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새벽에 잠이 깨었다.
' 밤새.. 별일이 없었나?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자 마자 누군가를 걱정해 본 일이 있었던가 ?
난.. 시계를 쳐다보았다.
대략.. 새벽 6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몇번의 망설임 끝에..
전화기를 들었다.
" 여.. 여보세요?
" 네. 마틴씨?
" 하.. 누...누나.. 밤새 별일 .. 없었나 해서..
" 네.. 뭐..조금 허리가 뻗뻗하고.. 피곤한 거 외에는
의자에 앉아 잤더니.. 훗..
뭔가 불안감 감이 계속 들었는데..
그제서야 맘이 놓이는 듯 온 몸에 힘이 풀리고..
갑작스레 졸음이 몰려왔다.
" 다행이네..별일 없어서.. 그럼 전.. 이만 잘께요.
'뚝..!
밤새..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불안감에 깊은 잠을 들지
못했었나 보다.
아침나절 그렇게 통화를 하고 난 후
난 오전 11시가 넘도록 곤히 잠을 잘 수 있었다.
학생이라서 다행이다.
정말.. 아직 대학생이라는 가죽을 덮어쓰고 있어서..
무엇보다 다행이다.
아무 할일도 없지만..
아무데도 갈데도 없지만..
학교라는 갈 데가 있기에..
백수소리는 안 들어도 되니까..
-_-;;
방학이라 텅빈 교정을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도서관에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도대체가.. 여기 오는 인간들은..
뭐하는 인간들이냐..
이 좋은 시절에.. 허구헌날 여기 틀어박혀서..
어쭈구리.. 저기 저 녀석은 어제도 저기에 앉아 있더니..
밤이라도 샌 거냐..
간밤에 내린 눈으로 천지는 하얗게 뒤덮였고..
뚝 떨어진 기온으로 거리는 어제보다 활기가 없었다.
이 놈의 크리스마스가 빨리 지나야 될텐데..
붕 떠있는 기분은 어제나 마찬가지였다.
뭐 딱히 다를 것 없는 연말시즌이라는 걸 알면서도
누군가의 벨소리에서 들려오는 캐롤만 들어도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 해 지는게..
그나마 겨우 다잡았던 공부도..
도저히 되질 않았다.
군대를 일찍 갔다온 바람에..
복학한 동기생도 거의 없었다.
아직 후배들이야 도서관 들락거릴 정도로 다급한 건 아니고..
글타고 취업못해 빌빌거리는 선배들 한테
놀자고 조를 수도 없는거고..
이래저래.. 참.. 외톨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 어.. 경운이냐?
" 아침부터 웬일이야?
" 아침은.. 임마.. 지금 정오가 넘었는데..
" 어.. 그러냐..난 세시까지 아침이야.. 이따 세시에 전화해..
-_-;;
얼마전에 전역을 한 동기..
연말이라 허구헌날 술판에.. 매일같이 저러는 모양이다
하긴.. 내년에 넌 3학년이지만..
난... 4학년이다.. 체감으로 느끼는 감 자체가 다를꺼다.
" 어.. 선배.. 잘 계시죠?
" 어.. 그래.. 지금 연말이라 마감때문에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알았지?
몸종처럼 날 부리더니.. -_-;;
취업하고는 거의 쌩이다.. 나쁜시키.. !
다들..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름대로..
텅빈 운동장 한켠에 쭈그리고 앉았다.
끉어보려 맘 먹었던 담배를 다시 꺼내 물었다.
' 아... 외롭구나... 진짜 사무치도록....!!!!!
정말.. 내 맘을 딱 표현할 수 있는 한줄의 문장이었다.
" 어디.. 너두 언어연수나 한 1년 갔다올래 ?
엄마의 의외의 제안.. !
" 어? 돈 있어?
" 뭐.. 쪼들려도 만들어 봐야지.. 요즘은 취업에 영어가 필수라매?
" 도움이 많이 되긴 한다는데.. 글쎄..
모르겠다.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닌데.. 없는 살림에 괜히
그런거 하긴 싫어.. !
한동안 맥없이 살아가는 내 모습이 딱한지..
엄마는 나름대로 큰 결심을 한 듯 .. 그렇게 얘기를 꺼냈다.
" 만나는 친구들은 있냐?
" 아니..아직 내년 봄이나 되야 제대 하잖아.. 애들..
