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이야... 그녀를 대학 OT때 처음 봤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거야. "아- 이여자가 내여자다" 같은 반도 아니었는데 몇주나 쫓아다녔지. 집이 학교와는 거리가 있는 곳이라 (우리집은 학교 근처) 항상 바래다 주고, 또 아침에 밥도 안먹고 새벽부터 나가서 기차역까지 마중나가고, 어째 어째 해서 결국은 사귀게 되었어. 아. 정말 좋았어. 정말 세상 다가진듯한 기분. 학교도 안나가고 그녀랑 놀러다니고, 시험도 째고... (그녀는 공부하기를 싫어하더라. 시험 있는날도 나보고 놀러가자고 보채고... 난 당연히 시험 째고 놀러가고...) 선물도 무지하게 사줬어. 사달라고 한적도 없는데 그냥 내가 다 사주고 싶었거든. 그때가 5년전이니까 내 한달 용돈이 40만원 이었는데 뭐 37만원은 그녀 만나는데 다 썼을정도로- 내친구들의 표현을 빌자면 정말 골수까지 내줄정도로 난 그녀를 좋아하고 또 사랑했어. 자취방 구하러 함께 다니고... 가구도 같이 보고... 참 행복한 날들이었지. 그런데 말이야... 나랑 같이 있다가도, 예를 들어 카페에 차를 마시러 가도 전화가 오면 항상 나가서 받더라고. 뭐 그땐 그런가보다, 시끄러워서 그런가보다 싶었지. 별 의심할 일도 아니었었고, 또 그녀도 나보고 사랑한다는 말, 좋아한다는 말 했었으니까. 현충일이었나?? 아마 그랬을거야. 레포트가 너무 밀려서 학교 도서관에 갔었어. 한참 하다보니 그녀 걱정이되네. 레포트 했을까?? 않했으면 내가 해줘야 겠다- 뭐 이런 생각들. 전화를 하는데 받지를 않는거야. 정말 몇십번은 했는데 받지를 않는거야. 그냥 꺼져있다는 멘트만 나오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자취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혹시 나쁜 일이라도 당한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한달음에 그녀의 원룸으로 달려갔지. 없더라. 그래서 어디갔을까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갈려는데- 저 앞에서 그녀랑 어떤 남자가 팔짱을 딱 끼고 올라오는 거야. 뭐 뽀뽀도 하고. 그렇게 계단을 올라오더라. 왜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윗계단으로 후다닥 도망쳤지. 다행히 그녀는 나를 보지 못했더군. 그렇게 계단에 숨어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어. 뭐 가서 따져야겠다라던가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그냥 멍하니 아무 생각이 않나더라. 한시간쯤 멍하니 그자리에서 있었을까... 도서관으로 돌아갔는데... 그냥 눈물이 막 나는거야. 괘씸하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그런 감정이 아니라... 그냥 눈물이 나더라. 도서관에서 나와서 집으로 가는 길에... 정말 눈물이 계속 흘렀어. 집에 어떻게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했었어. 그냥 이대로 끝낼까 싶기도 했지만... 나는 그녈 정말 사랑했기에... 붙잡고 싶었어... 그녀가 나를 놓기전까지는 나도 그녀 놓기 싫었거든. 그렇게 그 영원같았던 하루가 끝나고 다음날이 왔어. 그녀는 평소와 같이 행동하더라. 내 손을 잡고, 내 팔짱을 끼고... 함께 걸어가고... 난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그녀는 내가 전화했던 사실도 모르더라. (2001년에는 콜키퍼 뭐 이런거 없었으니까... 전화 꺼놓으면 모름) 그녀는 어떤 얘기도 하지 않았고... 나도 그렇게 그일을 마음에 묻었지... 아니 묻었다기 보다는 그냥 잊으려고 노력했었어. 그러다 여름방학이 되었지. 그녀는 고향으로 내려가고... 나는 알바를 하며 바쁘게 지내고... 매일 매일 전화하고 메일쓰고... 그런 날들... 대학 동기(남자)들이 바닷가로 놀러를 가자고, 가자고... 왠지 께림칙 했지만 그래도 가기로 했어. 그날도 당연히 전화를 하고, 수다떨고... 그녀는 교회 수련회 간다고, 귀찮다고 하더군. 나는 혼자만 놀러가는게 미안해서 놀러간다는 얘기를 못했지. 어쨌든 해운대로 갔었는데, 이상하게도 예약했던 민박이 어찌된 일인지 예약이 일주일 뒤로 되어있던거야. 주인 아저씨가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송정해수욕장 근처에도 민박하니까 거기로 가면 안되겠냐고 묻더군. 싸게 해준다고. 그러겠다고 했고... 그 아저씨랑 같이 송정의 민박에 갔어. 그 아저씨가 지금 방 다섯개중에 한 커플이 방 하나만 쓰고 있으니까 우리보고 큰방 쓰라고 하더라. 그 커플의 남자와도 쇼부가 잘 되어서 우리는 큰방을 쓰게 되었어. 친구들 바닷가에 놀러 나가고... 나는 그때 너무 피곤해서 자겠다고... 방에 남았어... 한참 자다가 작은방 커플들의 소음(......)에 잠을 깼었어. 신경 쓰이기도 하고...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 같기도 하고... 그렇게 잠을 깼지. 마루에 나와 햇볕을 쬐고 있으니... 그녀가 보고 싶은거야... 목소리도 듣고 싶고... 전화를 걸었지... 그런데 말이야... 그 작은방에서 항상 듣던 그녀의 벨소리가 들리네. 그리고는 "아이 C발- 또 전화했네. 어떻하지??"라는 낯익은 그녀의 목소리. 남자가 "그냥 꺼버려"라고 말하자 내 전화기속의 발신음도 "고객이 전화를 받을수 없어...." 라는 녹음된 목소리로 넘어가네... 때마침 내 친구들 돌아오고... 그때... 작은 방 문이 열리면서 그방의 커플이 나오는데... 이야...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그녀가 나오더라... 교회 수련회 간다던 그녀가... 그녀랑 나랑 딱 마주친거야. 그것도 민박집에서... 순간 그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가더라. 정말 어의가 없었지. 그런데 말이야. 난 어떻게 된 놈인지 따라 나서지 못했어. 눈에서는 불이나는데... 맘은 오히려 차분해지더라... 잘됐어... 차라리 잘됐어...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 오히려 내 친구녀석들이 난리를 피우는걸 내가 말렸을 정도니깐. 그 후 그녀와 그 남자는 돌아오지 않고... 왠 다른 여자가 와서 그 방의 짐을 다 챙겨 갔지... 그날 밤 취하고 싶어서 술을 막 마시는데 문자가 왔어. "연락하지마, 나 너 싫어"라고. 뭐- 전화도 않받고... 그 이후로 그녀는 연락이 안되더라. 학교도 주간에서 야간으로 옮기고... 메일도 내가 보낸건 읽어보지도 않고... 군대간 뒤론 소식도 못들었어... 것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