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란 건, 참으로 묘하고 재밌는 것이다. 마음 속 어떤 이야기에도
술 한잔이면 '술술'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석규라는 친구에게서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들은 이야기이다.
석규는 대학 동아리 활동을 정말 활발하게 하는 친구인데 동아리는 명목
상 여행 동아리 이지만 실상은 매일같이 모여 술을 푼다고 했다.
그러다가 여름 방학을 맞이해서 동아리 모임의 취지도 살릴겸 여행을 가
기로 결정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 어디로 갈까?"
"제주도 어때?"
"거긴 비용이 많이 들고...여름이나 바다나..계속 어때?"
"아...그러면 우리 시골로 가죠..지금은 아무도 안 살 거든요..."
"그래?"
"지금은...거의 폐가인데...여름이니까 잠 자는 것에는 큰 불편은 없을
거예요..바로 근처에 시냇가 같은 것도 있어서 물놀이도 가능하고..."
"오케이..그럼 거기로 가자.."
서로 의견을 나눈 끝에 한 후배의 시골집으로 여행을 가기로 계획을
잡았는데 석규를 포함해서 남자 4, 여자 3명이 2박 3일 일정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와...이건 무슨...풀밭인데...풀이 완전 무성하다.."
"그러게요...거의 허벅지 높이인데요.."
막상 도착하니 시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낡은 집이었는데 그보다
앞뒷마당에 무성하게 자란 풀에 다들 놀랐다고 했다.
"귀신 나올 것 같네..아주...하하하"
"뭐 어때요..그냥 잠만 자고...그럴 건데.."
석규를 포함한 일행들은 잡초에 놀라기는 하였으나 이내 곧 신경을 끄고
짐을 푼 후 근처 시냇가로 달려가서 청춘남녀끼리 재밌게 놀았다.
"소영아 받아랏!!"
"아잉...그만해...."
평소에 소영이라는 동기에게 관심이 있던 석규는 소영이에게 물장구를
치며 은근히 애정표현을 과시하였는데 내심 이번 여행을 통해 마음을
고백하겠다라는 계획도 있었다고 한다.
어찌 됐든 신나게 놀다가 저녁이 될 무렵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온 일행들은
밥이야 대충 해 먹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소영아 한 잔 받아.."
"나 술 잘 못 마시는데.."
"내 잔이잖아...받아.."
"조..조금만 줘..."
술을 잘 못 마신다는 소영이는 아주 내숭이란 내숭은 다 보여주며 첫 잔을
들이켰는데 후에는 아주 밥그릇을 놓고 마셨다고 한다..-_-;;;
그렇게 술과 함께 밤은 깊어가고 있었고 이내 곧 한명씩 술에 취해 나가 떨
어지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 석규도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으...음...."
석규는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배에서 밖으로 탈출을 하겠다고 '변' 들이
요동을 치고 있었고 석규는 황급히 일어나 휴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아..머리...그건 그렇고...화장실이..."
술 기운에 비틀 거리는 석규는 화장실을 찾았지만 옛날 푸세식 화장실은
이미 막혀서 사용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지 뭐.."
석규는 할 수 없이 뒷마당으로 간 후 우거진 잡초 사이에서 바지를 내린 후
쭈그려 앉아서 일을 보게 되었다.
"아...시원해..."
배설의 카타르시즘을 느낀 석규는 이제 마무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시야에 소영이가 잡혀버린 것이었다.
'헉..'
너무나 쪽팔렸기에 황급히 잡초 사이로 고개를 숙여 버렸고 소영 역시 술
기운때문에 석규를 발견 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소영의 출현에 매우 고민을 하던 석규는 갑자기 천둥이 친 것같은 소리에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 질 뻔 하게 되는데...
~뿌지지직
깜짝 놀란 석규는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다가 약 5미터 앞의 소영과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엇?"
"꺄악~"
그런데 이게 웬걸? 석규는 분명 소영이와의 눈 높이가 같았다.
자신은 분명 쪼그려 앉아 있는데..-_-;
"....................."
"...................."
서로 무수한 잡초 사이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는 상황은,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모두 정지해 버린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고 했다.
~뿌지직
-_-;
그 순간 정적을 깬 건 소영이었고 소영은 창피했던 지 고개를 숙였고
석규는 먼 산을 지긋이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아 어떻게 하지..'
석규는 이미 일을 다 마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어설 수 없는 입장
이었고 소영 또한 피차일반이었다.
"................"
"................."
서로 아무말 없이 바라보기만 하였는데 누구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 설 수도 없는
정말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계속 그렇게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
"저..저기.."
"으...응"
"다 했니?"
"그러면...어쩌지...나도 다 끝났는데.."
"그러면 이렇게 하자..눈을 감고 동시에 일어나서 마무리 하고 서로 함께 눈을 뜨자.."
"그..그래"
석규의 제안으로 둘은 동시에 눈을 감고 잡초 사이에서 일어나 뒷 마무리를 한 후
상대방과 자신이 다 마무리 되면 동시에 눈을 뜨기로 합의를 했다.
"그럼 하나 둘 셋...눈 감아!!"
석규와 소영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뒷처리를 하였다.
"나 다했는데..."
"나도...다 했어"
그렇게 동시에 다시 눈을 뜬 남녀는 서로 어색한 상황을 유지했고 아무말 없이
차례대로 방안으로 들어갔단다.
다들 자고 있는 가운데 방안으로 들어간 두 남녀는 각자 구석으로 가서 조용히
누웠고 어색한 기운이 방안에 맴돌았다.-_-;
"석규야..비밀이야.."
"으..응"
어느 순간 소영이의 말이 들?蹈?nbsp;석규는 '응' 이라는 대답을 함으로써 그 둘
사이에 하나의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다.
물론 그 둘은 더 이상의 여행 기간에도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훗 왜 말을 안 하는데?"
"소영이가 피하네..."
석규는 필자와의 술자리에서 소영이가 부끄러웠던 그 사건 이후로 자신을
의식적으로 피한다고 하여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좋아하는 여자라며..."
"그러게....그런데 날 너무 피해..."
"잘해봐...어쩌면 그것도 인연이네..."
"그...그런건가.."
석규는 씁쓸한 미소를 띄며 마지막 소주 한 잔을 들이켰는데 빈 잔을 내려
놓으며 필자의 등을 '탁' 쳤다.
그리고 필자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어니야...나 그때 눈 뜨고 있었다"
-_-;
...석규는 소영이와의 비밀이 하나가 아니라 두개였단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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