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 임나일본부에 대해 알아 봅시다.

그사나이 작성일 15.07.14 20:56:05
댓글 14조회 11,022추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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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꿈에서 깨어나길 바라며, 

임나일본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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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과서에 실린 임나일본부설.도쿄서적의 채택률은 무려 50% 이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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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임나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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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과서에 실린 임나는 가야와 전라남도 전지역을 가리킵니다.

 

 

720년경 일본의 야마토 정권에 의한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일본서기라는 역사서를 편찬하게 됩니다.그 역사서에 주로 임나일본부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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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임나라는 말은 일본에서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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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라는 말은 우리 고대사에도 등장합니다.강수라는 사람은 본인이 임나가야 사람임을 밝힙니다.
임나는 곧 가야를 뜻한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강수라는 사람은 대가야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으나, 신라 진흥왕에 의해 대가야는 멸망한 뒤, 

강수는 중원경(지금의 충주)으로 이주합니다.

외교문서를 능숙하게 다뤄 후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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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는 어떤 나라였을까요..

 

 

삼국시대때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고대 한반도 남부지역에 존재했었던 여러 국가들의 연맹체 입니다.

넓은 평야와 풍부한 철의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백제와 신라의 견제로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서기 562년 약 600여년 동안 이어져 왔던 국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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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는 가야를 말하는건 알겠지만, 그 뜻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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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의 '나'와 신라의 '라'는 서로 '땅', 더 나아가 '나라'를 뜻하는 같은 의미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임'은 뭘까요..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예를 들어, 님을 한자로 고치면 '主의 침묵'이라고 합니다.

 

즉, 임나는 임의나라, 주의 나라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또한, 가야는 현재의 김해, 고령, 함안, 합천, 고성, 창녕 등 6~10개국이 있었는데, 이 중 경남 김해와, 경북 고령을 높여,

님(主)의 나라로 부르던 것에서 비롯된 가야의 대명사라는 말도 있습니다. 

 

  임은 사모하는 사람을 뜻하는 명사로, 님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동경과 존경의 의미가 담겨 있는건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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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임나는 곧 임나일본부설로 연상이 됩니다.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은, 

4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까지 일본이 한반도 남부지역을 약 200여년간 임나일본부를 통해 지배했었다는 소리입니다.

임나일본부는 식민지때의 조선총독부와 같은 역할을 했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쯤되면, 꿈이 아니라 망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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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저런 터무니없는 주장의 근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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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부터 살펴보면 임나 + 일본 + 부 라는 단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중에 '부'라는 단어는 관청의 의미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사람들은 관청의 의미인 '후'로 읽는 대신, 사람이란 의미의 '미코토모찌'라고 읽으라고 합니다.

 

 

 

뭔가 냄새가 납니다.

 

여기서 미코토모찌란, "일왕의 명에 의해 일정지역을 지배하는 자."라고 하니 의도가 짐작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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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본에서 주장하는 임나일본부는 관청이 아닌 가야 지역에 거주하는(통치하는) 일본 사람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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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통치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세금 징수나, 군사 징발, 말이나 소와 같은 가축을 징발한다거나 하는..

 

 

 

너무나 당연한 거겠지만, 그 어떤 통치 흔적도 찾아 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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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에 무려 23번이나 등장하는 임나일본부의 내용은 어떤 것들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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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외교만을 했다는 일본서기의 명백한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에서 파견된 외교와 통상 업무만을 목적으로 한 사신들이었을 뿐이다.

라는 말입니다.

 

 

 

본인들의 정사인 일본서기의 기록까지 왜곡하는 행태를 보니, 연민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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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가야 지역에 철이 많이 났다는걸 증명하는 유물 가운데 하나인 철정.

철을 중국과 일본으로 공급까지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철이 화폐로 사용된걸 보면 당시 가야인들의 생활에 철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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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6세기 무렵부터 제철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한 반면 이미 4,5세기부터 철을 이용한 화폐를 만들어 

사용해 오던, 가야의 제철 기술은 아무리 최소로 잡아도 일본보다 무려 100여년 이상 앞서 있었다고 합니다.

 

 

 

점점 임나일본부설의 터무니 없음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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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가야에서 철을 공급했다는 사실을 토대로 본다면, 

 임나일본부의 정확한 역할은 일본의 철의 수입을 담당했던 관청이었을 확률이 높다라는

최태성 선생님의 말씀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일본의 정사라고 하는 일본서기에도 기록 되어 있듯이, 

임나일본부의 역할은 오직 외교 뿐이었다는 기록을 토대로 본다면, 

선생님의 주장은 보다 설득력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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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의 기록이 첫 등장한 6세기 이전에 씌여졌다는 신공기.

 

그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일본 14대 중애천황은 지금의 큐슈 남부 지방 정벌을 계획합니다.

하지만, 아내인 신공황후가 이를 만류하며 신(神)이 자신에게 한 약속을 전합니다.

 

바다 건너 보물이 많은 신라라는 나라가 있는데 제사를 잘 지내면 싸우지 않고도 항복을 받을수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애천황은 신공황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벌을 강행하다 전투 중 목숨을 잃습니다.

