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플라네타리안

겨우나기 작성일 06.05.16 22: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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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내공 : 상상초월


이 게임을 접하게 된 계기는 무척이나 평범했다.

마땅히 해야 할 일도 없이 무력하게, 습관적으로 인터넷 페이지를 뒤적이던 나의 눈에 이 게임이 띈 것은 어쩌면 기막힌 우연일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밤 늦게 퇴근을 하면 하늘을 바라본다. 공허하기만 한 하늘은 그 빛을 자신의 뒤에 감춘 채였다. 아름답운 밤하늘을 수놓던 별들은 시나브로 하나 둘씩 내 시선에서 떠나갔고 종래에 이르러 그 종적을 완벽하게 감추고 말았다.

내게 있어 별은 어린 시절 잃어버린 순수와도 같았다.

별을 잃어버린 밤하늘은 곧 나를 대신하고 있음이다.

언제나 잃어버린 별을 갈구하던 내게 이 게임은 우연하게도 나의 눈에 띄게 되었다.

게임의 배경.

게임의 바탕이 되는 시대적인 배경은 순수를 잃어버린 인간들에 의해 파괴되고 일그러진 세계다. 그를 대변해 주는 것이 바로 하늘을 뒤덮은 채 그 모습을 확고히하고 있는 짙은 비구름이다.

비의 습함과 질척임은 때때론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서글픈 것은 그 환경에 마저도 적응할 수 있던 인간의 모습. 그 비 아래에 목숨을 걸며 자신들의 생을 이어나가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벌인다.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도구로써 존재하던 기계를 대상으로, 혹은 자신과 똑같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을 대상으로.

주인공은 여기서 폐품상으로 등장한다. 사람의 향기가 없어져버린 '봉인 도시'에서 과거의 유물을 캐내어 그 가치의 유무에 따라 자신의 생을 연장할 수 있는 것들과 교환 할수 있는지 없는지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이들. 그들은 언제나 피와 화약내음으로 점철된 인생으로 살아간다.

어쩌면 이 모습은 현대의 우리 모습에 빗댈 수 있지 않을까. 돈을 위해, 명예를 위해, 더 높은 곳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가 지녔던 순수를 버리는 우리의 모습에 말이다. 폐품상에게 있어선 순수는 필요 없다. 타인도 필요없다. 그저 이득을 추구하는 목적만이 있을 뿐.


과거의 유물, 호시노 유메미.

그런 주인공 앞에 등장한 또 하나의 유물. 자신과 똑같지만 다른,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인 호시노 유메미라는 이름의 여성형 로봇이다. 호시노 유메미. 인간이 아닌 로봇이기에 그녀는 변하지 않는다. 과거의 모습 그대로 우리가 이전에 이미 버렸던 순수를 간직한 채, '손님'을 기다리는 그녀. 비록 그 순수가 어떤 이에 의해 만들어진 순수라 해도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는 우리네 인간에게 있어서, 또 게임의 배경에 녹아든 유저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매우 신선한 충격요소로 다가온다.

그녀는 여전히 과거에 머무른 채 과거의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인다. 답답할 정도로. 무려 29년 81일 만에 방문한 주인공을 25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 중에 한명으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충분히 파악될 만한 일. 백치에 가까운 융통성 제로인 그녀의 모습은 게임 내내 유저의 입가를 미소짓게 만든다.


꽃다발.

호시노 유메미는 주인공에게 잡동사니에 가까운 것들로 모아놓은 '꽃다발'을 선물한다. 과연 그것이 꽃다발이라 불리울 수 있을 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체불명의 것을 말이다. 그것은 블랙유머로 치부 할 정도로 암울한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았다. 그녀 자신은 과거의 기억들 속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엄연한 현실. 꽃이라는 연약한 생명이 살아가기엔 너무나도 척박해져버린 도시 였기에 그것은 무척이나 비참한 종류의 '꽃' 이었다.

나는 그러나 그것에서 또 하나의 순수를 볼 수 있었다. 누가봐도 쓰레기에 불과한 꽃다발.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손님인 주인공이 그 꽃다발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긴다. 로봇으로서의 생명이 꺼져가는 그 절박한 순간에 마저도 주인공에게 '꽃다발'의 위치를 말해주는 그녀에게 있어서 그것은, 결코 쓰레기 따위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는 우리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던 작고 소중한 것들에 대해 다시금 그 생각을 달리 하도록 일깨워주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 그리고 잃어버린 우리의 순수, 별.

