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글] 발신제한

매력만땅 작성일 07.08.21 12:33:15
댓글 4조회 4,367추천 1

ㅋㅋ 재밌어요



3일 전 새벽···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누구지? 생각하며 휴대폰을 바라보니 발신자 표시제한.


“여보세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여보세요?”


여전히 침묵만이 흘렀다.

···장난하냐?;

결국 나는 두 번의 여보세요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원래 나는 발신제한을 싫어해서 받지 않았다.

그런 내가 발신제한을 받게 된 것은 2년 전부터였다.


#

2005년··· 난 그때 울산에서 살고 있었는데 늦은 밤 전화가 왔다.

발신자 표시제한.

내가 그 전화를 받은 것은 힘든 마음에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잘 지냈어?”


전화를 받자마자 상대가 말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나 역시 “그래. 넌 잘 지냈어?” 라고 했겠지만···


“누군데?”

“나 누군지 몰라?”


······너 발신제한으로 걸었거든?;


“목소리도 잊었나보네.”

“아니야. 그냥 해본 말이다.”


발신제한이지만 내가 그녀의 목소리를 잊을 일이 없었다.

··· 사실 긴가민가했다;


“아직도 술 많이 먹어?”

“아니.”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옆에 놓인 소주병을 자연스럽게 치운다.

그리고 음악의 볼륨을 더욱 크게 올렸다.

항상 슬프거나, 우울한 음악을 주로 듣는 나.

멜로디는 그녀의 목소리와 하모니를 이루었고, 추억이 비가 되어 내린다.


#

그녀는 언제나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제발 술 좀 그만 먹어! 그리고 담배도 좀 줄이고! 그러다 일찍 죽으면 어쩌려고?”

“뭐··· 내 팔자지.”

“그게 니 여자한테 할 말이다?”


사람과 술, 그리고 담배와 대화를 유독 좋아하는 나에게

단단히 결심했는지 화난 표정으로 밀어 붙이는 그녀다.


“오빠. 진짜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거든? 안 그래도 몸도 좋지 않은 사람이 술을 마셨다 하면 아침까지가 기본이고, 담배는 하루에 두 갑을 피질 않나··· 안 그래도 다혈질에 고혈압인 인간이 그러다 한 방에 뒤져!”

“야··· 글 쓰다 보면···”

“핑계 대지마?”

“네;;”


그런 날들이 반복 되었다.

그녀를 데리고 가든, 혼자 가든 나는 사람을 좋아했고, 술을 즐겨 마셨다.

그러면 그녀는 또 걱정이 되고, 화가 나서 잔소리를 했다.

뭐든지 적당을 넘어 과하게 하는 나였기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야. 여자들 좀 그만 만나.”


그녀는 화가 나면 오빠가 아닌 야라고 불렀다.

····그러고 보니 오빠라 부른 적이;;


“걔들은 동생이고, 친구고, 누나고, 독자들이고···”


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기에 남자, 여자 구분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술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고, 같이 밤새는 일도 허다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싫어했다.

그러고 보니 여자를 좀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너 만약 내가 다른 남자들 만나서 밤새 술 먹고 놀면 기분 좋아?”

“내가 믿는 사람들이면 상관없어.”

“난 그 사람들 안 믿거든! 너도 술 취하면 믿음이 안가!”

“야··· 나처럼 순수한 사람이 또 어디 있···”

“죽는다?”

“네;;”


그러고 보니 나랑 순수는 너무 억지였다;


문득 실소가 나왔다.

그녀가 독자로 나를 만날 때···

자신이 믿지 못한다는 사람들의 하나였으니 말이다.

독자에서 나를 바라 볼 때와, 내 여자가 되어 바라 볼 때의 차이였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체 이별을 선택했다.

아니, 노력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달랐고···


“잘 지내고··· 술 많이 먹지 말고, 담배 줄이고 ···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싸우지 말고! 좀!! ··· 혼자 울지 말고··”

“너도···”


나는 웃으며 그녀를 잡지 않았다.

술, 담배를 좋아하고, 직장도 안 다니고 글만 적으며, 자기보다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고···

다혈질에, 한번 화나면 앞뒤 볼 줄도 모르고, 자주 다치고, 걱정만 하게하고,

그녀 표현처럼 독불장군인 나를 만나며···


많이 울었으니깐.

많이 힘들었으니깐.

많이 노력했으니깐.


나는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

“오랜만이다··· 그치?”

