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마에서 잘때는 거의 100% 이러구 자야한다.(난 부대복귀해서 제대로 잔걸 2년2개월동안 평균 계산해보니까, 제시간에 복귀해서 제시간에 취침한 건 한달에 2~3번 정도..?)
뭔놈의 출동이 그리 많았는지...
고참들이야 의자 뒤로 재껴서 자는 특권도 발휘되지만, 인원이 꽉차면 고참들도 얄짤없다. 나만 생각할 수 없지 않은가?
이렇게 자니까, 자다가 깨고 나면 발이 퉁퉁부어서 신발이 안신겨지지..(남들은 장거리 비행하면서 겪는다는 신체경험을 전의경들은 군복무중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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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99년에서 2000년을 넘어가는 겨울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무슨 상황인지는 몰라도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상황이 있었고, 이날도 어김없이 전국의 전의경중대가 서울로 지원을 올 정도로 큰 상황이었었다.
하지만, 이날의 시위상황은 시위대와의 큰 충돌없이, 시위대열을 따라 추수를 하던가 아니면 사전에 시위대보다 먼저 배치가 되서 돌발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긴급이동만 있었을 뿐 별다른 상황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지금 이 문단 음어를 썼다면 한줄만으로 끝날 문단인데 평어로 풀어쓰려니 5줄이나 된다. 지금 이 설명까지 쓰려니 5줄이 넘는다. 한마디로 음어를 안쓰고 평어로 쓰려니까 미치겠다...)
하지만, 거의 종로구/중구로 이어지는 지역의 골목골목을 그냥 걸어서 이동을 했다 그냥 간만에 행군 한번 잘 했다. 군입대전 여자친구와 같이 걸어다닐때나 즐겁지 장비걸치고 시위대의 선동 하는 소음에 서울시내의 매연 마셔가며 골목골목을 이동을 해야 하니, 발걸음이 계속 무거워졌다.
게다가 계속되는 야간근무(연말이 되니까 서울 시내의 각 경찰서로 방범지원 와 달라는 요청도 많이 있었고, 성북구쪽에서는 방화범때문에 사복입고 잠복근무 시다바리 해주러 지원나가고)때문에 잠도 모자란 상황에서 계속적으로 피로는 쌓여가는 상태였기에, 이런 대규모상황에서 계속적인 이동을 해가면서 체력을 소모해가는건 말그대로 짜증이 나는 일일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시위대의 행진코스에서 시위대보다 먼저 이동해서 대기해야 할 장소까지 원래는 기대마를 통해서 이동을해야하지만, 대규모 시위로 인해서 교통정체가 너무 심하지 기대마 역시 1m가는데 한시간은 걸릴 것 같다는 현장지휘부의 판단에 따라 도보로 이동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하지만 걸어다니다보면 몸에서 열이나야 하는데, 체온 회복은 안되고 춥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그와중에도 고참들은 후임기수에게,
"야, 직접 시위대와 얼굴 맞대고 추수를 해야 하는 2기동대 애들보다는 우리가 편할 수도 있다."
"최소한 우리는 시위대가 올때까지는 앉아서 쉴 수가 있잖냐, 게다가 귀도 덜 시끄럽고."
그래도, 이런 대규모시위상황의 장점중 한가지가 사제도시락을 먹을 수 가 있다는 거다. 찜통에서 찐 짬밥이 아니라, 밥통에서 제대로 밥을 한 "인간답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그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도시락의 경우는 반찬이 일단은 부대반찬보다는 화려하다.(짬밥에 관계없이 반찬이 공평하게 돌아간다.) 그리고 끓인 물이 아닌 도시락에 붙어 나오는 생수를 먹을 수 도 있다.
물론 도시락이 매번 시위때마다 나오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식사는 본대 취사반에서(독립숙영 중대는 중대취사반에서) 밥을 만들면 보온식관에 담아 서 출동지로 가지고 나와서 길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보이지 않게 천막치고 배식을 하지만, 사식추진을 할 수 없는 타지방청지원상황이나 이날 같은 대규모 시위에서는 언제 돌발상황이 발생을 할 지 모르므로, 재빨리 도시락을 먹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인간답게 만든 밥을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이라고 했지만, 상황이 빡세지면 개인별로 분배되 던 국은 그냥 식어서 된장냉국을 먹는 경우도 많다.
어찌되었든간에, 이렇게 도시락이 배분되고 재빨리 도시락을 마셔버리고 마주보구 2열 횡대로 차렷자세로 서서 담배한대 피우고, 도시락그릇 정리해서 추진해온 밥차에다가 실어 보내고 다시 무전상황을 들어가면서 대기를 하게 되는거다.(거점배치라고 보면된다.)
"그나마 우리는 밥이라도 마셨지, 시위대 추수하는 2기동대 애덜하고 곧 시위대가 행진할 코스에 대기중인 4기동대 애덜은 굶고 있겠군~ 새퀴덜 뺑이 쳐라~~"
무전병은 "밥먹은 우리 타격대와 바로 교대가 될 수 있으니까 바로 이동할 준비하고 대기!"라고 하지만 이미 배열이 된 대원들이 준비를 할게 뭐가 있는가? 무전병의 지시가 떨어지면 바로 일어나서 이동을 하면 되는데.
무전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시위대가 도로상에 예정에 없이 연좌를 해서 시위를 벌인단다.
4기동대및 시위대를 추수하던 2기동대 중대들은 바로 돌발상황에 대비하기위해 배열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 1,3,특기대 중대원들은 어느정도 알고있다. 이 시간에 이정도 코스를 행진해왔을 정도면 별다른 상황없이 시위대는 명동성당으로 들어가리라는 걸.
그러니 긴장이 약간은 풀릴 수 밖에 없고, 가많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몸은약간씩 떨리지만 내색하면 고참들하고 야밤에 면담해야 된다.
