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나신 곳에 영어도서관이 생긴다?'
아이러니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이다. 서울 종로구 통인동 137번지 일대는 세종대왕의 생가가 있었다고 알려진 곳. 이로부터 100m 남짓 떨어진 단독주택이 5월 어린이 영어도서관으로 탈바꿈한다.
12일 종로구청에 따르면 초등학생 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세종마을 어린이 영어도서관'이 5월 어린이날에 맞춰 통인동 89-14호에 지상2층, 지하1층 규모(229㎡)로 문을 연다. 구 예산 5억여원을 들여 영어도서 1만여 권을 구비하고, 원어민 강사를 채용해 어린이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싼 가격에 영어 강좌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원래 개인 소유의 일반 주택이었던 이곳은 지난해 서울시가 소규모 공원을 조성하고자 매입했다. 그러나 슬럼화를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반년 넘게 빈집으로 방치돼왔다. 종로구는 동네 도서관으로 마땅한 곳을 물색하다 이곳을 빌려 사용하기로 3월 구 의회를 통해 최종 결정했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생가 터 주변에 하필이면 '영어도서관'을 짓는 데 대해 주민들의 입장은 엇갈린다. 초등학생 아이 둘을 키우는 최문용(45)씨는 "유서 깊은 곳에 영어도서관을 세우는 건 반대"라며 "세종 이름을 붙이는 것도 그렇고 오히려 한글학회 같은 게 더 어울리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나 다섯 살 딸을 둔 장모(35)씨는 "효자동은 유적이 많고 문화적 인프라도 좋지만 영어도서관 등이 활발히 운영되는 강남에 비해 교육여건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라고 반색했다.
종로구는 "청운ㆍ효자동 일대에 영어 교육기관이 소형 보습학원 외에는 거의 없다"며 "주민들에게 영어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고, 교육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밝혔다. 당초 '통인 마을마당 어린이도서관'에서 '세종마을'로 이름을 바꾼 것도 "주민들이 그리 부르려는 움직임이 있어 수용했다"고 답했다.
반면 서울시는 이 지역의 간판과 표지판 등을 한글로 바꿔 달고, '한글 11172마당' 조성, 세종대왕 생가 재현 등 통인동을 포함한 세종대로 일대를 한글문화관광 중심지로 가꾸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