플라네타리안에서의 비는 생명수로써의 역활을 해내지 못하는 오염된 비로 등장한다. 나는 플라네타리안을 보는 내내 이 비라는 존재가 밤하늘에게서 별을 앗아간 현대의 오염으로 비춰졌다.

잠시 현실로 돌아와, 나의 작은 일담을 소개코자 한다. 언젠가 나는 내 어린 조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꽤나 귀찮은 노동을 어른들로부터 떠안겨 받은 적이 있었다. 어린 아이들을 싫어하지 않는 나였기에 큰 불평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동화 속의 내용에 몰입하고 있을 때였다. 동화책에 나온 한 줄의 글귀를 막 끝내고 있을 때, 조카들 중 한명이 내게 불멘 목소리로 말했다.

"치, 그렇게 많은 별이 어딨어? 거짓말쟁이."

내가 읽은 글귀는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것은 '밤하늘을 가득 메운 수많은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요'라는 종류였다.

그러나 조카의 볼멘 말에 나는 변변한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나는 분명 기억하고 있다. 시골에서 보았던 수없이 많은 별들이 수놓아진 밤하늘을. 그러나, 서글프게도 지금의 하늘에는 별이 보이질 않는다. 낮에는 너무나도 맑고 푸르르게 보이던 하늘이 밤이 되고나면 너무나도 탁해 보일 뿐이었다.

다시 플라네타리안으로 돌아와 주인공을 살펴보자. 그 역시 내 조카와 마찬가지로 그토록 수많은 별이라는 것들을 본적이 없다. 애석하고 안타깝게도 하늘 위에 가득한 순수는 탁하디 탁한 비구름에 가려져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에 있어 하등 쓸모없고 도움 또한 되지 못하는 종류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정도의 가치 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주인공에게 있어서 처음 보게 된 별이라는 존재는 굳게 닫히고 얼어붙어있던 자신의 마음을 녹게 만들 정도로 커다란 감동을 선사했다. 그것은 비록 절묘한 타이밍에 정전이 되어 그 모습을 바라 볼수 없게 되었다 하더라도 주인공의 뇌리 속에 강렬하게 남게 할 정도였다.


천국을 둘로 나누지 말아주세요.

나는 이 말이 주어지는 의미를 게임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생각했다. 그녀가 바라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러다가 문득 게임 내에 떠올랐던 그녀의 대사가 한구절 떠올랐다.

"저희들 로봇은, 인간 분들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저런 난폭한 행동은, 사실 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 시오마네키와의 전투 中

나는 과거 우리들이 저질렀던 수많은 패악들이 불현듯 머릿 속을 스쳐지나갔다. 원시적인 전쟁에서부터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계속 진행형을 이루어 가고 있는 전쟁. 다수의 이익을 위해 자행된 인간들의 패악 속에서 정작 그 죽음의 당사자였던 그들은...싸우고 싶어 했을까. 근거를 두지 않는 이유 모를 분노. 생각과 사고를 정지시키는 비이성적인 분노. 죽음을 양식 삼아 그들의 가슴 속에 자리잡은 공포에 대한 분노. 그러나...그것들은 안타깝게도 모두 대상이 되는 것들이 없었다. 그저 자신과 다른 옷과 언어. 그리고 다른 인종이었다는 불명확한 이유만이 있을 뿐.

천국을 둘로 나누지 말아달라는 그녀의 말에는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야 말로 로봇의 지고한 사명이라는 그녀의 확고한 순수가 깃들어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기계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기계로 나누어 진다는 것은 그녀가 가진 순수로는 아마도 이해할 수 없는 종류였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점에서 사람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정상적인 평범한 사람이라면 일면식 조차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학살을 하고 싶어하는 인간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플라네타리안이라는 게임은, 별이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비록 그것이 무엇으로 해석되든, 그것은 유저의 몫이다. 결론? 짧다는 점만을 제외한다면 한번 쯤은...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한글화를 완벽하게 마쳐주신분께 심심한 감사와 갈채를 보내며 말을 줄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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