㄷㄷㄷ 그간 이런저런 일이 많았어서 짧게도, 동시에 아주 길게도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언리얼 배우기 시작하면서 유튜브도 좀 하게 되고, 3등이지만 공모전 수상도 해서 엑박이랑 텀블러도 타고, 원래 하던 일 때려치우고 게임회사로 이직도 했습니다. 이직하고 나서는 게임도 예전보다 합법적으로(?)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었구요. 그러는 동안 첫째 애가 초딩이 되었고 이사도 두번이나 했네요. 최근에는 권유로 한국 인강 회사랑 같이 언리얼엔진 관련 강의도 제작했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처음 언리얼 배울 때는 생각도 못했던 일들도 많이 겪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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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지 일년 됐다고 글 올린게 얼마 전 같은데 정말 시간이 너무 빨리 가네요, 시간만 빨리 가고 실력은 안늘고 허허.  

 

저는 원래 영상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 하던 사람이라, 언리얼엔진을 접하기 전만 해도 3D 소프트웨어는 다룰 일도 없었거니와 제 머리로는 매우 배우기 힘든 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뭐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결과적으로 제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너무 막연히 어려울 거라고 혼자 속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버츄얼 프로덕션이랑 LED 스크린을 써서 촬영하는 XR (확장현실) 촬영방식을 보고 반했는데, 그게 자극제가 되어서 언리얼엔진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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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처음에 배울때는 LED 스테이지에서 촬영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요새는 집을 못 벗어나네요  

 

처음에는 무료라길래 일단 받아서 배워보려고 켜봤는데 막막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 켜봤는데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을 때 느끼는 그 무력감이 참. 그래도 버츄얼 프로덕션에 대한 열망 덕분인지 초반에 포기하지 않고 에픽게임스 공식 강의도 좀 꾸역꾸역 참고 들었습니다. 3D관련, 언리얼엔진 관련해서 기본정보에 충실한 강의들이 약간 지겨워 질 때 쯤 유튜브에서 접했던 강의들 보면서 좀 더 재미있고 세부적인 예제를 따라서 만들어 봤습니다.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공식 강의 조금, 유튜브 강의 조금 보면서 초반에는 재미와 정보를 섞어가면서 배웠던 것 같네요. 졸림을 참아가며 들었던 기본내용 강의들은 나중에 알고보니 다 뼈가되고 살이 되는 내용이었더라구요, 그 기초를 막상 배울 때는 말해줘도 모른다는게 문제.  

 

그렇게 밤에 애들 재우고 나서 취미(?)로 언리얼엔진 배우면서 괜히 이것저것 끄적끄적 만들고, 유튜브에도 영상 만들어서 올리고 그렇게 몇달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쩌다가 에픽게임스 코리아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에 참가했었는데, 정말 운좋게도 3등으로 수상 했습니다. 사실 지금 다시 보면 영상 자체의 완성도 보다는 아이디어에서 가능성을 보고 점수를 주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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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텀블러 진심 너무 탐이 났었는데, 결국 여기에 모셨습니다. 요즘 책상에 앉을 때마다 흐뭇해 하고 있습니다. ㅎㅎ  

 

