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시리즈 세 자매중 막내, RMS Gigantic의 사연입니다. 자이갠틱이라고 소개를 했지만 사실
이 배는 자이갠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적은 없습니다. '침몰하지 않는 배'로써 강인함을 상징하는 이름을 지닌 타이타닉이
침몰하자 White Star측에서 또 다시 '거대한'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겸연쩍었는지 선명을 '브리태닉(Britannic)'으로 바꾸었던
까닭이죠.
브리타닉호의 용골이 거치되던 1911년 11월 무렵, 시리즈선 세척 중 첫째인 올림픽호는 한창 대서양 항로에 취역중이었고
두번째 배, 타이타닉호는 의장공사가 진행중이었습니다. 올림픽 호가 빠져나간 선대(Slipway)를 이용하여 건조되었기 때문에
조선소측(Harland & Wolff Heavy Industry)에서는 기존 시설을 충분히 활용해 추가적인 지출없이 배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Harland and Wolff 조선소에서 건조중인 Britannic. 앞쪽에 쌓여있는 판재들은 모두 선체 외판용 자재로써, 당시에는 이러한
판재들을 모두 리벳으로 하나하나 연결해서 배를 건조했습니다. (사진 - www.maritimequest.com)
타이타닉 사고
1912년 4월 14일 밤, 뉴욕으로의 첫 항해에 나섰던 타이타닉호가 잘 알려진대로 유빙에 부딪혀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가라앉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 여파로 현역에 있던 올림픽호가 부랴부랴 조선소로 소환되어 왔고, 건조중이던 브리타닉호 역시 작업이 잠시 중단되었 습니다. 사고직후 구성된 조사단이 선체구조상 침몰을 부추긴 요인에 대해 보완할 것을 명했기 때문이죠.
때문에 Britannic은 설계도면 자체가 변경되느라 공사가 많이 지연되었습니다. 올림픽이 용골거치에서 진수까지 걸린 시간은 약 1년 9개월, 타이타닉이 2년 3개월이 소요되었지만 브리타닉의 경우 무려 3년 4개월을 선대위에서 보내야 했던것입니다.
하지만 기존에 설치되어 있던 자재들을 뜯어내어 보수 공사를 해야 했던 올림픽호에 비해선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설계 변경조치
그렇다면 타이타닉의 자매선 올림픽과 브리타닉에 어떤 조치가 취해졌을까요?
먼저 2중선각 구조를 들 수 있겠습니다. 올림픽 시리즈의 선저는 원래 2중선체로 되어있지만 측면의 경우는 단일선각이었고
이 부분이 침수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관실과 보일러실부분의 선각을 이중선체로 보완하는 조치가 취해
졌습니다.
다섯번째 수밀구획, 제 1보일러실 외벽이 찢어져 해수가 유입되는 장면, 영화 타이타닉 중
사고후 올림픽과 브리타닉에 취해진 조치, Inner Skin
(사진 - www.titanicology.com)
다음으로, 수밀격벽에 대한 보완 조치입니다. 타이타닉을 비롯한 올림픽 시리즈의 여객선들은 흘수선 바로 위 갑판까지 수밀격벽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로써 동시에 네개 정도의 구획이 침수가 되더라도 물 위에 떠 있을 수는 있었습니다.
'침몰하지 않는-Unsinkable'이라고 큰소리치던 자부심의 원천이 바로 이 수밀 격벽과 그곳에 설치된 수밀문이었던 것이죠.
브리타닉의 수밀문(Watertight Door), 사진 - www.maritimequest.com
하지만 타이타닉호의 경우에는 불행하게도 외벽이 90m정도나 길게 찢어지면서 다섯개 구획에 한꺼번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
했습니다. 인접한 다섯 구역이 동시에 침수되자, 설계자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물이 들어차 배가 기울면서 수밀격벽의 맨 윗부분이 흘수선보다 낮아지자, 물이 격벽을 넘어 뒷 구역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로 올림픽과 브리타닉의 수밀격벽 15개중 여섯개를 Main Deck까지 연장해 각 구획을 선각안에서
완전히 밀폐(closed)시켜주었습니다. 이제는 한 구역이 완전히 침수되더라도 다음구역으로는 물이 넘어가지 않는, 진짜 수밀 구획(Watertight Compartment)이 구성된겁니다.
