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피로인

그사나이 작성일 15.06.26 18: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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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일본에선 다도가 유행합니다.

다도가 유행함에 따라 조선의 자기또한 인기가 많아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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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당시, 일본은 고급 자기 제작 기술이 없었습니다.

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도공들을 납치해 오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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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때 끌려온 조선의 도공 이삼평. 

 

이삼평은 당시 일본에는 없던 백색 자기를 만들 원료를 찾기 위해 일본 전역을 떠돌게 됩니다.

그리고 20년만에 백색 자기의 원료인 이즈미야마 도석을 발견하고, 일본 자기사에 한 획을 긋게 됩니다.

 

이후, 이삼평은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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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고온에서 도자기를 굽는 고온소성의 시대를 엽니다.

세라믹 혁명과도 같았다고 하니, 당시 일본인들이 받았을 충격이 어느정도 였는지 알 것같습니다.

 

현재 우리가 가끔 미국이 선보이는 신기술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일런지.. 

그보다 더한 충격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일본의 도자기는 세계적인 명품으로 인정 받고 있다고 하니.. 

어딘지 모르게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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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인 이삼평 도공이 백자기의 원료를 발견한 일본의 규슈 아리타에서는, 

현재까지 도자기 산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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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전까지 도자기 제작 기술이 없었던 일본. 

 

조선에서 끌려간 도공들 덕에 일본은 당시 도자기 기술을 보유한 세계 4개국 중 하나가 됩니다. 

또한 꾸준히 도자기 기술을 발전시킨 결과 17세기에는 유럽으로 수출까지 합니다.

 

 

약 1000여 명의 조선의 고급 도공들이 끌려왔다고 하니.. 

왜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부르는지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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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도자기 명문 장인 심수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유재란 피로인 심당길 도공의 14대째 후손이라고 합니다.

 

당연한 거겠지만, 14대를 이어오며 청송 심씨 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에 숙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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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씨의 말대로 막연히 바다건너 부모님이 계신 고향이 있을거라는 생각에, 

엉뚱한 곳을 향해 절을 했을 피로인들의 심정이 참 가슴 아픕니다.

 

 

안타까운 그들의 마음이 전해진건지, 류근 시인께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그리고, 아직도 400년전 피로인으로 왔던 심당길의 망건을 보관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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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한국에 투항한 일본인들에겐 상당히 관대했던 반면,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돌아온 

피로인들에겐 상당히 냉대했다고 합니다.

 

일본에 오래 살았던 피로인들은 누구보다 일본 내부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전후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분명 활용가치가 높다는걸 조선 조정에 강하게 어필하지만, 

모두 묵살당하고 철저하게 냉대를 당한다고 합니다.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강제로 끌려간 것도 억울한데, 겨우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돌아오는건 차별과 냉대..

그들이 느꼈을 절망과 상실감이 어느정도 였는지 감히 헤아릴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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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학자 도코토미 소호라는 사람은 이런말을 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은 일본 역사상 가장 사치스런 유학이었다.'

 

이에 류근 시인은 

 

'야만적 침략전쟁에 의해 무고한 백성들의 고통과 운명을 사치라는 수식어가 아닌, 

가장 수치스러운 유학이었다' 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원하지 않은 삶을 강제로 살아야 했던 10만여 명의 피로인들.

고향이 어느 방향인지도 모르고 그저 바다 건너 고향이 있을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엉뚱한 방향으로 절을 올렸을 그들.. 

 

결국 그렇게 원하던 고국으로 그마저도 얼마 안되는 수의 피로인들이 돌아왔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건 조선 조정의 차별과 차가운 냉대..

 

조선 조정의 무능함으로 인해 생긴 전쟁의 순수한 피해자들이었던 피로인.

 

임진왜란의 또다른 비극인 그들의 비참하고 기구했던 삶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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