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키퍼 수비수 미드필더를 지나 이제 공격수만 남았네요
개인적인 감상+골닷컴 월드사커등에서 전문가 집단 혹은 해외팬들의 설문조사등을 참고합니다.
10위 안드리 셰브첸코
1976년 9월 29일 우크라이나
대표클럽 다나모 키예프.AC밀란
호나우두가 전세계의 축구 아이콘으로 군림하던 시절.
동유럽의 호나우두라 불리는 스타가 있었으니 바로 셰브첸코
우크라이나 다나모 키예프에서 선수로 데뷔한 셰브첸코는 자국리그 5연속 우승과 천하의 바르셀로나를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개박살 내는 활약을 보입니다.
그후 AC밀란으로 이적
데뷔하자마자 득점왕을 먹어버리며 흔히 축구팬들이 뽑는 세계 4대 스트라이커에 자주 거론됬습니다.
그 후 월드컵에도 출전하는 등 활약을 보이던 셰브첸코는 영국의 부자구단 첼시로 이적
이적료는 3080만 파운드로 추정됩니다.
그 많은 이적료를 기록하며 팀을 옮겼거만 현실은 개 시궁창
존테리의 쇼크당시 메딕질 한것을 뺴면 딱히 기억에 남는 활약도 없었습니다.
그 후 다시 영광의 AC밀란으로 복귀했으나 이미 그의 실력은 녹슬어버린상태 .
결국 2012년 7월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9위 티에리 앙리
1977년 8월 17일 프랑스
대표클럽팀-아스날 바르셀로나
아스날에서 뛰던 시기엔 아스날의 왕이자 영국의 왕
앙리는 따로 소개한 적도 있으니 기타 소개는 생략.
8위 호마리우
1966년 1월 29일 브라질
풀네임은 호마리우 지 소우자 파리아
대표클럽 바르셀로나
곧잘 펠레와 비교되던 브라질의 슈퍼스타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의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에들어 아인트호벤에 입단한후 리그 109경기 98골이라는 엄청난 활약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도착한 행선지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요한 크루이프의 드림팀 멤버로 들어간 그는 33경기 30골을 기록하는 득점기계급 활약을 펼칩니다.
바르셀로나가 레알과의 더비경기를 앞둔 시점
호마리우의 고국 브라질에선 리오 카니발 축제가 한창이였다고 합니다.
호마리우는 축제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팀에서 가장 중요한 공격수인 그가 빠지는것은 말도 안됬고 요한 크루이프 감독은
네놈이 레알마드리드 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면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호마리우는 당당하게 해트트릭을 기록하고 모두에게 잘 다녀온다고 인사한후 축제를 보러 ㅂㅂ2했다는 이야기
또 유명한 이야기는 아버지가 납치당했을때 짜증나서 은퇴를 선언해 버리자 납치범들이 알아서 아버지를 돌려줬다는 미담
이건 너무 유명한 이야기.
현재는 은퇴하여 브라질의 하원의원으로 있습니다.
7위 마르코 판 바스텐
1964년 10월 31일 네덜란드
대표클럽 AC밀란 아약스
가장 교과서적인 스트라이커
80~90년대를 주름잡던 네덜란드의 3명의 축구영웅 이른바 오렌지 삼총사의 한명
(오렌지 삼총사.레이카르트. 판 바스텐 .굴리트)
아버지는 축구선수 어머니는 체조선수였던 바스텐은 우월한 유전자를 이어받은 덕분에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며
불과 17의 나이에 아약스팀의 일원으로 13골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4년동안 득점왕 타이틀을 독식하던 그는 AC밀란으로 이적하였는데
축구 전술역사에 길이남을 숨겨진 명장
아리고 사키감독을 만났고 네덜란드의 3대장인 오렌지 삼총사의 일원으로 전 유럽을 호령했습니다.
2004년엔 네덜란드 감독으로 취임하였고 가공할 공격력을 보여주며 순항을 하나 했는데 본선에선 포르투갈에게 패배..
유로 2008에선 감독 대선배 히딩크에게 패배하여 감독생활을 좋지 못하게 마감했습니다.
6위 에우제비오
에우제비우 다 실바 페레이라
1942년 1월25일 포르투갈
대표클럽 벤피카
포르투갈의 검은 진주
무려 715경기 727골을 기록
한경기당 한골 이상을 넣어버린 괴물
그는 검은진주 말고도 또 다른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검은표범
표범이라는 맹수를 별명으로 가진 이유는 바로 엄청난 드리블 스피드
그의 가장 유명한 경기는 바로 북조선애들과 포르투갈의 경기
1966년 북조선애들이 기세등등하게 포르투갈을 몰아붙이며 3골을 넣자 에우제비오는 바로 4골로 보답해주며 5대3승리를 만듭니다.
20세기 최고의 축구선수 9위에 올랐으며 펠레가 선정한 최고 선수100명에도 포함됬습니다.
과거분들은 유세비오로 알고 계신분들도 많다고
5위 게르트 뮐러
1945년 11월 3일 독일
대표클럽 바이에른 뮌헨
그 유명한 서독의 폭격기. 호나우도가 갱신하기 이전엔 32년간 월드컵 최다골 기록 소유자
국가대표 기록만 62경기 68골
뇌르들렝겐에서 30경기에 50골을 처넣는 괴물활약을 보인 뮐러는 곧이어 바이에른 뮌헨으로 옮겼고
여기서 그를 반갑게 맞이한 동료는 바로 황제 프란츠 베켄바워.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선수와 발을 맞춘 뮐러는 70년대 뮌헨 소속으로 모든 팀들을 개작살내고 다녔으며 그 당시 신기록인 한시즌 55골을 기록하는등 이래저래 득점력에선 신기록 제조기.
