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제대를 하고 나니까 할 일이 너무 많네요.
무슨 할 일이요?
놀아야죠. 못 봤던 비디오 봐야죠. 만화책 봐야죠. 친구들이 술 사준다고 그러죠.
아버지가 고기 사줬죠.
참 저번에 일교과 덩치하고 쌈났던 선배있죠. 결혼했더군요. 그때 여자선배랑...
좀 빠르지 않나? 하하.
사고쳤다는 군요. 무슨 사고를 쳤을까?
일주일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습니다.
새학기가 며칠밖에는 남지를 않았습니다. 오늘은 학교를 갔지요. 학교 분위기 파악을
해야하니까요.
수강신청을 무얼할까도 알아봐야 하고, 혹시 그녀와의 만남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캠퍼스 모양새는 변하지 않았지만 느낌은 다릅니다.
학교에서 그녀는 * 못했지만 추운 날씨에 따사한 햇살이 기분을 맑게 합니다.
이 캠퍼스에서 언젠가는 그녀를 보게 되겠지요. 훗훗.
또 버스가 늦네요. 내가 타는 버스는 아직도 그 시간대로 운행을 하나봅니다.
꽃집과 레코드방... 분위기 있습니다.
꽃집에서 꽃한송이를 사서 새어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누구를 기다려 보는 것도
낭만이 있을거 같습니다.
새어나오는 음악이 참 좋네요.
부대내에서는 찢어지는 듯한 스피커폰으로 최신유행가만 들었습니다.
이렇게 맑고 경쾌한 음악이 좋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내 맘을 새롭게 합니다.
제목도 모르지만 하나 사볼까요?
어... 잘못 들어왔습니다. 그녀가 왜 저기 있습니까? 도로 나갈까요?
민이: 오늘이 여기 아르바이트 마지막날입니다.
좀더 일찍 그만 두려고 했지만 주인아저씨가 붙잡고 놔주지 않는 바람에 며칠 더
했습니다.
오늘 급료를 받겠네요. 오후가 한가롭습니다.
바깥이 아직 춥겠지만 안에서 보는 밖은 햇빛으로 인해 마냥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집에서 들고 온 테프나 틀어 볼까요? 크렌베리스 1,2집 편집하여 다시 녹음한 것입니다.
어... 그가 들어왔습니다. 그가 여기는 왠일일까요?
또 나를 보더니 머쓱해 합니다. 나가버리기만 해...
나갈려고 합니다. 하. 바봅니까? 아니면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겁니까?
"뭐예요?"
어머. 내가 왜 짜증스런 어투로 그에게 말을 건넸을까요?
잘한거네요. 그가 나갈려다?br>?다시 들어왔습니다.
"바... 밖에 나오는 음악 뭐예요? 그거 하나 주세요."
그의 모습은 군대가기 전의 모습과 다를게 없군요.
단지 조금 까매진 피부와 짧은 머리만 그때와 다릅니다.
'계철씨? 고개 좀 들고 떨지 말고 말해요.'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저 또한 그가 내 가까이로 오니 머뭇거려 지네요.
"뭐더라? 잠시만요. 못 찾겠습니다. 어딨더라?"
호호 나도 좀 떨고 있네요.
"어.. 없으면 놔두세요. 그냥 다른 거 살께요."
"잠깐만요. 분명히 이 근처에 있을거에요. 왜이리 안 보이는거야?"
"그냥 이거나 하나 살께요."
그가 손에 들은건 나조차도 생소한 이름의 시디였습니다.
그는 저런 쪽의 음악을 좋아하나 보다. 기억해 놓아야지... '메틀리 크루?'
그가 계산을 하고 별말없이 나갈려고 합니다.
밖의 스피커에서 들리는 노래를 듣고 그가 이곳으로 들어온 게 틀림없습니다.
"저기요. 크렌베리스 좋아하세요?"
나의 이 말에 그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예?"
호호 그의 눈망울이 귀엽습니다.
"좋아하시면 이거라도 가지고 가실래요?"
뭐 내가 들고 온 테잎이니 그에게 주어도 됩니다.
"아. 예... 얼마에요?"
"호호 이건 제가 가져온 거에요. 그냥 가져가세요. 듣고 싫증나면 주세요."
