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fmkorea.com/1903449436 복사
설악산의 대표적인 산행코스인 공룡능선, 매우 아름답지만 여러 등산인의 혼이 잠들어 있는 비극의 능선이기도 합니다.
봄철을 맞아 산행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입니다.
본인과 가족의 안전한 산행을 위한 경각심 고취 차원에서 93년도에 일어난 산악 조난사고사례를 올려봅니다.
93년 12월 16일
K대 고분자공학과 대학생 4인(김군, 이군, 박군, 엄군)은 오대산을 종주하려합니다. 하지만 하필 당시 오대산은 입산통제시기였고 이들은 즉흥적으로 설악산 공룡능선으로 종주계획을 변경합니다.
<여기가 이 비극의 시작점입니다. 코스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산행을 시도한 것, 그것도 겨울철 공룡능선이라는 난이도 있는 코스를 택했다는 것입니다.>
공룡능선을 타기위해 이들은 백담대피소를 출발하여
마등령으로 향합니다.
<아래 사진에서 마등령-희운각대피소 구간이 공룡능선입니다>
백담대피소(08:00) - 수렴동대피소 - 오세암(12:00) - 마등령 (14:00)
<12.17 아침 8시> 이들은 마등령을 향해 출발하고
<오후 2시경> 공룡능선으로 들어갈 수 있는 마등령에 도착합니다. 마등령에서 공룡능선을 타게 된 이들의 최종목적지는 희운각대피소였습니다. 위 사진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마등령 - 희운각 구간)
<12.17 오후2시> 마등령에서 희운각방향으로 출발
(여기서 또 한가지 교훈으로 삼을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공룡능선은 여름철에도 5시간이 걸리는 고난이도 코스인데다가, 당시는 5시면 날이 지는 겨울이었습니다. 즉 2시에 마등령을 출발한 이들은 아무리 빨리 간다해도 7시는 되어야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산과 코스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었더라면 무리한 산행을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부분입니다.
하필 당시에는 날씨도 좋았고 쌓인 눈도 그리 많지 않았다고합니다. 이 점이 이들을 방심하게 만들었던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참고사진상의 현재위치는 무시하시면 됩니다. 이들은 사진 설명과는 다르게 마등령 → 희운각 방향으로 종주를 했습니다.)
마등령(14:00) - 1275봉(16:00) - ????????????(21:00) - 희운각 대피소
14:00경 마등령을 출발한 이들은 2시간만이 16:00경 1275봉을 통과합니다.
이제 희운각 대피소를 향해 공룡능선 종주를 마무리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위 사진상으로 1275봉이라고 되어있는 곳에서 희운각이라고 된 곳까지 가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곧 설명겠지만 붉은 원 부분이 길을 잃고 해매다 희운각의 불빛을 목격한 조난추정지점입니다. )
...그러나 이때부터 이들의 종주에 비극의 그림자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합니다.
초행길이었던 이들은 길을 헷갈렸고 시간이 계속 지체되었습니다. 제대로 갔어도 날이 저문 19:00 쯤 희운각에 도착했을 텐데
길까지 해매느라 희운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감도 안잡히는 상황에서 바로 날이 어두워져 버립니다.
겨울철 설악산의 밤은 상상이상으로 가혹했습니다.
길을 해매며 걷는 이들 네 명은 엄청난 추위와 체력저하에 시달리게됩니다.
이러한 와중에 김군이 잠이온다고 호소하며 주저앉기를 반복합니다.(산행시 동사하는 가장 전형적인 유형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앞서나가던 이군이 발을 헛디뎌 발목을 삐고 아파서 걷지 못하겠다며 신발을 벗어 던져버립니다.
나머지 박군과 엄군은 자꾸 주저않는 김군을 억지로 끌고, 신발을 벗어던진 이군도 억지로 신발을 신겨서 꾸역꾸역 어둠속을 나아갔습니다.
희운각이 나타나길 간절히 희망하며..
그러던 중 드디어.. 이들에게 희운각대피소의 불빛이 보입니다.
(참고를 위한 희운각 대피소의 전경과 설명)
사투를 벌이던 이들 4명의 대학생 엄,박,이,김 은 희운각 대피소의 불빛을 발견하고 안도합니다.
멀리서 보이는 불빛이 아니라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불빛 이었기때문입니다. (아까 위의 사진에서 붉은 원 지점이 바로 이 상황에서 희운각의 불빛을 목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생존자 모군은 당시를 이렇게 말합니다.