영화 '타이타닉' 도입부에 루이스가 까불랑거리면서 로즈에게 배의 침수 과정을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빙산과 접촉하지
않은 여섯번째 구획으로 물이 넘어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타이타닉 중)
타이타닉 사고 후 올림픽과 브리타닉 선체구조의 변경 - 윗쪽 사진의 초기 설계와 비교해 보시면, 1) 기관실 구역을
이중선체로 감싸고(파란색), 2) 초기에 흘수선 부근까지 마감되어 있던 수밀격벽중 일부를 Main Deck까지, 선실구역은 B-Deck 까지 연장(빨간색 표기)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 - www.tatanicology.com)
또, 외관상 올림픽, 타이타닉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점은 부족한 구명정 수를 보완하기 위해 마치 크레인처럼 생긴 보트 대빗(davit)을 설치한 점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설비를 통해서 브리태닉은 타이타닉의 거의 두배에 달하는 구명정을 추가로 탑재하였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 대빗은 선체가 만일의 사고로 현측으로 기우는 경우에는 반대편의 보트 대빗을 이용 해서도 구명정을 기울어진 쪽으로 내려보낼 수 있게 고안된 것입니다.
Britannic의 선미갑판 Boat Arrangement.(모형) 2층으로 쌓여있는 구명정과 대형 보드 대빗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 - www.hospitalshipbritannic.com)
처음 올림픽호를 디자인할 때 촌스럽게 보이게 하지 않으려고 통풍구의 크기도 줄였건만 사고로 인해 더 보기 싫은 의장품이 추가된 셈입니다^^ (Mr. Andrews의 대사. 타이타닉 中)
1차 세계대전 발발
브리타닉이 막바지 의장공사를 하고 있던 1914년 8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전쟁은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엉망으로 헤집어버리는 것이지요. 브리타닉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전쟁의 화마는 '아직 페인트도 채 마르지 않은' 호화 여객선이라고 해서 비껴 가주지는 않았습니다.
수많은 여객선들이 각국 해군에 차출되어 병력수송이나 간이 숙소, 물자운반등의 목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전쟁 초반에는
중소형 여객선들이 주로 이런 임무를 위해 차출되었는데, 올림픽, 브리타닉과 같은 초대형 여객선들은 한번에 많은 물자(병력)를 운반할 수는 있었지만 그 덩치를 이리저리 손쉽게 사용하기란 매우 까다로운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죠.
비록 전쟁에 동원되지는 않았지만, 전투함과 잠수함들이 들쑤시고 다니던 당시의 유럽 해역에 풀어놓았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 그래서 '올림픽 이야기'에서도 밝혔듯이 White Star는 올림픽과 신조 여객선인 브리타닉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잠시 사우스햄턴에 짱박아놓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1915년이 되자 상황은 이들이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1915년 5월, 브리타닉이 드디어 모든 공사를 완료하고 계류중 엔진 테스트도 끝마쳤을 무렵, 병력수송선으로 차출되었던 여객선의 첫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큐나드사의 '루시타니아(RMS Lusitania)호가 아일랜드 연안에서 독일잠수함의 어뢰공격을 받고 침몰했던 것입니다. 이로써 전시 특별 수송선단에 한 자리가 비게 되었고, 그 몫은 이제 겨우 움직일 준비가 끝난 브리타닉에게 돌아왔습니다.
RMS Lusitania의 침몰, 1915년 5월 17일. (사진 - www.bild.bundesarchiv.de)
HMHS Britannic
1915년 6월, 연합군은 최근에 징발된 여객선들을 갈리폴리 공세전(주1)을 수행할 병력을 수송하는데 활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맨 먼저 큐나드사의 모리타니아(RMS Mauretania, 지난회에 이어 또 등장하죠?^^)와 아퀴타니아(RMS Aquitania -
배 이야기, So Long GE2 참조)호가 동 지중해 해역에 처음으로 병력을 싣고 투입되었습니다.
작전이 시작되자 수많은 병력이 갈리폴리 해안에 상륙하였으나 독일과 터키연합군의 선방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아퀴타니아호는 돌아오는 길에 부상병들을 싣고 귀환하였습니다.
이후 작전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게 흘러가게 되자 영국 해군성은 본격적으로 부상병들을 귀국시킬 병원선을 운영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퀴타니아호는 한번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대로 병원선으로 전용되었고, 아퀴타니아호의 병력수송임무는
올림픽호가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징발되어 어리둥절한 신병, 브리타닉이 병원선의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병원선으로써 배 전체를 흰색으로 칠하고 녹색 띠와 붉은 십자가를 그려넣은 브리타닉은 검은색으로 도장된 이전의 자매들과는 사뭇 다른 외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배의 이름도 정기여객선, RMS Britannic이 아닌 영국해군 병원선 HMHS(His
Magesty's Hospital Ship) Britannic 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지요.