" 늬 친구들은 죄다 군대를 늦게 갔데? 친구끼리 비슷비슷하게
가드만.. 어째 너 제대할때 군대를 가냐..다들?
외롭게 지내는 게 엄마 눈에도 보였나 보다.
" 괜찮으니까.. 한 1년 갔다와.. 휴학계 내고..
그래도 친구들이랑 똑같이 졸업하네..뭐
결국.. 난 1년 언어연수 결심을 내렸고..
진철이가 가 있는 캐나다로 가려고 결심을 정했다.
이것저것.. 연수생활에 필요한 자료들을 알아보고
연수에 필요한 절차와 서류들을 알아보았다.
며칠 바쁘게.. 아니.. 사는 거 처럼 사는 거 같았다.
" 여보세요? 네. 아.. 누나..
며칠만에 걸려온 그녀의 전화였다.
그녀의 퇴근시간에 맞춰 난 그녀 회사 근처로 갔고
6시가 조금 넘자 그녀는 다른 직장인들 처럼
커다란 건물에서 마치 쏟아지듯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 아.. 날이 점점 춥네.. 겨울은 겨울인가보다.
그녀는 내 차를 한 눈에 알아보고 반가운 얼굴로 차에 올랐다.
" 잘 지냈죠?
" 네.. 누님은?
" 뭐.. 연말이라 마감한다고 바쁘지..
" 전.. 뭐.. 심심해서 미칠지경.. ㅋ
" 치..그래서 영화보자 그러니까 냉큼 나왔네?
난.. 보고싶어 할 줄 알았는데.. ^^*
대충 패스트푸드로 저녁을 때우고
미리 그녀가 끉어놓은 영화표를 들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 참.. 누나도 어지간히 외로운 모양이야.. 동생친구나
데리고 다니면서 영화보고..
" 치.. 자기는.. 두 살이나 많은 여자 나오란다고 냉큼 나오면서..
하긴.. 참..
영화가 시작되었고..
실내는 어둠이 깔리고 이내 웅성이던 소음도 사라졌다.
환한 스크린이 밝혀지자..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머리가 까만 바둑돌 처럼 보였다.
다들.. 앉아있는 형태로 보아..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대부분이었다.
" (속닥모드) 왜 영화는 혼자 보면 안되는 거냐고..그지?
" 그러게요.. 죄다 쌍쌍커플이네.. 쩝..
" 이러니.. 내가 영화를 좋아해도 혼자는 못오고 동생친구나
부르게 만들죠.. ^^;;
" 저..저두요..^^ㅋ
영화가 시작되고 한 30분이 흘렀을까?
그녀의 머릿결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윽한 향기가
코끝에 와 닿았다.
웬지 싫지 않은 그 기분..
그리고.. 다리를 통해 느껴지는 매끈한 그녀의 다리에
닿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우린 제법 가깝게 밀착이 된 상태에서 영화를 보았고..
영화가 끝이 날 무렵에는..
우린 나란히 어깨까지 맞닿아 있는 상태가 되었다.
불이 켜지자.. 괜히 뻘줌해지는 나..
조금은 상기된 그녀의 얼굴로 보아..그녀도 약간..
" 태워줄꺼죠?
" 그럼요.. 제가 그런 매너도 없을까봐?
" 아니.. 난 또 저번처럼 혼자 사무실에 자러 가게
내버려 둘줄 알았죠..
" 에? 그..그 때는..
그녀는.. 아마 그 때 일이 조금은 섭섭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밤에 내가 해 줄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그저 무사안일을 기원해 주는 수 밖에는..
도심을 빠져 조용한 길로 접어들면서
난 차에 음악을 틀었다.
" 와.. 음악도 나오네?
"-_-;;; 그..그럼.. 아무리 똥차지만..
어두운 밤거리를 내다보며 그녀는 입가에 조금의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이 없었다.
하나 둘.. 가로등 마저 뜸해지는 시골길로 접어들었고..
난..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 저기.. 운전할때만 안경써요?
" 네.. 난시가 조금 있어서..
" 평소에도 쓰지..?
" 왜.. 어울려요?
그녀는.. 잠시 텀을 두고 생각을 하는 듯..
" 무척.. 옆에서 운전하는 모습이.. 섹시해 보여.. ㅋ
순간.. 길가로 차를 받을뻔 했다. -_-;;
" 무..무슨 그런 망언을.. -_-;; 나..남자가 섹시하다뇨..
