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이시대 최고의 천재

스탑레드 작성일 10.06.30 01: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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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토마스 영

 

1 :  14살때 12개언어 읽고 쓸줄앎

 

2 20살때  의학공부 시작

 

3 25살때  의학과 물리학에 학위 받음..

 

4 28살때 외과의사

 

5 30살때 왕립학교 교수로 임명

이때  빛의 파동설을 세우는데 기여

빛의 간섭원리 발견

에너지 라는 물리적 의미를 부여..

 

현대 빛의 기초 이론을 세움.

현대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공공의적

생물의 rgb 이론 주장

 

 

두둥 그리고.....

젤 마지막..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진 비석을 처음 해석

 

1773년 6월 13일에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언어나 외국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4살이 되던 해에는 당시 부유층들이 배우던 유대어나 라틴어, 그리스어를 비롯하여 아랍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그의 모국어인 영어, 그리고 에티오피아어와 터키어등 총 12개의 언어를 읽고 쓸 수 있었다.

토마스 영은 1792년 20살이 되던 해에 영국의 런던에서 의학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1794년에는 에든버러로 옮겨갔고 마지막 해인 1796에 독일의 고트겐에 가서 의학과 물리학에 관한 학위를 받앗다. 1797년 그는 캠브릿지의 엠마누엘 칼리지에들어갔다. 그해 그는 종조부인 리차드 브록클비에게 부동산을 상속받았고 이 일은 그에게 재정적 독립을 가져다 주었다. 1799년 그는 물리학자로서 런던에 48 Wellbeck Street를 설립했고 (현재 파란색 장식판으로 남아있다.) 물리학자로서의 명성에 걸맞는 많은 논문들을 남겼다.

1801년 토마스 영은 왕립교육기관의 철학과 교수로 임명된다. 2년동안 그는 91개의 강의를 한다. 1802년 특별연구원으로 선출된다. 그러나 1803년 그는 사직한다. 왜냐하면 왕립교육기관의 특별 연구원으로서의 의무는 그의 의학연구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강의는 1807년 국립 철학 강의서 재개되었고 많은 후기 연구에 포함된다.

1811년 그는 St. George's 병원의 외과의사가 된다. 그리고 1814년 그는 위험성을 수반한 일반 생산 가스가 런던에 미치는 영향에 관련된 위원회에 지명된다. 그는 비서의 임무를 맡고 그리고 2번째 진자에 관한 길이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는 HM Nautical Almanac Office 의 사무관이 된다.

 

그는 죽기 전 몇 년 동안 생명보험에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1827년 프랑스 과학 협회의 여덟 외국인 중 한명으로 선택된다. 1828년 그는 스웨덴 과학협회의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된다.

토마스 영은 1829년 5월 10일 런던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는 영국 킨트 주의 퍼른보로의 St. Giles 교회의 공동묘지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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