HMHS Britannic,
병원선의 침몰
병원선으로써 브리타닉은 성공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1916년 후반까지 다섯번의 항해동안 무사히 동지중해의
전장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본국으로 귀환시켰으니까요. 그렇지만 눈먼 총알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고, 병원선처럼
평화적인 목적을 수행하는 배라 할지라도 전장에 있는 한 전쟁의 마수를 피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브리타닉이 여섯번째 항해중이던 1916년 11월 21일 오전 8시 12분, 배가 키클라데스 군도의 케오스(Kea)섬 인근해역을 지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우현 아래에서 뭔가가 큰 수중폭발을 일으켰습니다.
폭발의 원인이 독일잠수함의 어뢰였는지 혹은 해역에 부설된 기뢰였는지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폭발지점의 위치는
치명적이었습니다. 하필이면 메인 데크까지 연장된 선수의 첫번째 수밀격벽부분이 터져나간 것입니다.(상기 수밀격벽 그림
중 'D'격벽) 설상가상으로 폭발의 충격으로 인해 인근 구역의 수밀문들이 작동을 하지 않아 순식간에 다섯개 구획이 침수되었지만 더이상 침수가 진행되진 않은 덕분에 배는 간신히 떠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폭발이 있은 후 불과 10분만에 브리타닉은 먼저 간 자매, 타이타닉과 똑같은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브리타닉의 선장은 배가 침몰되는 것만은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현장에서 4.8km 떨어져 있던 케오스섬 쪽으로 배를
몰아갔습니다. 그러나, 극히 사소힌 요인이 결국 배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몰고 갔습니다. 타이타닉 영화를 보셔서 알겠지만, 이들 자매선의 선체 측면에는 현창이 수도 없이 뚫려 있었습니다. 이 현창을 간호사들이 병실의 통풍을 위해 열어두었는데, 배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바로 이 현창을 통해 나머지 구역으로 물이 흘러들었던 것입니다.
침몰하는 브리타닉 - 선장은 브리타닉이 침몰하도록 내버려두는 대신에 가까운 해안에 좌초시키려 했기 때문에 선수쪽으로
고꾸라진 상태에서도 배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선장의 퇴선명령(배에서 이탈하라는 명령)이 명확히 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일부 성급한 선원들은 자의로 구명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질서없이 내려진 구명정중에는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돌고 있던 프로펠러쪽으로 끌려들어가버린 것도 있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뒤늦게 배의 침몰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선장은 마침내 전원 퇴선 지시(Abandon ship)를 내렸고
부랴부랴 구명정들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배는 폭발 후 55분이 지난 오전 9시 7분, 우현쪽으로 크게 기울더니 순식간에 물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당시에 배에 타고 있던 1,000여명의 탑승원 대부분이 브리타닉을 뒤따르던 HMS Scourge에 의해 구조되었지만 그 중 30명은 배와 함께 가라앉았습니다.
리타닉이 잠든 곳, 그리스의 키클라데스섬 (구글어스 캡쳐)
브리타닉의 잔해
브리타닉이 가라앉은 곳은 별로 깊지 않기 때문에 스쿠버 장비만 있으면 이 배를 직접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올림픽의 자매들 중 무사히 현역에 복귀할 수 있었던 배는 올림픽 한척 뿐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한척은
대서양의 깊은 바다에, 또 다른 한 척은 지중해에 가라앉아버린 것이죠. 두 척 모두 우현 선수에 입은 피해로 인해 침몰한
공통점은 있지만 타이타닉은 자연의 힘 앞에 무너져내렸고, 브리타닉은 인간이 만든 무기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네셔널지오그래픽같은 다큐멘터리에서도 타이타닉의 사고를 두고는 '인간의 헛된 욕심과 오만함이 불러온 사고'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지만, 브리타닉의 경우엔 의도하지 않게 전장에 끌려나와 정말 우연히 사고를 당한, 운이 없었던 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형 선박의 사고후 보완된 안전조치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질 못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타이타닉 사고와는 달리 탈출할 수 있는 여유시간은 더 짧았지만 효과적인 탈출이
이루어졌고, 인명피해는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던 점은 높이 살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덕분에 오히려 이 사건이 잘
알려지지 않긴 했지만 말입니다.
이상으로 '타이타닉의 (잊혀진) 자매들'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여담으로 올림픽 시리즈 세척 모두 다른 종류의 충돌사고를 겪은데다가 다 엇비슷하게 생겨 보통사람이 이 세척의 차이를
구분하긴 힘들기 때문에 이야기가 서로 섞여 이상한 얘기가 나돌기도 합니다. (타이타닉이 진수후 군함과 충돌했다는 둥,
빙산이 아니라 어뢰에 피격되어 침몰했다는 둥...) 다큐 제작자들도 간혹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고, 또 번역되어 오는 과정에서 번역가의 혼돈으로 오류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 글을 통해 한번 정리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