" 좋은 말인데.. 뭐...남자가 섹시해 보일때도 있지..뭘..
웬지 ..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 결혼한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그렇게 싫다던 남자와
어떻게 결혼할 생각을 했냐니까.. 그 친구 말이..
집에 태워주는데.. 평소엔 그렇게 밉상이더니
그 날 운전하는 옆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결혼했다고..
그때는 그 말에 미쳤다고 웃곤 했었는데..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네..훗..
그녀는...그러면서 계속.. 시선을 놓질 않았다.
" 그만봐요.. 거..참 부담스럽게.. 목에 힘주고 있을려니까
되게 신경쓰이네..
" ㅋㅋ 미안.. 미안해요..
어느 덧 차는 다시 비포장 길로 접어 들었고..
" 주말에.. 뭐 일 있어요?
" 아니.. 별로..
" 오후에 계모임 있는데.. 한 9시면 끝나는데..
" 에? 내일 또 기사 해 달라구?
" 뭐.. 그렇다구요..^^;
그녀의 집에 다달았고..
" 누나.. !
" 네?
" 내일.. 집에 갈때 전화해요.. 나갈테니까..
" 아..아니..괜찮아..그럴필요 없어요..
그냥 한 소린데 뭐..
" 누나 또 저번처럼 맘에 담아두고 그럴려구..
" 뭐...그럴수도...^^;;
" 암튼 내일 봐.. 들어가요..
집으로 가는 동안..
점점 더. . 가까워 지는 듯한 우리사이가..
웬지 연인이 되어 가는 듯한..
기분좋은 불안(?)감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
다음 날.. 오후가 되자..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어디에요?
" 나 시내왔어요.. !
" 약속 7시라면서...
" 그냥.. 일찍 나왔어요.. 나올래요?
약속시간보다 두어시간 일찍 나왔다는 말에
난 옷을 입고 외출준비를 했다.
양말을 신으며.. 문득..
헛 웃음이 나왔다.
' 지금.. 내가 뭐하는 거야?
베이지색 트랜치 코트에 빨간 목도리를 하고
검은색 털모자를 쓰고 서 있는 그녀가 보였다.
괜히 웃음이 막 흘러나왔다.
* 처럼..
" 어디.. 주차하고.. 갈때가 있어요
" 어디?
" 암튼 가요..
난 그녀를 따라 백화점으로 갔고..
" 저번에 보니까.. 손 시려 보이던데..
맨날 신세만 지고.. 장갑하나 사줄려구..
" 에이..뭐 또 뇌물 먹이고 무슨 신세를 질려구..
됐어요... 누나
" 아..아냐.. 정말.. 사주고 싶어서 그래요..
한사코 됐다며 거절하는 나를 불러 세우고
그녀는 결국 자기 취향대로 갈색 가죽장갑을 골랐다.
" 자..껴봐.. 안에 토끼털이라 따뜻해..
" 아.. 나 손에 땀이 많아서 이런거 싫은데..
" 이리 내봐.. 손등 튼거 봐.. 땀 많이 난다고 이 추운데
맨손으로 다니니까..이렇죠.. 손 이리 줘봐요
그녀는 그 자리에서 가방을 열어 핸드크림을 꺼내더니
손등에 발라주었다.
무척 걱정스런.. 표정으로..
마치.. 엄마가 어린 아이의 튼 손에 로션을 발라주는 듯한..
걱정스런.. 그런 얼굴을 하고.
" 이제 장갑 꼭 끼고 다녀요.. 애도 아닌데 손이 다 터가지고..
바깥으로 나오니..
장갑의 위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 허.. 따시긴 하네.. 주머니에 손 안 넣어두 되고..
" 그죠? 하여튼 남자는 다 똑같애.. 하나같이 일일이 챙겨야 되고..
어느 덧.. 그녀는 내 팔짱을 끼고 걷고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늘 그랬던 것 처럼..
너무도 쉽게 그렇게 해 버리니.. 당황할 겨를도 없었다.
" 시간 괜찮으면.. 나랑 같이 가요 모임에..
" 에이.. 거길 어떻게 가요.. 누나 친구들 계모임인데..
" 괜찮아.. 미리 얘기 했어.. 귀여운 동생 한명 데리고 간다구..
" 귀..귀엽긴 누가.. -_-;;
" 다들.. 대 환영인데..뭐.. 가요.. 그다지 의미있는 모임도 아니고
밥먹고 수다떠는 그런 가벼운 자리니까..