철이: 몸만 들어왔다 아무 말 없이 아무 것도 안사고 그냥 나갈려니 그녀가 황당한가 봅니다.
그래서 밖에 흘러나오는 노래가 들은거 하나 주라고 그랬죠.
수민씨? 조금 떨고 있나요? 쩝. 하기야 내가 편지보낸걸 그녀는 알 겁니다.
게다가 군대에서 내가 구라까지 친걸 그녀가 알고 있죠.
빨랑 나가야 하는데...
그녀가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거 같기는 한데 상당히 서툽니다.
"못 찾겠으면 그만 두세요. 딴거 사면되니까요."
그냥 바로 앞에 있는 시디 아무거나 하나 집어들었습니다.
"이거하나 주세요."
계산을 하고 돌아섰습니다. 좀 아쉽네요. 이렇게 마주치기도 쉽지는 않은데...
'외국은 잘 나갔다 오셨어요?'
그래 이 말이라도 한마디 물어봐야 겠습니다. 심호흡 한번만 하고 돌아서자.
하하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감사합?br>求?
"언제쯤... 제대는 언제 하셨어요?"
그녀가 나한테 질문을 했습니다.
짝사랑 해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그 사람과 대화를 할 때의 그 느낌...
"일주일정도 됐습니다."
"예... 이번 학기에 복학하시죠?"
"예... 여기서 아르바이트하세요?"
"예... 오늘이 마지막날인데..."
"예... 학교 아직 다니시죠?"
"예... 그럼요."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좀 어색하기도 하고 손님이 들어와서 나와야 했습니다.
내딴에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 그녀와 대화의 시간을 가진 거 같습니다.
그녀가 준 테이프, 잘 듣겠습니다.
버스정류장 앞 꽃집 그리고 그 옆에 내가 우연히 있었으면 하고 기대했던 음반점...
그 속에서 그녀와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내가 산 시디는 우리형을 주었지요.
대학원 들어간 형이 그 음악을 듣더니 반 미쳐버렸습니다.
우악! 앗싸! 상관없습니다.
그거 듣고 형이 미치던지 발광을 부리던지 난 상관 않고
그녀가 준 테이프를 내방에서 이어폰으로 들으면 되니까요.
민이: 호호 그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 대화를 가져보게 될 줄이야.
이제는 학교에서 만나도 아는 척을 할 수 있겠죠?
많이 기대를 하고 그렸던 그를 우연히 생각없이 만나서 기분이 좀 그렇지만
이제는 인연이 맺어질거란 확신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근데 뭔가 빠진게...
아 맞다. 그에게 이 기회에 내 이름을 밝힌 편지를 줘 버릴 건데 그랬습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오늘 급료도 받는데 그걸 주었더라면 완전한 만남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우연 #20
철이: 많은 기대를 가지고 도서관을 갔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군요.
아직 방학이라 이 시간에 내자리에 누가 앉지는 않았겠지요?
그렇죠. 텅 비어 있습니다.
그리웠던 내 자리... 그리고 더 그리웠던 그녀의 자리... 다 비어 있군요.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녀가 오늘 도서관을 나와 이 자리에 앉을까요?
그 시간이 빨리 오도록 잠이나 자야 겠습니다. 이미지 버리는데...
뭐 더 버릴 내 이미지가 남아 있겠습니까? 그냥 그녀의 모습만 볼 수 있으면 되지요. 뭐.
민이: 혹시나 하는 기대로 도서관을 갔습니다. 이제 아침햇살에 어스럼이 걷혀가고 있습니다.
호호. 낯익은 그리움이 담긴 모습.
책도 안 펴고 그대로 머리를 박고 자는 그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 옆자리는 비어 있군요. 꼭 나를 기다린 것처럼 말입니다.
앉을까요?
다른 자리도 비어있는데 좀 앉기가 그렇습니다만 예전에도 저 자리는 제자리였습니다.
앉아서 그를 바라봤습니다.
언제쯤 일어날까요? 왜 나도 졸음이 오죠?
철이: 오전의 깊은 여운은 누군가의 흔들어 깨움에 여리고 흐린 풍경들에서 선명함으로
눈에 들어옵니다.
"누구여?"
과 친굽니다. '너 복학했냐?'고 묻는군요.
아직 학기 시작도 안 했는데 복학은... 복학신청만 했다고 했습니다.
