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아버지가 굉장히 부자였어요.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서 맘껏 놀고 맘껏 먹고 갔어요.
친척들도 힘들 때는 다 우리 집에 애들 데리고와서 살았어요.
그게 보통의 생활인가 보다 하고 살았어요.
동아방송에서 같이 일하던 남편이 동아 광고사태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어요.
사업을 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정말 쫄딱 망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나운서니까 사람들이 다 잘사는 줄 알더라고요.
그런 시선이 참 힘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데서는 택시를 탔다가 한 정거장 지나
다시 내려서 버스로 바꿔 타기도 했었어요.
그때는 정말 삶이 왜 그리 쓰라린지.......
쓰라린 것도 쓰라린 거지만 남편이 정말 미워지더라고요.
'왜 저 사람은 저런 일을 해서 아무 죄 없는 나를 이렇게 괴롭힐까?'
저는 지금도 주님의 기도를 할 때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이 부분만 나오면
왠지 목이 메는 듯합니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지만 그게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지......
다행히 그때 아나운서인 저한테 끊임없이 일이 주어져서
제 수입으로 생활은 어느 정도 나아져갔지요.
그런데 그때 저희 동네에 저같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망한 엄마가 있었어요.
그 엄마가 보험 일을 하게 됐는데 제가 그 엄마를
도와주는 것이라고는 그저 적금식 보험 하나 들어주는
것뿐이었죠.
물론 이자는 은행의 고금리상품보다 훨씬 낮았어요.
저는 어떻게 하면 돈이 얼마나 더 불어나는가 하는 계산을 잘 못해요.
월급 받을 때 이것저것 공제하고 받는것이 내 월급이려니 생각했고,
그래서 그 보험금도 월급에서 자동이체로 나가게 했지요.
조금 지나 그 엄마가 자기 큰딸이 중학교에 들어간다고 해서
제가 "조그만 거 하나 또 들게요." 이렇게 하다 보니까
그 엄마한테 보험을 세 개나 들게 됐어요.
그런데 그게 보장성 보험이라 이율은 떨어지지만
만기가 되면 생각지도 않은 목돈이 되는 거예요.
저는 만기가 언제인지도 몰랐는데 그 엄마가 저한테
전화해서 5백만 원씩 세 개를 한 달씩 건너서 타게
된다고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제가 그때 그걸 기초로 조그마한 집을 샀어요.
그때는 집 값이 쌌으니까요. 그때 그 엄마한테
도움을 준 게 나한테도 큰 도움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제가 그야말로 티 나게 남을 도운 건 없었지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좀 마음이 가벼워져요.
가끔 그 엄마를 만나면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의 우정 같은 게 있어서 참 편안해요.
- 좋은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