결국.. 난.. 그녀의 모임자리에 따라가게 되었고..
" 오.. 진경이.. 소문에 영계 키운다더니..
-_-;; 우왁스럽게 생긴 누나의 친구분이..
대뜸 나를 보며 한 마디 했다.. !
" 인사해 이쪽은 내 동생 철이 학교 선배..
그리고.. 이쪽은 제 친구들..
" 잠시 어색한 인사가 오고 갔지만..
여자들만 모인 자리이다 보니.. 쉽사리 분위기는 반전되었고.
난.. 그녀의 옆에 찰싹 붙어앉아 나오는 음식만
조용히 먹어대고 있었다.
" 원래.. 조용한 성격이에요?
좀 전에 우왁스럽게 생긴 누님이 첨으로 말을 걸었다.
" 뭐.. 딱히 제가 할 말이 없는 거 같아서..
" 아무 얘기나 해봐요.. 진경이 어디가 좋아요?
" 예??
그녀의 말에 누나는 방석을 집어 던지며
" 그냥 동생이야.. 왜 자꾸 애를 놀려?
-_-;; 애.. 애라니.. 이젠 애 취급을 하는 구나..
" 야.. 무슨 누나 동생간에 존대를 쓰냐.. 부담스럽게..
" 그..그야..뭐.. 아직 말 놓을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니까.
" 어이..동생.. 말 놔도 되지?
" 그..그럼요..편..편하게 하세요.. 하하..^;;
그녀는 내 눈치를 살폈다.
난 최대한 안 불편한 척.. 했지만..
예리한 그녀의 눈길을 피하긴 힘들었다.
" 우린 그만 일어날께.. 마틴씨가 너무 불편해 해서..
" 저..전 괜찮아요.. 이러면 더 불편하잖아요..
" 그..그래..우리도 장난 그만할께..
그녀는 친구들이 나를 조롱하는 거 같아 보였는지..
괜히 화까지 내며 언성을 높였다.
그럭저럭 분위기는 다시 화기애애해지고..
그녀도 친구들과의 대화에 즐거운지..
나를 잠시 잊은 듯.. 평소와 조금 다른 모습이 엿보였다.
한참을 그렇게 떠들다가..
" 여자친구 있어요?
조신해 보이는.. 너무도 조용하던..
누나 친구의 질문..
그거 하나로 다시금 이야기의 주제는 나로 향했고..
그 질문 하나로..
그녀와 나의 관계는....
" 아.. 아뇨..
" 치.. 경아..너 솔직히 말해봐.. 둘이 사귀는거 정말 아냐?
" 아.. 진짜..나 간다..자꾸 그럼?
" 이상한데.. 니가 모임에 남자를 다 데리고 오구..
지 친동생도 안 데리고 오는 애가.. 동생 학교 선배를
금남의 지역인 여기까지 친히 모시고 왔다는게.. 이해가 안간다?
그녀는.. 애써 웃음을 보였지만..
뭔가 조급히 핑계거리를 찾는 걸로 보였다.
" 내가 알다시피 집이 멀어서 이 동생 도움을 자주 받거든..
그래서 오늘도 나온김에.. 감사의 선물도 하나 주고..
그리고.. 늬들이 몇년지기야? 내가 사귀면 사귄다고
당당히 말하지.. 그런걸 숨길까? 부담없이 같이 온거니까.
제발 이제 신경좀 끄자..응?
조신하던 그녀의 친구..
" 그럼.. 여기 동생분도 그래요?
아....
그.. 질문 한마디에... 누나의 표정은 급속도로 변했다.
마치.. 마치.. 정말 궁금하단.. 표정..
하..하필이면.. 이런 자리에서..
이런 난감한 질문을..
그냥 아니라고 해 버리기엔..
누나의 눈빛을 대하기가 두렵고..
무엇보다.. 점점 더 변해가는 내 감정에 반하는 거 같아 두렵고
진짜라고 말하기에는..
만약 나 혼자 김칫국 이었으면..
이제 누나는 두번다시 연락조차 하질 않을테니..
정말.. 사람의 맘을 꿰뚫는 그런 기계같은 게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다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내 대답만 기다리고 있고..
누나 역시 표정은 심드렁한 듯 보여도..
은근히.. 어떤 말이 나올지 기대를 하는 표정인거 같기도 하고..
난..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 소..솔직히.. 좋아합니다.
-3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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