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바토리(Erzsebet Bathory/1560~1614) - 뱀파이어의 모티브로 추정

이글아이12 작성일 06.11.10 15: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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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녀의 피로 목욕한 여인
+ 마녀, 혹은 흡혈귀라 불리는 실존인물
+ 1560년 Transylvania[현 루마니아 서북부 고원지방]의 명문가
+ Bathory가는 유럽제일의 합스 부르크가와 비견될 정도의 명문가로 사촌은 헝가리 왕국의 수상

+ 배경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실존하는 마녀, 혹은 흡혈귀로 불리운다. 트란실바니아 왕이나 폴란드 왕등을 배출한 굴지의 명문이었으나 막대한 재산과 영지를 잃지 않기 위해 근친 결혼을 많이 했고 때문에 집안에 미친 사람이나 정신이상자가 많았다.

바토리 여백작이 이 비극적인 삶에 빠지기 전 그녀는 페렌츠 나다스디 백작의 아내였지만 용맹하기로 이름난 남편은 아내에게는 소홀했다고 한다. 항상 전쟁에 나가있는 남편 대신에 그녀는 항상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야 했었는데 시어머니는 전통적인 장군 집안의 큰어른답게 매사 엄격하고 절도있는 매너를 <바토리>에게 세뇌 주입시켰다.

말만 결혼 생활이지 감옥이나 다름없는 규제속에서 그녀는 점차 말이 없고, 냉담하고, 음습한 여인으로 변모했다. 더욱이 <바토리가>의 유전병인 간질도 그녀를 정신적으로 돌아버리게 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바토리가는 근친상간에 의한 유전병으로 유명해 숙부는 간질로 죽었고, 숙모는 황음에 빠져 남편 세명을 먼저 보낸 가문이었다.


+ 처녀의 피로 목욕하는 여인

그러한 그녀에게 사악한 마법에 심취해 있던 시녀들이 접근해 왔는데 그녀는 시녀의 말을 듣고 마법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그녀는 하인과 시녀들의 꾀임에 빠져 농부의 딸들을 유인하여 마법의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그것은 그녀의 영지에 살고 있는 농부의 딸들을 잔인하게 고문한 뒤에 살해하는 것이었다.

그뒤 1600년, 그녀의 남편 페렌츠 나다스디 백작이 죽고나자. 그녀는 많은 남자들을 자신의 성으로 끌어들여 관계를 맺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 남자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또한 자신의 젊음을 위해서 엽기적인 행각을 저지르게 된다.

어느날 머리를 빗겨주던 하녀가 실수를 하여 머리가 심하게 땡겨지자, 바토리는 하녀의 따귀를 때렸고, 좀 심하게 때렸는지 하녀의 뺨이 손톱에 긁혀서 피가 났다. 그런데 그 피가 바토리의 손에 떨어졌고, 바토리는 순간적으로 손의 피부가 탱탱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젊은 처녀의 피가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비밀이라 생각한 그녀는 그 이후 수시로 처녀를 잡아다 죽여서, 그 피로 목욕을 했다.

<바토리>는 농가의 처녀들을 성안의 하녀로 사들였다. 그뒤 처녀들을 일단 잘 먹여 사육시킨 뒤 때가 되면 한명 한명, 또는 단체로 살해하여 그 피로 맛사지겸 목욕을 하는 엽기적 행각을 저지르게 된다. 그러나 점점 피부를 젊게 만드는 본래의 목적보다는 처녀들이 고통 속에 죽어 갈 때, 처녀들의 피를 받아 마실 때, 피를 욕조 가득 채우고 목욕 할 때 묘한 희열과 쾌감을 그녀는 느끼게 된다.

+ 잔혹한 성품

그녀의 잔혹한 성품을 말해주는 것 중에 배나무 사건이 있었다. 그녀의 영지에 사는 농부의 딸 하나가 배가 고픈 나머지 배를 하나 훔쳐먹는 사건이 발생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에게 아첨을 하는 하인들이 이 소녀를 밀고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소녀를 잡아다가 고문하기로 했다. 그러나 소녀는 고문을 하기도 전에 배를 따먹은 일을 자백하고 말았다.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소녀를 용서하기가 싫었다. 그러나 많은 농부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관대한 처분을 내린다면서 배나무에 하룻동안 묶어놓록 했다.

그 대신 그녀는 하녀에게 시켜 이 소녀의 전신에 꿀을 발라놓도록 했다. 꿀 냄새를 맡은 벌들이 사방에서 날아오기 시작했다. 소녀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으나 소용이 없었다. 수천, 수만 마리의 벌들에게 쏘인 소녀는 온몸이 퉁퉁 부어서 죽었다. 그래도 벌들은 그치지 않고 날아와 그녀의 몸에 달라붙은 꿀을 먹으려고 아우성이었다. 그녀가 죽자 이번에는 개미와 구더기가 달려들어 그녀의 시체를 파먹었다. 농부들은 엘리자베스 바토리의 잔인한 행동에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그녀는 헝가리의 왕녀였다. 권력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농부들은 감히 불평을 말할 수도 없었다.