어디서 이런거 한다더라 말 듣고 얼떨결에 (사실은 참가상 텀블러 때문에) 참여하게 된 공모전이었지만, 공모전에 참가하는 것 자체나, 입상한 것이 좋은 자극제가 되어서 공모전 전후로 언리얼로 뭘 많이 만들었습니다. 3D로 뭔가 만들고 나면, 왠만해서는 잘 안먹히는 아재개그도 야심차게 섞어서 글도 올리고 영상도 올리고 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맘 때부터 유튜브 봐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아재개그가 유효했을까요. 사실 지금까지도 유튜브에 영상 올리는 것 자체로는 뭔가 경제적으로 도움된다거나 하는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영상이나 글을 올리니까 감사하게도 협업 제안 같은게 오더라구요. 그렇게 막 연락이 쏟아진다거나 그런건 아니고 잊을만하면 한번씩 이메일 한통씩 오는 정도였습니다. 제가 만든 영상을 보고 연락을 주신다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맙기도 했고 제가 만드는 3D 환경이나 시네마틱에 대해 어느정도 자신감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학생 프로젝트 부터 시작해서 정말 다양한 종류의 프로젝트에 대해서 연락을 받았었는데, 언리얼엔진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한국 업체와도 연락이 닿아서 3D 환경제작자로 VR 프로젝트에 참여 하기도 했었습니다. VR 프로젝트는 처음 참여해보는거였는데 배울점이 정말 많았습니다. 특히 최적화 관련해서 반 강제로 짧은 시간안에 많은 걸 배우게 되더라구요. 생각해보면 당연한건데 VR은 기본적으로 스크린 두개를 렌더링 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적화에 그만큼 더 신경을 써야하고 그 외에도 기술적인 제한점이 여러가지 있어서 일반적인 3D 프로젝트보다 좋은 퀄리티를 구현하기가 힘듭니다. 최근에는 언리얼엔진 5.1 버전에서 나나이트랑 루멘이 VR에서도 지원하도록 업데이트 되었다는 소식이 있어서 곧 VR콘텐츠도 많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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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게임은 왜 퀄리티가 안좋지에 대한 의문이 싹 사라졌습니다. 다시는 욕하지 않을게요 ….. 사진은 Infinite 라는 우주정거장 VR 체험 홍보 이미지입니다. 제가 참여했던 프로젝트랑은 연관이 없습니다.  

 

작년 중순에는 인디게임 개발사랑 어떻게 연락이 되어서, 파트타임으로 환경제작이랑 레벨디자인을 맡게 되었습니다. 원래 게임 쪽은 경험도 없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던 분야라서 처음에는 좀 망설여졌지만 연락주신 사장님이 프로젝트 설명하는 태도나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보니 충분히 배워가면서 일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만들고 있다는 게임의 아이디어도 마음에 들었었구요. 그렇게 원래 하던 영상제작 일은 일대로 계속 하고, 저녁에 파트타임으로 게임개발 참여하고, 그렇게 두어달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다니던 회사가 구조조정을 했는데, 유능하고 착한 상사는 떠나보내고, 별로 평판이 좋지 않았던 분 아래로 저희팀이 들어가게된 상황이었습니다. 이때다 싶어서 때려치우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게임쪽 일을 풀타임으로 바꾸어서 현재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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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야샤 퇴사 짤, 두고온 팀원들의 시점이 이랬을까 싶습니다…. 죄송….  

 

원래 하던일에 매너리즘 같은 것을 느낄 때쯤 운좋게 언리얼엔진 관련해서 기회가 생기니 구조조정을 핑계삼아 이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계약직이라 공휴일도 없고 휴가페이도 없지만, 현재 맡고 있는 일 자체도 재미있고, 회사사람들도 저랑 잘 맞아서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게임에 대한 대화가 통하는게 너무 좋고, 창조적인 프로세스에 대해서 다들 이해하고 도와주는 분위기여서 예전에 다니던 회사들에 비해 전에없던 충족감 느끼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만드는 게임이 완성되어 갈수록 그 다음 일자리를 걱정해야하는건 어쩔 수 없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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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없고 세계 각지에 직원들 퍼져있는 인디회사라서 요즘은 매일 제 컴퓨터 앞으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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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일 있을 때는 출장가기도 하고 야외에서 여기저기 다닐일이 많았는데, 요즘은 좀 심각하게 운동이 부족해지는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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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게임회사에 일하게 되니까 한가지 큰 단점이 있는데, 바로 게임을 많이 많이 해봐야 된다는 겁니다. 환경/레벨 디자인 작업을 하다보니 필연적으로 게임디자인 자체도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는데, 좋은 게임을 해보는 것이 당연히 많은 도움이 됩니다. 육아도 해야하고 다른 할일도 많은데 게임을 많이 해야하니까 참 괴롭습니다. 결혼하고나서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게임을 많이 못했었는데 요즘은 와이프에게 상황을 잘 설명하고 게임계 선배님들이 피땀흘려 만들어 놓으신 3D 세상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공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기사회생한 싸펑도 하고, 업데이트된 위쳐도 하고, 엘든링도 하고, 회사사람들이랑 발헤임도 하고, 최근에 해본 것중에 Sifu랑 Outer Wilds 강추합니다, 무협 좋아하시는 분들은 귀곡팔황도 추천드려요. 아 물론 이 게임들이 재밌다는게 아니구요, 당연히 공부에 도움이 되는 아주 교육적인 것들이라는 이 이야깁니다. 절대 오해 노노. 와이프님 보고 계시죠? 제가 이렇게 힘들게 밥벌이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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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학용품 준비하는 마음으로 마련한 플스 컨트롤러, 스팀이랑 연결해서 PC 호환되는게 참 혜자입니다.  

