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나라인 핏케언 제도(Pitcairn Islands)를 들어보셨습니까?
핏케언 제도는 공식적인 독립국가는 아니며 태평양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영국의 식민지이다.
영국의 해외 영토로 남태평양에 있다. 면적은 4.5평방 킬로미터이며 인구는 9가구 56명.
이 곳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뉴질랜드에서 남미 방향으로 출발하는 화물선 밖에 없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갇혀 있었던 대서양의 세인트 헬레나보다도 더 고립되고 인구도 더 적은 곳이다.
이 섬은 1767년 Philip Carteret에 의해 처음 알려졌고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790년이다.
영화로도 많이 알려진 '바운티(Bounty)호 반란' 후 1790년 9월 바운티호 일등항해사 플레처 크리스천(Fletcher Christian)
과 선원들이 이 곳 핏케언 제도로 들어 왔다.
(* 참고로 인터넷에서 '바운티호의 반란'을 검색하면 당시 상황을 알 수 있음)
이 곳에는 최초 지도자 플레처 크리스천이 살던 동굴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1790년 9월 정착한 후부터 핏케언 제도에는 독특한 관습이 유래되고 있다.
현재 56명이 거주하고 이 섬에서는 담배, 술, 육식이 금지되어 있다.
또한 모든 것이 공동생활로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어야 하며, 모든 것이 가족 수 대로 동등하게 나누어 진다.
주민들은 대개 어업과 농업(감자,바나나,오렌지 등)에 종사하며, 물물교환으로 살아간다.
핏케언 제도의 외화 벌이의 유일한 수단은 우표 판매이다.
따라서 우표 판매가 주 수입원이며 뉴질랜드 또는 호주에서 물건을 사온다.
이 곳 관습에 따르면 12세이하 어린이와 성관계를 가질 수 있어 실제로 어린이와 성관계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관습은 영국 본토법에 정면으로 위배돼 이들이 재판을 받아 실형 선고를 받기도 했다.
당시 재판관이 법원이 없는 핏케언 제도로 들어와 재판을 하는 역사상 희대의 사건이 벌어졌다.
이유는 성인 남자들이 재판을 받으러 대륙으로 가면 핏케언 제도 거주민들이 살아남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재판관이
거꾸로 핏케언 제도로 들어온 것이다.
(펌 흰머리대혁명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