생각해보니 이날 상황끝나면 우리중대는 용산 미8군기지 철야 경비지원들어가야 되는데, 오늘 까딱잘못하면 거기서 야간에 전쟁기념관의 폭격기밑의 아주 어둡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의 집단 면담이 이어진다.
조금 심한 케이스는 전시된 전차와 폭격기 사이의 사각지역으로 바디랭귀지(?)를 하러가는데, 참으로 신기한건 계절에 관계없이 거길 다녀온 사람들은 항상 얼굴이 약간 벌개져있고 땀을 흘리고 있다는 거다. 조금 심하면 다리도 전다.
(육군에서는 이걸 결산이라고 부르더만, 우리는 집합이라고 부른다. 음어 안쓰려 니까 정말 어색하다.. 집합의 음어가~~)
뭐, 나중에는 얼굴과 눈빛만 봐도 바로 답이 나오더라. 분위기는 험악하다는게 딱 느껴지고 "오늘은 몇시에 어디래?"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니까.(요즘은 이런게 없다는데 그말을 틈만나면 믿으려구 노력중이다....)
암튼간에 상황은 시위대가 명동성당으로 전원 들어갔으므로, 상황이 끝난것 같지만 이게 끝난게 아니다. 거의 끝난거라고 봐야 하지만 최소한시위대가 명동성당에서의 집회도 완전히 마치고 해산해야, 부대복귀명령이 떨어지고 출동나온 타지방청 중대는 자기네 지방청으로 복귀하고 서울청 소속 중대들도 부대로복귀하던가 야간근무를하기 위해서 이동을 하게 되는거다.
그나마 시위대가 해산을 하지않고 산발적으로 뭉쳐서 이동을 하게되면, 출동나온 중대들은 부대복귀도 못하고 계속 종로를 비롯한 주요 거점에서 야간에도 지루한 대기를 해야한다.
언제까지냐고? 지하철운행이 끝날때까지....
부대분위기가 좋다면 이때의 대기시간에는 평소 모자란 잠도 자고 할 수도 있지만, 약간의 실수라도 벌어지는 날이면 역시 기대마뒷편의 은밀한 공간에서 은밀한 모임(?)을 갖는다.
이런 은밀한 모임(?)의 마무리는 거의 동일하다. "이 새퀴~ 나머지 자세한 이야기는 부대들어가서 다시 이야기하자."(오늘도 잠은 다 잤군.)
이렇게해서 상황이 종료가 되면서 각중대들은 부대복귀명령이 떨어지고 야간철야경비지원임무를 맡게된 중대들은 바로 각 근무지로 이동을 해야 한다.
그날 해당 기동대 소속 중대가 야간 철야 시설경비라는 임무가 떨어졌음에도 그날 대규모 시위가 있어서 해당 기동대가 시위상황에 투입이되면, 경찰서 소속 방순대도 대부분이 같이 시위상황에 출동을 나오지만 예외적인 경우로는 우리가 서 야할 근무를 우리가 올때까지만 대신 서주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방순대까지 전부 동원이 되면 경찰서에서 행정업무및 교통임무를 맡은 대원들이 대신 근무를 서주는 경우가 있고, 그렇게되면 우리 대신 근무를 서 주는 대원들도 무전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상황종료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우리중대를 호출해서 빨리 교대해 달라고 보챈다.(빨리 복귀해서 쉬게 빨리 교대해 달란다.)
어느날은 지휘관들끼리
"오늘 일선에서 상황막느라고 고생했는데, 그냥 부대로 도망가 버릴까?"
"어차피 기동대장님께서 카바해 주실거 아닌가?"
라는 농담까지 하고는 했지만 교대는 바로바로 해준다.(진짜로 그랬다가는 우리 기동대본부와 해당 경찰서간에 패쌈날거다. 패싸움은 머릿수라는데 머릿수는 우리가 더 많은가? ^^)
이날, 종로에서 용산으로 이동을 하는데 남영동쯤에 우리 옆을 지나가는 기대마가 인천중대 기대마였는데, 자꾸 누가 나를 보면서 손짓을 한다. 누군가? 하고 봤더니 그넘... 내동기다...
경찰학교에서 같은 생활실을 썼는데, 경찰학교에서 각지방청으로 배치가 된 후 부터는 얼굴을 통 볼 수가 없으니(헤어질때 참기분 찹잡하더라. 눈물도 나고.) 거의 1년 반이 다 되서 동기중 한명을 만나게 된거다.
서울에 배치된 대다수의 동기들이야, 상황출동나갈때마다 마주치지만 타지방청동기들은 거의 만나지를 못한다. 그런데, 기대마안에 있으니 입모양만 보면서, 그냥 손을 흔들며 웃을 뿐이지 무슨 말을하랴?
분명히 나보다 한참 고참들이 있는데, 창문을 열구 큰소리로 대화를 한다는건 상상도 못할 일이고 그렇다고 달리는 기대마에서 뛰어내릴 수 도 없는것 아닌가?
그냥 입모양을 보면서 서로 오구 간 대화는
"잘 지내냐?"
"*~ 너두 졸라게 고생하는구나, 다치지 말고 몸조심해라."
그러면서 우리중대 기대마는 삼각지에서 국방부쪽으로 좌회전을하고, 그넘이 탄 중대 기대마는 한강대교쪽으로 직진을하고. 기분이 그렇게 아쉬울 수 없었다.
그 동기넘 그 이후로도 한번도 못 마주쳤다.(그넘 인천의 부평에 있는 중대라던데, 그넘이 있는 중대 옆에 무슨 육군부대가 담을 마주보며 붙어있다. 내 고등학교때부터 친구가 그 육군부대 근무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