대표팀으로도 당연히 최고의 괴물이였으며 위에 설명한것과 같이 호나우두 이전 월드컵 최다 득점자.
현재 바이에른 뮌헨의 코치로 재직중
근데 왜 젊었을때보다 지금의 나이든 모습이 더 간지가 날까..
4위 페렌츠 푸스카스
1927년 4월2일 헝가리
대표클럽 레알 마드리드
푸스카스라고도 하고 푸슈카시라고도 하는
헝가리가 낳은 최고의 영웅
지금의 헝가리야 뭐 그냥 그렇지만 1950년대 헝가리는 마법의 군단이라 불리던 무적의 군단
우리나라엔 너무도 뼈아픈 1954년 스위스 월드컵당시
우리나라는 푸스카스가 이끄는 헝가리를 맞아 너무도 비참한 패배를 당했는데 그당시 한국의 골키퍼는 푸스카스의 슛이 골대에 맞을때마다 그 울리는 소리가 한참이나 들렸다고 회상.
그러나 헝가리를 몰락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니 1956년에 일어난 헝가리의 무장 시위를 소련군이 무력으로 잔인하게 진압하자 푸스카스는 스페인으로 망명을 신청.
이로인해 헝가리 대표팀은 완전 망그러졌으며 아직도 그 옛날의 영광을 찾지 못하는 중입니다.
1958년에 레알에 입단한 그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함께 활약했으나 마음 한구석엔 조국 헝가리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헝가리를 찾아가 봤는데
ㅁㅊ헝가리 색기들이 소세지 공장에서 강제노동을 시키는 바람에 다시 출국
결국엔 빨갱이들이 망한 1989년이 되서야 헝가리로 다시 돌아가서 감독생활을 하는등 안정된 삶을 살다가 200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3위 호나우두
호나우두 루이스 나자리우 지 리마
1976년 9월 22일 브라질
대표클럽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인터밀란 등
사실 골닷컴이나 기타 설문조사에선 푸스카스가 호나우두보다 더 높은 순위로 뽑힌 경우가 많습니다만
푸스카스 선수의 활약을 눈으로 직접보긴 힘들었기에 개인적 호감으로 호나우두가 더 높은 순위로 올랐네요
신의 능력을 가졌으나 육체가 인간의 육체였기에 감당하지 못했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뛰어난 공격수.
국내에선 펠레-마라도나 이후 또 다른 축구황제로 불렸으며 유난히도 국내팬이 많은 선수.
다만 국제적으로 축구황제라 불리는 인물은 베켄바워와 펠레뿐.
최근엔 호돈신(호나우도 +돼지+신)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어린 그의 재능을 알아본 브라질의 레전드이자 펠레의 동료 자일징요가 호나우두를 거두어주었고 그는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서 먼저 활약했던 호마리우의 후계자로 등장해서 활약했으며 그 다음 행선지는 바르셀로나
역시나 49경기 47골을 넣어주며 맹폭활약.
다 비켜라 이놈들아~
그후엔 인터밀란으로 입단하여 발롱도르를 수상하는등 영광스러운 활약을 이어 나갔습니다.
1998년엔 천하의 지단을 만나 아쉽게 패배했으나 2002년엔 호나우딩요.히바우두 등과 함께 당당하게 월드컵 우승
그후 레알 마드리드로 직행!첫시즌에는 제법 많은 골을 넣으며 계속 전설급으로 남나 했지만 서서히 그의 기량은 하락세를 띠었고 몸이 불어나며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2008년엔 브라질로 돌아갔으며 2011년 은퇴를 했습니다.
2위 리오넬 메시
1987년 6월24일 아르헨티나
대표클럽 바르셀로나
왜 리오넬 메시가 호돈보다 높은거냐고 화낼분들이 좀 계실거 같은데
미리 말씀드리면 저 메시 안좋아합니다
근데 애석하게도 많은 전문가들이 메시를 호돈보다 높게 쳐주고 있네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리오넬 메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어릴때부터 호르몬 장애로 사람들이 외면한 메시
그러나 바르셀로나에서 치료비를 부담하기로 해서 지금까지 키워냈습니다.
지금키도 매우 작은데 이것도 그나마 성장호르몬 주사를 무진장 처맞은 결과.
아르헨티나에 무수히 많았던 마라도나 후계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선수중 가장 완벽하며
현재로썬 국가대표팀 경력을 제하면 거의 마라도나 수준의 선수.
미드필더 라인과 공격수라인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다재다능한 선수이며 공을 발에 붙여놓은듯한 드리블이 특기.
게르트 뮐러의 한 시즌 55골 기록을 갱신하기도 했는데 문제는 아직도 그의 나이는 20대 중반에 불과하다는 것.
국가대표팀에서의 약세가 흠이긴 하나 최근엔 국가대표팀 감독이 메시를 잘 활용하는 전술가로 바뀐 까닭에 이젠 국가대표팀에서도 날아다닐 준비가 완성된 듯.
1위 펠레
1940년 10월 23일 브라질
본명 에지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
따로 설명하면 미련하다는 소리를 들을 선수
국제 축구역사 통계연맹 선정 20세기 최고의 축구선수이자 남미 최고의 선수.
통산 1281골을 기록한 황제
말년에 내뿜고 다니는 저주는 보너스
애석하게 순위에 없는 선수들
이탈리아의 전설
주세페 메아차 1910년 8월 23일 이탈리아
개인적으론 메시보다 훨씬 좋아하는 호날두
1985년 2월5일 포르투갈
이상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