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기간
20-08-22 ~ 20-09-21
저는 지방의 의과대학 필수의료 영역에 해당하는 내과의 교수입니다. 저는 코로나 상황 이후 지금까지 단 하루의 휴가나 연차 없이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저희 병원의 교수들은 지금까지 아무 불평없이 자신의 업무에 추가로 코로나 선별진료소 진료를 해왔습니다. 저희 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 환자를 진료할 때 단 한번도 업무를 수련의들에게 전가하지 않고 직접 음압병상에 들어가 진료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절대적인 조건은 밖에서 다른 환자들을 책임져 주는 전공의와 인턴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 전임의 이하 모든 수련의들과 내년에 수련의로 배출되어야 할 의과대학생마저 의료현장을 떠나게 만드는 것은 전장에서 싸우는 장수의 수족을 자르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처음부터 이 싸움은 누가 시작하였습니까? 가만히 환자들을 보고 있는 의사들에게 칼을 빼든 것은 정부이지, 전쟁을 먼저 시작한 것은 의사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을 멈출 수 있는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도 정부이지, 의사들이 아닙니다.
입추를 지나 처서가 되었습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코로나 뿐만 아니라 일반 독감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가을과 겨울은 폐렴과 같은 감염성 질환 뿐만 아니라 심근경색, 뇌졸중과 같은 심혈관 질환 환자들도 증가하는 시기입니다. 지금 코로나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조짐을 보이는 시기와 이 시기가 일치할 때 이 환자들을 직접적으로 돌보던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에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의료 대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2차 코로나 대유행은 대구신천지 사태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당시에 전국에서 자원봉사를 지원했던 공보의들이 이번에는 나서지 못하도록 정부가 막았기 때문입니다. 유럽과 뉴욕주에서 코로나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에 공통적으로 부족한 의료 인력을 메우기 위해 의대생들에게 더 일찍 의사 면허를 주고 환자를 돌보게 했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고작 20대 어린 청년에 불과한 수련의들에게 말로 설득이 되지 않으니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겁박하는 것은 국가의 방역을 책임지고 있는 수장이 할 수 있는 판단과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료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 현장에 있던 의료인력마저 거리로 내몬 것은 국가입니다. 의료현장에 의사들이 없으면 그 위험은 결국 누가 감당하게 되겠습니까? 면허가 없어 집에서 쉬고 있는 의사들도 아니고,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내린 정부도 아닙니다. 바로 코로나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삶의 현장을 떠날 수 없는 국민들입니다.
국민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의사들이 열이 나는 환자를 치료할 때 그 열이 나는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내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치료하면 절대 병을 고칠수 없습니다. 지금 의사들이 반대하는 것은 정부가 필수의료 영역의 인력부족의 원인을 잘못 진단하여, 의대 정원 확대라는 잘못된 치료책을 내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오진을 하면 환자가 죽습니다. 정부가 오진을 하면 오천만 국민이 세금을 더 내고도 여전히 응급 외상을 당했을 때 코로나와 같은 판데믹 상황이 닥쳤을 때 여전히 의사가 부족한 현상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몸소 체험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것이 지금 당장 코로나 환자가 폭발하는 상황에서 의료 현장에 있는 의사들을 거리로 내몰 정도로 시급한 문제입니까?
언론인들께 호소합니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단면적이고 저급한 기사 배출을 중단해주십시오. 대신 왜 지방 필수 의료영역이라는 제 밥그릇은 아무도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지를 취재해주십시오. 그래서 아무로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 그 밥그릇의 주인을 국민의 세금을 들여 새로 키워내겠다는데, 그에 지불해야 할 세금이 어느정도 규모인지, 각 국민이 감당해야 할 의료보험비는 얼마나 증가하는지를 추산하여 알려주십시오. 또한 10년 후 그렇게 키워낸 의사들이 현장에 나오게 되면 과연 지금보다 필수의료영역의 상황이 좋아질 예측해주십시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는 거리로 나온 의사들이 다시 의료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보도해주십시오. 지금 당장 여러분에게 위기가 닥친다면, 여러분에게 인공호흡기를 삽관할 수 있는 유일한 손이 바로 그들의 손입니다.
정부에 호소합니다. 지금 당장 전쟁을 중지하고, 의사들이 의료 현장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공공병원과 공공의사양성의 당위성과 방법론은 차치하고서, 지금은 코로나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코로나 환자들은 폭증하고, 코로나 외의 질병은 치료가 연기되고 있으며, 병원에 남아있는 교수들의 심정적 동요가 심상치 않습니다.
의대정원 확대 문제는 코로나 상황이 완전히 해결된 후 원점에서 재검토해주십시오.
더 이상 수련의들을 겁박하지 말고, 설득하여 의료 현장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부교수
김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