"멀리서 아물거리는 것이 아니라 손에 잡힐 것 처럼 빤히 바라뵈는 불빛이었어요. 그러니 도와줄 사람을 금방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밤 9시 쯤이었어요."
눈앞에 보이는 대피소의 불빛. 일행 중 두 명은 체력적으로 매우 지쳐있었고 그 중 한명은 발목까지 삐어 체력적으로 점점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이들은 나름 최적의 판단을 고민합니다.
대피소의 위치가 보이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다친일행을 끌고 가기보단 멀쩡한 사람들이 먼저 대피소로 가서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들이 내린 판단을 다음과 같습니다.
① 발목을 삐어 더이상 걷기가 쉽지 않은 이군을 비교적 상태가 좋은 박군이 그 자리에 남아서 돌보며 구조를 기다림
② 체력저하를 호소하며 자꾸 주저않는 김군을 비교적 상태가 좋은 엄군이 데리고 희운각까지 가서 구조 요청하고
박군과 이군의 위치를 알림
이러한 판단하에 엄군과 김군은 눈앞에 보이는 불빛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희망을 건 채 박군은 다친 이군과 함께 남습니다.
남겨진 박군과 이군은 12월 설악산 야간의 엄청난 추위속에 텐트 플라이를 겹쳐 뒤집어 쓴채 친구들이 구조대를 불러오길 기다렸습니다.
텐트 플라이는 텐트 지붕을 덮는 천입니다. 맞바람이 치는 곳에서 이들은 텐트를 치지 못하고 플라이만 덮어서 추위를 견디려고 한 것입니다.
한편
구조를 기다리는 친구들을 위해 희운각대피소로 향해 나아가는 엄군과 김군.
그들은 금방이라도 대피소에 도착할 듯 싶었습니다. 바로 눈앞에 빤히 보이는 대피소의 불빛이었으니 말이죠.
하지만 상황은 예기치 못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엄군은 당시를 이렇게 말합니다.
"불빛은 보이는데 길은 절벽으로 끊어지곤 해서 귀신이 장난치는 것 같았다."
신선대에서 희운각으로 가는 길은 절벽지대의 경계선을 타고 이어지기때문에 초행자로서는 길이 끊어진다고 착각하기십상이라고 합니다.
신선봉쪽 절벽지대에서 희운각대피소로 가는 길이 끊어져있다고 착각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진.
절벽라인 능선을 타고가면 희운각에 도착하게 됩니다.(아래사진 A경로 참고) 하지만 위의 사진처럼 절벽라인에서 길이 끊어진 것으로 잘못 판단하면 오른편의 가야동 계곡쪽(아래사진B경로)으로 완전히 잘못 가게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칠흑같은 어둠속, 떨어져가는 체력과 친구들을 구해야한다는 다급함. 이런 혼란의 상황에서 엄군일행은 바로앞의 희운각으로 가는 길을 찾지못하고 오른편 가야동 계곡쪽으로 향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A길로 갔어야 하는데 절벽에서 길이 끊어져있다고 생각해서 오른쪽B 완만한 경사지대로 길을 잘못들었을 것으로 추정)
이들은 계속 완만한 경사를 따라 구르고 미끄러지며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발자국 여럿을 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위의 사진상 등산로 부근의 발자국이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 여기서라도 만약 등산로를 따라 계곡위쪽으로 올라갔다면
이들은 20분만에 희운각에 도달했을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앞선 등산객들도 길을 잃었던건지 엄군과 김군은 발자국을 따라 희운각과는 거리가 먼 완만한 능선 아래쪽으로
가고 맙니다.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상황에서 희운각이 나타날리가 없습니다.
가도 가도 나타나지 않는 목적지..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김군은 자리에 주저앉고 맙니다.
엄군에게 혼자라도 빨리가서 구조를 요청하라는 말을 남깁니다.
어쩔수 없이 엄군은 김군을 둔 채 혼자 필사적으로 걸음을 이어갑니다. 본인의 손에 3명의 목숨이 달려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방향만 맞았어도...)
하지만 결국 엄군마저도 너무 지쳤던터라 주저앉고 맙니다. 여기서 생사를 가른 엄군의 행동이 나옵니다.
