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님의 "향수"

hyujiz 작성일 05.12.20 19: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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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수(鄕愁)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조선지광󰡕 65호, 19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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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1923년 3월을 창작 시기로 추정하는데, 당시 22세에 상경한 시골 젊은이의 객수와 일제하 존재의 근거를 상실한 민족의 ‘잃어버린 공간’ 회복의 의지를 세련된 감각으로 처리한 모더니즘 계열의 초기시에 해당한다.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고향 옥천에 대한 향토색 짙은 기억을 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해 입체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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