 

남편을 잃은 신공황후는 직접 만삭의 몸으로 신라를 정벌하러 바다를 건넙니다.

신공황후가 도착하자 신라 왕은 바닷가까지 달려와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을 합니다.

 

이 소문을 들은 백제와 고구려까지 달려나와 싸움 한번 없이 항복을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임나일본부설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뭐.. 딱히 할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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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황후의 설화에 따르면 아이가 태어날 때가 2년이 지났는데도 나오질 않아, 

태중에 있는 아이에게 왜 나오질 않느냐 물어보니.. 응?

신라를 정벌하기 전까지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고 하는데..

 

 

 

단군왕검과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각종 설화들을 보더라도 설화는 그저 설화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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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일본서기의 신뢰도가 궁금합니다.

 

 

 

근현대사 뿐만 아니라 고대사까지 왜곡을 하는걸 보면, 이것들이 소설이지 과연 역사인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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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대사 또한 우리나라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흠명기라고 하는 일본의 역사서엔 왕의 탄생과 죽음 외에는 전부,

고대 한국사 이야기 입니다.

 

일본의  짝사랑은 고대로부터 시작된듯 합니다. 

 

가난한 자가 부자를 동경하듯, 일본도 자신들보다 월등한 문화를 자랑했던 가야와 삼국을 보면서,

동경과 그리움을 넘어 질투와 시기까지 했을 일본인들에게 연민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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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에 관한 기록이 우리에게 없는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당시 가야 입장에선 일본이라는 나라는 딱히 관심을 가질 만한 국가도 아니었을 뿐더러,

기록에 남길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것도 아니었던거 같습니다.

 

 

 

사실 임나일본부라는게 정말 존재했었는지 조차 알길이 없고, 또 이유야 어찌됐건,

 당시 일본으로선 결코 가야를 비롯 삼국이 망하기 전까진 그 나라들을 절대 넘어설 수 없었던,

 

자신들의 열등함을 거짓된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나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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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을 뒷바침하는 증거가 궁금합니다.

 

 

임나일본부는 외교를 담당하는 일본의 관청이고,

임나일본부설은 임나일본부를 왜곡하여 일본이 가야를 지배했었다는 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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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릉비를 1/2로 축소를 했는데도 그 크기가 상당합니다.

역시 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라 그런지 스케일도 남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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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멸망 후, 청나라때 재발견이 되었다고 하는 광개대왕릉비

하지만, 이 광개토대왕릉비가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뒷바침하는 근거로 활용되는 기막힌 일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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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을 살펴보자면,

 

"백잔과 신라는 예부터 고구려의 속국으로 조공을 바쳐왔다. 그러나,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잔 ? ? 를 깨트리고 신민으로 삼았다. 그리고 5년 뒤 광개토 대왕이 몸소 군을 이끌고 잔국(백제)를 쳤다."

 

라는 내용입니다. 일단 여기까지는 문제 없어 보입니다.

 

 

 

백잔은 고구려가 백제를 낮춰 부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백제 떨거지들 같은.. 역시 패권국 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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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근거로 내세우는 문제의 비문입니다.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잔 ? ?를 깨뜨리고 신민으로 삼았다."

 

단순히, 글자대로만 보면 일본의 주장대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비문의 올바른 뜻은

 

당시 일본이 백제와 신라를 침략하니, 고구려의 입장에선 자신의 속국이었던 두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명분을 얻고자 함이었을 뿐, 일본에서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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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비문에는 일본에 관한 언급이 3군데 정도 더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전부 고구려군에게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기록들이라고 합니다. 

 

 

당시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이 집권하는 역사상 최강의 국가였고, 더구나 당시 일본은,

고구려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만큼의 국력 또한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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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삼국사기에 기록된 역사를 보면, 당시 동시대에 신라 내물왕은 백제와 왜의 협공으로,

상당히 위험한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고구려에 지원을 요청하게 되고, 광개토대왕은 군사를 보내 신라를 구하였다. 라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여러 역사적 사실들로 비추어 봐도,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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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의 실제 관계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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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철을 이용해 다양한 방면에서 활용하고 있던 가야를, 

철에 비해 길이와 강도도 훨씬 떨어지는 무기를 갖고 있던 일본이 지배했었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말이 되질 않습니다.

 

 

 

현대로 치면, 첨단 무기를 사용하고 있는 국가를, 

재래식 무기를 갖고 있는 국가가 지배했었다는 소리입니다.

 

차라리 가야가 임나일본부를 통해 일본을 지배했었다라는 설이 더욱 설득력 있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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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의 무기체계가 얼마나 형편 없었는지를 말해주는 일화가 일본서기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제 성왕이 일본에 군사 3천을 요청했는데, 옷과 식량 뿐아니라 무기 또한 갖고 오지 말라고..

 

 

 

옷과 식량은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긴 하지만, 무기까지 갖고 오지 말라고 한건,

당시 일본이 사용했던 무기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당시 백제와 일본의 군사력 차이가 어느정도 였을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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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백제가 일본을 섬겼었다라는 헛소리까지 해댑니다.

