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이경희.김상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단돈 1만 원에 안면장애 수술을 해준다는 의사 한성익(48). 안면장애를 앓는 이들을 만난 사연과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적은 책 '만원의 수술, 만원의 행복'(이지북)을 낸 그를 3일 서울 청담동 한성익성형외과에서 만났다.
책에는 없는, 그의 컴퓨터에 저장된 환자 사진은 상상 그 이상의 것이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맨살로 막혀 있는 여성, 콩알만한 살점이 귀가 있을 자리에 달린 아이, 입천장이 뚫린데다 한쪽 눈도 없어 물을 마시면 눈으로 나온다는 남성, 한쪽 눈이 다른 쪽 눈보다 한참 위에 붙어 있는 아이 등….
"이런 사람들 처음 보시죠? 인구 서른 명당 한 명은 될 정도로 많을 겁니다. 다만 집 밖에 나오지 않아 눈에 띄지 않는 거죠."
그는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갖게 되는 마음의 장애가 더 문제라고 했다. 안면장애를 타고난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주변의 괴롭힘에 시달리곤 한다. 사회생활에 적응하기는커녕, 폭행을 당해도 아무런 저항을 못하기 일쑤다. 그래서 대부분의 안면장애 환자들은 내성적이고 우울하다.
"이지메가 많다는 일본도 우리처럼 장애인을 천대하진 않아요. 독일은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장애인을 배려하고요. 돈만 많이 번다고 선진국은 아니지요."
눈 없는 이에게 눈을, 귀가 없는 이에겐 귀를 만들어주고, 입천장이 뚫린 이에겐 인공 뼈로 막아주고, 구개파열로 미간이 심하게 벌어진 이의 두개골을 바로잡는 게 그의 일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치대에 의대까지 졸업하고 독일 함부르크대에서 턱 얼굴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을 따는 지난한 수련 과정을 거쳤다.
"보는 눈이 사람마다 다르다 보니 미용 성형은 수술을 잘하고도 환자의 불만을 살 수 있어요. 하지만 눈 없는 사람에게 눈을 만들어주면 누구나 잘했다고 하거든요."
그는 정상적인 외모를 가지고도 조금 더 예뻐지겠다며 수술대에 오르는 미용 성형 풍토에 반기를 든다. 이목구비가 멀쩡한 사람이 성형을 해달라며 찾아오면 "충분히 예쁘니 수술할 필요 없다"며 돌려보내곤 한다. 1만 원 수술이 알음알음 알려진 뒤 간혹 영세민증명서를 갖고 와서 "쌍꺼풀 수술을 해달라"는 사람도 있단다. 그땐 안면장애 환자들의 사진을 보여준다.
서울에서 2000년 병원을 개업한 뒤 성당.교회.동사무소 등을 통해 소개받은 영세민 환자를 무료로 수술해주기 시작했다. 보험이 되지 않아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엄청난 수술비 때문에 수술은 꿈도 못 꾸는 이들의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그러다 '공짜' 수술이 환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는 걸 깨닫고 고민 끝에 '1만 원'을 수술비로 책정했다. 1만원이란 돈의 가치는 환자들에게는 끝까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명분과 책임을 줬다. 또 수술을 하기 전엔 환자에게 '돈을 벌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환자 한 명을 돕겠다'는 각서도 받는다. 단, 몽골의 환자들은 무료로 수술해준다. 그들에겐 1만 원도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백 수십 명이 수술대 위에서 새로 태어나는 과정엔 동료 의사들과 여러 후원자가 동참했단다.
"봉사가 아니라 재미있고 행복해서 하는, 평생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제 일입니다. 언젠가 하늘에 올라갈 때 천국행 보증수표가 되지 않겠나 하는 얄팍한 생각도 있고요. 그런데 이렇게 알려져서 천국 가는 길이 더 멀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