[제 추신 : 제 기억으로는 꿀 냄새를 맡아서 벌들이 달려든 것이 아니라 그냥 개미나 구더기들이 달려들었다고 하던 것 같더군요]

바토리가 즐겨 사용했다던 대표적인 고문도구

> 철의 인형 또는 철의 여인

<바토리>가 독일의 유명한 기술자에게 특별 주문 제작한 것으로 실제 사람처럼 아주 정교하게 만든 철제 인형였다고 한다. 등신대의 벌거벗은 인형으로 피부는 사람과 똑같은 색이고, 기계장치로 눈과 입도 열리고 머리카락도 있었다. 여자를 벌거벗겨 인형 앞에 놓으면 톱니바퀴가 움직여 인형은 두 팔을 올려 여자를 감싸 안는다. 다음에 인형의 가슴이 열리는데 그 안은 비어있다.
좌우로 펼처진 문에 다섯 개의 칼날이 있다. 인형의 몸안에 갇힌 여자는 필사적이지만 칼로 전신을 찔려 뼈가 부서지고 처녀의 온몸을 사정없이 찌르면서 피를 뽑아낸다. 그 피는 인형안의 홈 을 따라 흘러 <바토리>의 욕조로 쏟아 지는 것이다.

> 철의 새장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새장에 여자들 무리하게 집어넣고 도르레를 사용해 허공에 매단다. 다음에 시녀들이 벽의 스위치를 누르면 몇 십개의 가시가 일제히 새장의 창살에서 안쪽으로 튀어나온다. 공포에 사로잡힌 여자들은 몸을 움직여 가시를 피하려고 하지만 새장은 허공에서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여자의 육체는 새장안에서 잘게 잘라지고 부수어져 그 피는 밑에 뚫린 많은 구멍에서 아래에 있는 큰 그릇 안으로 흘러내리게 된다. 새장 아래에 있던 <바토리>는 그 쏟아지는 피를 맞으며 샤워를 했다.

+ 바토리의 최후

<바토리>가 사는 체이터성에 들어간 처녀들은 두번 다시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음에도 성밖의 가난한 백성들은 거금의 돈을 탐내 자신의 딸들을 성으로 들여보냈다.
처녀사냥에 나선 모집책은 하녀 ˝토로코˝와 간호사 ˝일로나˝가 맡았고 피를 짜내는 데는 시종과 마법사들도 동원됐다고 한다.

이 엄청난 사건이 들통나게 된 것은 농부들의 딸로도 피가 부족해진 나머지 귀족의 딸에게 까지 손대다 꼬투리를 잡혔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체이테성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어 체이테성에 악녀들이 산다는 소문에서부터 흡혈귀가 산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게 되는 바람에 사람들은 체이테성에 가까이 가는 것을 두려워 하게 되고 교구의 한 사제도 이와 같은 소문을 듣게되어 들통이 났다는 두가지 설이 있다.


그 일로 인해서 <바토리>의 끔찍한 취미생활이 들어나게 되었고 1610년 12월 30일, 바토리의 사촌인 기오르기 투르소 백작이 일단의 군인과 기병대를 이끌고 그 성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때 마침 피의 의식이 진행되는 참이었다. 성에 들어간 백작은 지하 감옥에서 수십 구의 시체와 함께 온몸에 바늘로 찔린 자국이 수없이 난 채 아직 살아있는 희생자를 숱하게 발견했다.
그 정도로 여백작은 만족하지 못했는지 많은 수의 소녀들이 아직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바토리˝는 죽인 처녀들의 수를 일일이 일기에 적어둬서 그걸 근거로 해서 보면 죽인 여자들의 수는 612명 이나 되었다고 한다』

왕가의 친척이었던 덕분에 목숨만은 건졌지만, 여백작은 모든 창문과 문이 폐쇄된 방에서 3년 반을 살다가 1614년 8월 21일에 54살의 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그녀의 동조자들은 손가락, 발가락을 하나씩 자른 뒤 화형에처해졌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바토리 여백작 사건은 그 지역에 온갖 소문과 전설이 나도는 계기가 되었다. 그중 많은 전설은 여백작이 죽어서도 피의 쾌락을 찾아 계속 나타났고, 결국 진정한 의미의 흡혈귀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 etc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엄청나게 미인이었으며, 천사처럼 선해보이는 용모였고, 특히 피부가 거의 환상에 가까울 정도로 우유빛이었다고 전한다.

바토리는 제대로 교육을 받은 여자였을 뿐 아니라 남자를 능가할 정도로 엄청나게 똑똑했다고 하는데, 당시의 군주들이 거의 글을 읽지 못했던 반면, 바토리는 헝가리어는 물론 라틴어, 로마어에도 능통했으며 지적 수준이 상당한 경지에 올라있었다고 전한다.

그녀가 죽은 후에도 100년 이상 바토리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 금지되어있었을 만큼, 악명이 하늘을 찔렀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루마니아 군주 블라드 테페스를 모델로 한 것이 아니라, 실은 바로 이 여자 엘리자베스 바토리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여럿 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 백작 부인의 재판 기록은 아직도 헝가리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 사건이 일어났던 지역에서는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금기시 되어있으며, 주로 슬로바키아 출신 하녀들을 죽였기 때문에 이름 대신 The Hungarian Whore라는 별명으로 불린다고 하는데 이 지역의 인종 분포가 주로 헝가리 인과 슬라브 적이어서 직역하자면 헝가리 창X쯤 된다고 한다.



-그리고 저의 추신 : 사실 오늘날 엘리자베스 바토리 그녀가 실제로 ´피의 여왕´ 이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가문의 권력을 견제하고 그 재산을 차지하기 위한 정부의 음모였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정부의 음모로 인해 그녀가 이렇게 피를 즐기는 마녀로 전해지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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