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못해봤는데......
아직도 당시를 회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이후로 그런 일을 전혀 겪지 못했으니
당시의 사건은 우연이라고 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대학 1학년이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필히 버스를 타야만 했는데
그 날도 난 어김없이 버스에 올랐다.
집이 종점에 가까워서 항상 버스에 타면
예외없이 좌석에 앉아서 책을 즐겨 읽곤 했던 기억이 난다.
책에 몰두하다보면 내려야할 승강장을 지나쳐서
첫 수업에 지각하는 날이 허다했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은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미팅을 하는 날이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쑥맥이라서
여자라고는 엄마와 누나 외에는 여자라고는 모르고 살았다.
누나 친구라도 집에 오면 누나 친구를 피해 다닐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이런 내가 미팅을 하러 나간다는 생각을 하니 밤새 잠은커녕 음식을 먹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고픈 것 같지 않고 잠을 잘려고 잠자리에 들어도 눈이 더 또렸해지기만 했다.
거의 잠을 설쳤다.
일어나긴 했지만 머리가 몽롱하고 입이 꺼칠하여 아침도 굶고 세수만 하고선 집을 나섰다.
전 날 잠도 설친 탓에 졸음이 쏟아졌다.
서면까지 버스로 40분 정도가 소요되므로 잠시 눈을 붙일 요량으로 잠을 청했다.
한 참을 자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떠서 창문을 내다보니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배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로 서면 로타리였다.
서면 승강장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차! 난 붙였던 엉덩이를 떼어내서 발을 한 발 내딛는 순간,
버스가 갑자기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급정거를 했다.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난 앞으로 몸이 쏠렸다는 생각 밖에 없었는데....
나의 입술에 부드러운 무엇인가가 겹쳤다는 느낌이 들어서 언뜩 눈은 정면을 향했다.
하지만 이내난 얼굴이 붉어지면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여자의 입술이 나의 입술과 겹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남자가 옆에 있었다.
버스가 정차했지만 난 내릴 수가 없었다.
벌어진 상황을 종결시켜야하는데 방법을 전혀 없었고 발이 전혀 떨어지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괜찮으세요? 혹시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 분도 얼굴이 붉어지면서 고개만 가로 저었다.
옆에 있던 남자 분이 나에게 말했다.
”야! 너가 여자라면 괜찮을 것 같나? 너 혹시 고의로 그런 것 아냐! 이 녀석 파출소에 넘겨야겠네.“
버스가 급정거하던 찰라에 버스에 타고 있던 모든 승객들은 자신의 몸을 가눌 생각만 있었기에
우리가 말다툼하는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해 의아한 눈으로
모두들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떠서 쳐다보고 있던 상황이라 남자의 말에 난 당황하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하십니까? 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당신이 너무 잘 알고 있지 않나요?
그런데 무슨 성추행이라는 말씀인가요?” 나는 극구 부인하였지만 남자는 전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뒤로 얼굴을 돌리고선 버스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아저씨! 여기 성추행범이 있으니깐 경찰서 앞에 차를 좀 세워주세요!”
난 남자에게선 어떤 말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여자가 진실을 얘기해줄 것을 기대하였지만 여자는 고개만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파출소에 연행되었다.
물론 내 발로 들어갔지만 말이다. 버스는 부산진경찰서에 차를 세웠다.
버스 승객 대부분은 상황이 매우 재미있다는 듯이 대부분 경찰서 앞에서 추이를 지켜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남자가 먼저 경찰에게 말했다.
“버스를 타고 오는데 이 녀석이 내 여자 입술에 키스를 하는거예요!
이 녀석,성추행범이고 현행범입니다. 내가 지켜보았는데 글쎄, 인정을 안해서 부득이 경찰서에 온 것입니다.”
그러자 경찰이 나에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학생같은데, 어느 대학이야”
난 신분증을 내놓기 전에 부모님 얼굴이 어른거리기 시작하면서 무서워졌다.
그리곤 속으로 중얼거렸다.“난 아니에요! 난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신분증을 제시했다.
경찰은 상대여자에게 물었다. “정말 이 학생이 당신 입술에 뽀뽀한 것 맞나요?”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경찰이 다시 한번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가 피해자입니다.
아가씨가 이야길 해주셔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애꿎은 사람이 가해자가 됩니다”
그러자 그 여자 분이 고개를 들면서 크게 외쳤다.
“아니에요. 제가 볼 때는 고의가 아니었어요.
버스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이 분이 발을 내디디면서 나의 몸으로 넘어오면서 그렇게 된거예요!.
옆에 있던 남자 분이 그 말에 화를 내면서 여자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볼 때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하는거야!
나도 한번도 안 해봤는데“
그 말에 경찰서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버스에서 내려서 상황을 지켜보던 모든 승객들이 웃었다.
한동안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