바위아래 눈을 치우고 불을피운 것입니다.불을 이어가려면 나뭇가지를 주어와야하는데
그럴 기력조차 없었기에 짐으로 갖고 있던 라면과, 쌀을 나뭇가지 대신 태우며 불을 피우며 체온을 유지해 밤을 버텼습니다.
혹독한 추위를 버틴 후..어느정도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수 없으나 엄군은 다시 정신을 차린 후 길을찾아 해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날이 밝아져 있었습니다.
이윽고 엄군의 눈앞에 대피소가 보입니다.
< 12.18 Am 08: 00 엄군 수렴동대피소 도착 >
그곳은 희운각 대피소가 아닌 수렴동대피소였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어떻게 길을 잘못들었던것인지 지도를 통해 파악해 보겠습니다.
우측하단 신선대가 이들이 희운각대피소의 불빛을 목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입니다.
여기서 이들은 A를 향해 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위에서 본 사진처럼 절벽지대에서 길이 끊어져있다고 착각했고 오른쪽인 완만한 능선을 따라
B지점을 향해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음날 엄군이 도착한 수렴동대피소의 위치는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당시 수렴동대피소에서 엄군을 모습을 본 관리인 이영선씨의 말입니다.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총각 한사람이 비틀거리며 걸어오더니 쓰러졌어요. 허벅지 안쪽의 바지가 타 있었어요.
대피소안에 눕혔더니 2시간 뒤에 의식을 회복했고, 그제야 일행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필사적으로 대피소를 찾은 엄군은 바로 실신하였고 2시간 뒤 그가 깨어난 후 구조대는 일행들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신선대부근에서 친구들의 구조대 요청을 기다리며 기다리던 박군과 이군
엄군과 함께 잘못된 방향으로 가던 중 이동을 포기한 김군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산은 냉정하고 비극적이었습니다..
결말..
-신선대부근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일행
이군 : 기다리던 자리에서 친구 박군의 품에 안긴 채 동사 - 사망 ( 친구들이 떠난후 3시간 후 18일 AM 12:00 추정)
박군 : 사망한 이군을 안은 채 기다리던 중 새벽녘 40대 등반인 2명에게 구조( 18일 동틀무렵 ) - 생존
-구조를 요청하러 떠났던 일행
김군 : 희운각으로부터 2KM아래 가야동계곡 상류 지점에서 동사한 채 발견( 18일 새벽추정 ) - 사망
엄군 : 수렴동 대피소 도착 ( 18일 AM08:00 ) - 생존
사망한 김군이 발견된 장소도 희운각아래로 부터 2KM 지점이었다는 점이 더욱더 안타까운 점입니다.
코스에 대한 사전정보만 있었더라도..
일행이 구조를 요청하러 간 직후, 남겨진 박군과 이군의 구체적인 이야기입니다.
친구들이 떠난 후 박군은 너무나도 추워 배낭속에 든 라면을 꺼내는 일도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바람에 텐트플라이가 날아가기라도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군에게 계속 말을 걸었지만 점차 이군의 대답이 희미해집니다.
이에 박군은 욕을 하고 따귀를 때리며 이군이 정신을 차리도록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군의 헛소리는 어느새인가 신음으로 변했고..
어느 순간 더이상 호흡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늦어도 2시간이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구조 일행은 오지 않았고
죽은 친구의 곁에서 박군도 생사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동이 부옇게 터올 때 쯤....
40대 등산객 두 명이 박군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박군은 극적으로 생존하게 됩니다.
사건 개요 정리 및 교훈점
12월 겨울 설악산에서 4명의 대학생이 즉흥적으로 등산로를 변경하여 공룡능선을 종주하던 중
희운각 대피소의 불빛이 빤히 보이는 신선봉까지 이르렀음에도 길을찾기 못해 조난, 결국 2명이 동사한 사고입니다.
생존한 엄군의 경우 야간에 불을 피워 체온을 유지한 것이 결정적인 생존 요인으로 판단됩니다.
산행시 지도와 코스 사전정보 숙지는 필수적으로 해야한다는 교훈을 주는 사고사례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결코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는 안전한 산행 하시길 기원합니다.
설악산에 잠들어 있을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글을 마칩니다.
자료출처 : 아래 블로그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웹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구성했습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crrpp&logNo=150096908574&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당시기사 추가합니다.
<1993.12.19 한겨레>
<1993.12.20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