그 근거로 제시하는게 바로 저 유명한 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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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지도에 새겨진 글자를 살펴보겠습니다.

 

전면에 새겨진 글자는,

 

泰 ? 四年五月十六日丙五正陽, 造百練鐵七支刀, 凱?百兵, 宜供供侯王 ? 

(태 ? 사년오월십육일병오정양, 조백연철칠지도, 개피백병, 의공공후왕. ? ? ? ? 작) 

 

그 뜻은,

 

태 ? 4년 5월 16일은 병오인데, 이 날 한 낮에 백번이나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에게 나누어 줄 만하다. ? ? ? ?가 만들다.

 

후면에 새겨진 글자는,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 傳示後世.

(선세이래, 미유차도, 백제왕세자기생성음고위왜왕지조, 전시후세.) 

 

그 뜻은,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가 기생성음이 왜왕 지(旨)를 책봉하여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중요한건, 백제의 근초고왕도 아닌 아들인 왕세자가 일본의 왕에게 준 점과, 

그 칠지도를 후세에 전하여 보여라. 라고 누가봐도 명령한 점 등을 보면, 

 

당시 백제와 일본의 관계가 어떤 관계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과의 칠지도 논쟁은 끊이질 않는다고 합니다.

 

(한자는 틀린 곳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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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지도를 근거로 내세우며 일본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소리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당시 백제는 근초고왕을 필두로 삼국중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시기로 일본은 물론, 

중국의 요서지방과, 산둥, 동진까지 그 영향력이 확대된 시기였습니다. 

 

저들의 주장대로, 당시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백제가 일본에게 칠지도를 바칠 정도였다면, 

그런 백제를 가뿐히 즈려밟아주는 군사력과 국력이 있었다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4세기경 일본의 상황을 살펴보면, 당시 철기문화를 가진 한반도인들이 일본 열도로 대거 이주한 시기였습니다.

당시 이들은 원주민들을 정복하면서, 소국들을 하나씩 통합해 나가다, 6세기 말에 이르러, 

고대 국가 체제를 완성하게 됩니다.

 

일본서기의 기록에도 603년 처음으로 관위제가 시행되었다는 기록이 있는걸 보면, 당시 일본은, 

강력한 왕권을 가진 고대 국가 체제는 아니었다는게 확실해 집니다.

 

한마디로, 근초고왕 사후 200년 정도 지난 뒤에야 비로소 국가다운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또한 4세기경, 일본의 군사력을 살펴보면 가야로부터 철을 수입하지만 제련 기술이 형편 없었던 지라,

철저히 가야의 제련 기술에 크게 의존하게 됩니다.

 

또한 기병도 없었을 뿐더러 무기도 열악한 수준에 군사들 또한 체계적으로 조직화 되지도 않은 병력들이라, 

일시적인 침략은 가능할지 모르나 고구려와 백제, 신라, 가야를 상대로 국가 차원의

전면전을 벌이는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게 정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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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임나일본부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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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당연한 거겠지만, 일본의 역사학자들도 대체적으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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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나일본부를 기록한 일본서기를 읽고 조선을 침략했다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

임나일본부설을 명분으로 삼아 조선을 침략을 했다는 설이 사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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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가 임나일본부설에 관한 기록을 봤을수는 있지만, 

임나일본부설을 전쟁에 이용한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대외적으론 정명가도, 가도입명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뭐 동기는 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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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설을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했다라는 소리는 일본의 정한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정한론은 뭘까요..

 

1870년대를 전후하여 일본에서 강력하게 대두된 조선에 대한 공략론 입니다.

다른말로, 19세기 말, 일본이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사이고 다카모리와, 요시다 쇼인이 있습니다.

 

참고로 요시다 쇼인은 근현대적 의미의 일본 우익사상의 창시자라고 합니다.

현재 일본의 우익들은 전부 이 인간의 사상을 따른다고 보면 됩니다.

 

현재 일본 총리의 선조가 대대로 요시다 쇼인의 제자라고 합니다.

현재까지의 아베의 행태를 보더라도, 아베 또한 정한론자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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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 창가를 들어보면, 

한일 합병을 정당화하고, 임나일본부설을 명분으로 삼아, 미화하기까지 합니다.

 

더구나 현재는 학계에서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는 기자조선설까지 들먹이기도 합니다.

 

 

기자조선설이란, 

단군조선 이후에 중국 은나라 말기 기자라는 사람이 조선에 와서 건국했다고 하는 설인데,

현재 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북한 사학자들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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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일제 강점기 시절의 역사관이 그대로 반영된 교과서가 나옵니다.

일본교과서를 보면, 마치 한국사를 보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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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보다도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가야의 역사가 조선사 연구에 비해 미비한 사실만으로도,

고대사 연구가 얼마나 안되고 있는지 잘 알것 같습니다.

 

물론, 그만큼 오래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관련된 자료의 소실이나, 발굴되는 유물의 한계등을 고려해도,

앞으로 좀 더 활발한 고대사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또한 역사학자들의 꾸준한 연구 못지 않게, 저를 비롯 일반사람들도

고대사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역사를 배움에 있어 편식은 없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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