반갑다고 합니다. 자기도 이제 복학을 할거라는군요.
그말 할려고 잠을 깨웠단 말여? 친했던 친구니까 그럴 수도 있지요.
커피나 한잔하며 이야기 좀 하자고 합니다. 뭐 싫을 거 없지요.
쿠쿠. 이게 누구신가? 비록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금방 누군줄 알겠습니다.
내가 자던 모습도 그녀에게 이런 귀여운 모습으로 비추어 졌을까요? 아니겠지요.
그녀는 두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머리를 고이 숙여 자고 있습니다.
나처럼 그냥 머리를 박고 *는 않습니다.
그리웠던 그녀의 모습. 이 모습을 조금더 보고 싶지만 친구가 불러냅니다. 나중에 봐요.
다시 도서관을 들어올 땐 긴장이 좀 되겠습니다.
우이씨. 아는 놈들 둘을 더 만났습니다. 놓으란 말이여. 누구를 봐야 한단 말이여.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당구를 치고, 한 네시간정
도 쳤나요. 점심을 먹고, 남자들끼리 게이소리 들을 일 있냐? 커피숍에 갔습니다.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을까요. 들어가야 해. 술 한 잔 하잡니다.
크윽...뭐? 또 당구쳐? 죽빵 한 번 치잡니다. 그래 오늘 당구장에서 죽자.
도서관에 돌아왔을 때 시계바늘은 10시를 훨씬 넘어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텅빈 그녀의 열람석, 그리고 초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내 가방.
이게 친구들에게 자기는 인기작가라고 구라치고 다니는 이모씨가 독자들에게 현혹되어
날 그녀와 못 만나게 할려고 만든 결과라는 것을 난 모른 채 가방을 챙겨야 했습니다.
뭐 챙길 것도 없네요. 책 한 권 내어놓고 펴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우이씨.
누가 커피를 왕창 마셨나? 또 맹물이여?
밤하늘이 뿌옇게 물들었지만 그래도 까맣습니다.
민이: 희미한 열람석의 칸막이가 뚜렷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신을 차렸습니다.
긴장된 마음으로 옆을 쳐다보았습니다. 썰렁. 그가 자리를 비웠군요.
내 잠든 모습을 보고 그는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요?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가 돌아와 앉겠지요.
내 가방 한편에선 도장 찍힌 편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니!"
동아리 후배군요. 무슨 일일까요?
자기도 후배가 생겼다며 소개를 시켜준다고 합니다.
입학도 안 했는데 좀 늙어 보이는 남자하나와 여우같은 여자하나가 벌써 우리
동아리에 가입했답니다.
오티때 친해졌다는군요.
결국은 이것이었군요. 나보고 점심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집애! 약아 가지고 인심은 자기가 배풀고 나는 돈을 썼습니다. 그래 학기
시작하면 보자꾸나.
조금 떨리는 맘으로 도서관을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제법 흘렀으니 그가 앉아 있을 것만 같습니다. 없군요.
저녁을 먹고 들어와도 그는 없었습니다. 집에 가고 싶어요. 차라리 가방도 들고 가지
그랬어요.
그가 또 나 때문에 밖에서 머뭇거리지나 않고 있을까요?
오늘 열람실을 자주 들락거리느라 자판기 커피를 많이 마셨습니다.
속이 좀 매스껍네요. 그는 어디를 갔을까요?
할 수 없이 아홉시를 조금 넘겨 가방을 챙겨 나왔습니다.
철이: 그녀가 준 테이프를 듣고 있습니다.
집안에 아무도 없고 홀로 음?br>퓽?조금 크게 틀어놓고 여유를 느끼고 있지요.
그녀가 나에게 이 테이프를 준 의미를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그녀가 나를 알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거절을 당하고 난 뒤 난 내자신이 부끄러워 내가 썼던 편지를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일이 미소짓게 하며 떠올려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준 한장의 편지. 그걸 꺼내어 읽어보았습니다.
그때는 어렸을 때죠. 충분히 마음이 바뀔 수가 있습니다.
군대에서 받았던 편지는 분명 서울에서 온 편지였습니다.
그녀의 마음이 이렇게 바뀌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글자가 너무나 닮았습니다. 웃음을 낄낄될 정도로 나왔습니다.
으이씨. 누구여?
