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가 옷깃을 여미며 안중근 의사님 영전에 올리나이다. 님 가신 지 101주년입니다. "평안도 호걸이 두 눈을 부릅뜨고 양을 죽이듯이 나의 원수를 죽였다. 하늘을 떠받칠 인물의 출현은 나라는 망하더라도 희망의 광명은 아직 있음을 말해준다"고 창강 김택영이 추모했듯이, 님은 망해가는 나라에서도 한줄기 희망이고 광명이었습니다.
님의 의거가 있었기에 망국노의 처지에서도 이 땅에서 조선인으로 행세할 수 있었고 중국땅에서 사람대접을 받게 되었으며, 의열사가 뒤를 잇게 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만주 무장투쟁의 기지도 님의 이름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님께서는 당대의 시류를 넘어 하늘의 뜻과 역사를 넓고 높게 조망할 줄 알았습니다. 짧은 32년의 결곡한 삶이나 늠연한 선비의 길 그리고 투혼을 지닌 무인의 결기는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 그대롭니다.
님께서는 어느 한 올도 삿됨이 없었습니다. 문천상이 "공자는 인(仁)을 이룩할 것을 말하고, 맹자는 의(義)를 취할 것을 강조한지라, 의를 다하는 그것만이 곧 인에 이르는 길이다"했거늘, 님은 인을 통해 의를 이루고, 의를 다해 인을 이루었습니다.
인성과 신성을 함께 갖춘 인물, 안중근 의사
하늘은 가끔 인성과 함께 신성을 갖춘 인물을 낸다는데, 님이야 말로 인성과 신성을 동반했습니다. 적군의 포로를 살려준 인성이나 적의 수괴를 처단한 신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만 섬의 끓는 피여! 열 말의 담력이여! 벼르고 벼른 기상 서릿발이 시퍼렀다
별안간 벼락치듯 천지를 뒤흔드니
총탄이 쏟아지는데 늠름한 그대의 모습이여!
만해 선사가 의거 소식을 듣고 쓴 글에서 님의 기상을 살핍니다.
"슬프다, 그러므로 자연의 형세를 돌아보지 않고 같은 인종 이웃나라를 해치는 자는 마침내 독부(獨夫)의 환난을 기필코 면하지 못할 것이다"란 최후진술에서 일제 패망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을 찾습니다.
그 시기에 만국공법과 공화주의를 깨친 높은 안목, 동양평화론에서 제시한 넓은 식견, 형집행을 앞두고도 흔들림 없이 쓴 여러 편의 웅혼한 휘호에서 님의 바위 같은 담력과 서릿발 같은 기상을 찾습니다.
"그가 이룬 것은 하늘이 시켰다 할 것이나 잡혀있던 200일 동안에 산 사람으로서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은 사람으로서 쉬운 일이 아니다."(김택영)
님께서 생명과 바꾼 '동양평화'는 아직 멀고, 이토를 비롯해 제국주의 괴물을 낳은 모태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토의 죽음을 슬퍼하고 추모제를 지낸 무리들의 모태와 혈통도 번창합니다. 하지만 역사의 업보, 하늘의 징벌, 진실과 정의의 승리는 필연입니다.
우국충정과 춘추대의, 명리를 한낱 티끌같이 여기며 대장부의 길을 걸었던 님이여, 순국의 날 새벽 멀리 고국의 부인이 섬섬옥수로 지어 보낸 조선옷 갈아입고, 동쪽 조국을 향해 기도하고 단정히 앉아 붓을 들었지요. "장부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고/의사는 위태로움에 처해도 기운이 푸른 구름과 같다."
어느 하늘 어느 땅 속에서 고국을 그리는지요
님이여, 가신 지 101주년, 백범 선생이 효창원 바로 이곳에 가묘를 만든 지도 61년이 지났건만 님의 유해는 어느 하늘 어느 땅 속에서 오늘도 고국을 그리는지요.
생사초월, 시공초월, 국경초월, 이념초월의 인성과 신성의 님이여, 죽어도 살아있음이여, 세월의 더께에도 시들지 않고 항상 생생함이여, 백범이 님의 가묘 묘단에 쓰신 대로 '유방백세'-꽃다운 향기여, 영원하소서.
님 가신 지 100년의 역사를 접고 한 세기가 다시 시작되는 첫 해의 순국일을 맞아, 여기 깨어 있는 동포 후진들이 청렬한 마음으로 향을 피우고 소찬을 마련하여 님의 뜻을 잇고자 합니다. '유방백세' - 꽃다운 님의 애국충혼이여, 영원하소서, 영생하소서.
* 이 글은 오늘(3월 26일) 오전 용산 효창원 안중근의사 가묘 앞에서 거행된 추도식의 추모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 기자는 전 독립기념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