“어···”


그녀의 목소리에 추억에서 벗어나 대답했다.

머릿속에서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것도 많은데

대답 밖에 할 수 없었다.


“오빠랑 헤어질 때··· 이 사람은 내가 잡을 수 있는 남자가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어.”


········핑계는;;


“물론 내 말도 안 듣고 그러는 너한테 화났던 것도 있었고, 그 놈의 울컥하는 성격이 힘들기도 했지. 헤헤. 그냥 그랬던 것 같아. 사랑의 시작보다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을 오빠도, 나도 그때는 몰랐나봐···”


만들어가는 과정.

그래··· 그때 난 그것을 몰랐었지.


“그때 마음과는 달리 너무나 쉽게 헤어졌지만··· 많이 울게 되고 술을 찾게 되더라···”


그녀와 가까운 사람을 통해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아니, 듣지 못했을지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지냈으니···


“그냥·· 걱정되어서 전화해봤어. 언제부터인가, 오빠가 떠올라도 더 이상 눈물이 안 나게 되더라. 그런데··· 꼭 한번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그래서···.”

“내 목소리가 매력적이기는 하지···”

“야··· 죽을래?”

“미안;;”


곧 그녀는 애써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 좋은 사람도 만나고 있고 잘 지내. 그러니 오빠도 혼자라 생각하지 마··· 네 걱정 해주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데 그런 생각하면 나쁜 놈이야.”

“나 원래 나쁜 놈이잖아.”

“알긴 아네···”


··········이봐;;


“그러니 제발 잘 지내··· 어떻게 넌 헤어져도 사람 걱정하게 하냐···”

“걱정 하지마. 잘 지내고 있어. 글도 적고 있고, 여전히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술과 담배는 줄이고 있어. 그리고 나 역시 너를 생각해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아. 그러니 이제 내 걱정 안 해도 돼. 너에게처럼 나에게도 추억이니···”


전화를 끊은 뒤··· 나는 한참동안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난 아직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먹지 말라는 술은 더 많이 마셨고, 두 갑 피던 담배는 세 갑으로 늘었으며···

잊어주기를 바라지만 심장에 박힌 추억은 떠나질 않고···

잘 지낸다고 했지만 그럴 자신도 없었다.


“네가 돌아와 준다면 술과 담배 다 끊으려고 노력 할 텐데··· 네가 싫다한 것들 모두 고칠 수 있는데··· 너무 늦었네··”


그 날도 난 그녀가 좋아하던 애절한 멜로디와 술, 담배에 취해 그녀와의 추억에 머물렀다.


#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뒤···

친구랑 술을 마시는데 녀석이 발신 제한으로 전화했다.

그리고 한참을 들고 있더니 전화를 내려놓더니

씁쓸하면서도 만족한 표정으로 웃는다.


“좋냐?”

“그럼··· 그냥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받는 사람도 좋아할까?···”

“싫다면 받지 않겠지···”


녀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술을 마셨다.

나 역시 받지 않을 때도 있지만··· 받은 적도 있었다.

친구의 말처럼 싫다면 모두 받지 않아야 할 텐데 말이다···


“넌 한 적 있냐?”


친구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난 그냥 걔 싸이를 보고··· 혼자 술 마시며 추억하는 편이다. 그 후로 한 번도 내가 전화한 적이 없네···”

“그래?”


전화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난 매일 들었다.

휴대폰에 그녀가 음성을 남겨 주었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음성··· 그리고 이별 전··· 울먹거리며 걱정을 담은 음성.

난 하루에도 수없이 그녀의 음성을 반복해서 들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그녀에게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날···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술이 취해서라는 변명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저장된 목소리가 아닌···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결국 나는 친구에게 발신제한을 어떻게 하는지 물어본 후 전화를 걸었다.

내가 자주 듣는··· 그녀가 좋아하던 음악이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여보세요?”

“··········”

“누구야···?”

“·········”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말···



“오빠··· 잘 지내지···?”



전화를 끊고 술잔을 바라봤다.

술잔에는 술이 아닌 그녀가 담겨 있다.

내가 술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처음에는 힘이 들어서, 사람이 좋아 마셨지만···

언제부터인가··· 술잔에 추억이 담겨 있었고,

곧 술잔을 비운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어··· 잘 지냈어.”




왜 사람들이 그리움에 발신제한으로 전화를 하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출처:http://cafe.daum.net/siniistears 『시니is눈물』

글쓴이:시니is

매력만땅의 최근 게시물

엽기유머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