우리형이 뭐가 좋냐며 뒷통수를 쳤습니다.
"노크 좀 해라."
또 쳤습니다. 노크라네요. 음악소리 좀 죽이라고 합니다.
편지지를 보더니 아직도 그짓이냐며 쯧쯧 거립니다.
아직 여자친구하나 없는 게 되게 뻑뻑거리네요.
노래가 좋다며 테이프를 빼앗아가려고 합니다. 그건 안되지요. 절대로 말입니다.
돌려줘야 할 테이프라 했는데 결국은 뺏겼습니다. 나쁜 형아.
민이: 오늘은 개학날입니다. 입학식도 있네요. 95학번 새내기들이 귀엽군요.
수업을 마치고 동아리방으로 갔더니 이미 본적이 있는 남자후배가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촌스럽고 좀 늙어 보이긴 하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네요. 충청도 녀석이지요.
가자. 내 점심 사줄께. 학생식당이지만 말이야. 후배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하하 녀석이 하숙을 하는데 자전거로 통학을 한다네요.
쑥스러운 듯 '태워줄까요?' 그럽니다.
뒷자리에 탔습니다. 치마를 입고와 한쪽으로 탈 수 밖에 없네요.
야 내가 너보다 네살이나 많아. 떨긴 왜 떠니. 내가 녀석의 허리를 잡자 참 많이도
떠는군요.
사대앞은 내리막길입니다.
"얘 좀 천천히 가."
"브레이크가 좀 맛이 갔어요."
"아항 그럼 나 내릴래."
빠른 속도로 누군가 스쳐지나갔습니다.
사대앞에서 누군가 놀란 모습으로 나를 쳐다봤습니다. 그군요. 호호.
나도 자전거 탔습니다. 담에 마주칠 일 있겠죠.
'끼이익!' 무슨 소릴까요?
그가 뒤에 있는데 다시 뒤돌아보기가 좀 그렇네요.
철이: 오늘은 개학날이지요. 헤헤.
나는 과감히 사대에서 듣는 교양과목을 신청했습니다. 잘했습니까?
그녀를 한번쯤은 마주칠 수 있겠지요? 뭘 듣냐구요? 초급 일본어요.
그 수업이 월요일날 들었습니다.
사대안 일교과 학생회실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휴강이라고 말하는 조교가 눈에 익은 얼굴입니다.
어디서 본 놈이지? 덩치가 산만한 게 무식하게 생겼습니다.
수업을 끝마치고 사대를 빠져나왔지만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괜히 마음만
설레었지요.
뭔가 쌩 내 옆을 스쳐 지나갑니다.
아! 나는 어쩌라고 어떤 촌스러운 남학생이 모는 자전거뒷자리에 그의 허리까지 잡고
말입니다.
그녀가 타고 있었습니다.
섭섭합니다. 수민씨.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건 또 모야?
끼이익 소리를 한바탕 내고는 자전거가 나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들고 있던 가방만 저만치 날아가고 저는 별로 아픈 줄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자전거 한대에 세명이나 타고 있었습니다. 어쭈
여자까지 끼였어?
다쳤냐고 물어보는군요. 그럼 받쳤는데 안다쳤겠냐?
에구 불쌍한 내가방. 여자가 예뻐서 참는다. 여학생이 낯이 익네요.
앞으로 조심해요.
민이: 학생식당에 예전에 그와 교양같이 듣던 친구가 '기집애야 불렀는데 왜 대답을 안했냐'고
따집니다.
나 잡을려고 후배자전거 얻어 탔다가 큰일 날뻔 했다는군요. 낯이 익은 누군가를
치일뻔 했답니다.
그래? 그럼 네가 밥사면 되겠다고 말했다가 그녀의 불타는 눈초리에 내가 타버리는줄
알았습니다.
"이쪽은 누구세요?"
"새내기 후배야."
"안녕하세요. 95학번 현철이라고 합니다."
"되게 늙어 보인다. 몇년생이에요?"
"얘 말 놔."
"늙어 보여서..."
"방년 용띠 76년생인디유."
"25살은 되어 보이는데..."
"제 엄마께서 저를 보름정도 더 배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래 늙어 보이긴 한다.
삶이 너를 포기하게 만들지라도 누굴 원망하지 말아라.
에그. 자세히 보니 군대까지 갔다온 그보다 더 삭아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