 

그렇게 힘겹게 힘겹게 게임을 하고, 게임 개발도 하면서 일하던 중에 한국에 온라인강의 제작하는 업체에서 언리얼 시네마틱 만드는 강의 같이 만들어 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떤 출판사에서는 비슷한 내용으로 책을 내자는 연락도 받았구요. 처음에는 저는 뭐 대단한 전문가도 아닌데 이런걸 해도 되나라는 생각에 둘다 거절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쪽 분들이랑 미팅을 몇번 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홀라당 설득되어서는 이야기 몇번 하다보니까 이미 제 머리속으로 강의 내용을 구상하고 있더라구요. 제가 독학하면서 배웠던 팁들, 영상쟁이가 3D로 오면서 써먹을 수 있었던 연출적 노하우 같은것들을 강의에 담아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인강업체도 그렇고 출판사도 그렇고 양쪽다 대세는 예제 따라하는거라고 무조건 자세하게 예제 따라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시네마틱 하나 만드는 것 따라할 수 있게 만들고 거기에 최대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담는 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강의용도로 만든 예제입니다. 예제도 그렇고 강의 내용도 그렇고, 수강생 분들이 따라할것 생각하면서 내용 구성하려니까 고려할 사항이 정말 많았던 것 같습니다.  

 

출판사나 인강업체분들이 들으시면 좀 그럴수도 있지만, 강의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별로 경제적으로 뭐가 기대되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저 같은 경우에는 어디 홍보할 때에 크게 내세울만한 경력이나, 팔아먹을 회사이름 이런게 없다보니 현실적으로 뭐가 많이 팔리겠다는 기대가 안되더라구요. 그런데도 밤잠 줄여가며, 피같은 게임공부 시간 잘라가며 강의제작에 몇달간 매달린 이유는 제가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막막한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적게나마 제 강의 찾아 들으시는 분들에게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에 같은 것들에 대해서 정리를 해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솔직히 이야기해서 ….. 조금이라도 팔리면 다행이겠지만, 제가 쓴 글을 활자로 엮은 물리적 책을 너무너무 갖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온라인 강의는 이미 제작완료 해서 이렇게 홀가분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데, 책은 몇주 후에 마감일이라 압박이 으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담당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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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전쯤에 언리얼엔진 1년동안 배우면서 생겼던 일들 정리해서 글 올렸던 적이 있는데, 이때만 해도 진로를 어떤 방향으로 잡고 나아가야할지 막막해서 징징댔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흘러흘러 오는대로 살다보니 이제는 취직도 해서 언리얼엔진 배운거 써먹고는 있는데 그렇다고 뚜렷히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이 잡혔다거나 그런건 또 아닌 것 같고, 처음에 언리얼엔진 배울 때 생각한 직종이랑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기도 하네요. 진로는 평생 고민해야 하는 문제인걸까요. 게임쪽도 더 깊이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기도 하고 분야가 정말 다양하고 세분화 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요즘은 제가 언리얼로 할 수 있는 일의 확장을 위해서라도 블루프린트를 제대로 배워야하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1년 즈음 후에는 또 어떤 썰풀이를 하고 있을지 기대반 걱정반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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