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06년 20살 때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폐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담배는 입에도 대보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사회도 모르는 이 나이에 폐암이라니 그날부터 저는 4년을 보내며 하루 온종일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정말 남들은 짧은 기간이라 하겠지만 저는 이 기간이 너무나 길었고 지금도 매일 먹구름 위에서 사는 것만 같습니다. 갈수록 암이 전이 되어 이제는 더 이상 손도 쓸 수 없는 폐암 4기까지 왔답니다.
그러던 작년 여름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하고 무작정 떠났습니다. 여행 도중 만난 운명적인 사랑에 정말 영화 같은 며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도 잠시... 저는 갈수록 가슴의 통증이 심해지고 호흡은 날로 곤란해져만 갑니다.
기침을 할 때 마다 피가 나오고 음식물을 삼키기가 어려울 정도로 되고 목소리가 달라지고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아프고 숨쉬기가 갈수록 힘들어져만 갑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소설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3월 16일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놀랄 겨를도 없이 3월 20일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많은 이가 이 부분에 대해 이해 할 수 없겠지만 직접 민지 엄마를 만나본 저희 스텝진들은 사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의사 선생님께 수차례 몸이 이상하다고 해왔지만 저는 저의 지난날(?)을 말해 주지 못했고 또 매일 매일 너무도 고통스런 상태라 작년에 떠난 여행에 대한 추억의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항암치료를 하게 되면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고 속이 울렁이게 되고, 머리가 심하게 아플것이고 생리도 끊어질 수 있고, 토할 수도 있고...
또 아이를 낳아보지 못한(?) 무지한 저또한 그렇게 묻혀 가게 되었습니다.
엇박자의 기간을 보낸지 열 달 그 열 달 동안 아이를 뱃속에 두었으면서도 이렇게 정말 아무것도 모르며 지난 것입니다.
이제 8개월이 되었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민지' 라고 지었습니다. 아이가 커 갈수록 저의 몸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정말이지 아이와 헤어지기 싫습니다. 아이가 '엄마'라는 말을 할때 까지만 이라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나이 26살 저 정말 피어보지도 못했습니다. 항암 치료로 병의 진행속도를 늦추고는 있지만 이제 뇌에 까지 전이 되었습니다. 제 몸이 너무나 많이 순간마다 지치고 지칩니다.
올해가 다 지나 가는데 왜 이렇게도 보는 것 마다 그립습니까?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데도 아이를 안고 만지고 있는데도 왜 자꾸 그립기만 합니까?
처음 어처구니없는 임신을 알고(?) 처음 심장 소리를 들었을 때 감사함보다 항암치료로 인하여 걱정이 앞섰습니다.
순간순간마다 정말 두려웠습니다. 기저귀를 갈 때도 우유를 먹일 때도 배냇 저고리를 입힐 때도 민지와 헤어질 것을 생각하면 두렵고 무섭고 그립고 사무칩니다.
입양을 보내고 싶어도 저의 이 험한 몸에서 난 아이라 또 다른 분에게 짐을 지을 수 없습니다. 8개월 된 나의 딸 민지에게 천 번을 불러도 만 번을 불러도 미안하기만 합니다.
이제 악착같이 살겠습니다. 더 험한 항암치료도 받겠습니다. 이제 뇌 까지 전이 되었지만 저 세상에서 제 아무리 저를 가자고 불러대도 목숨 걸고 버티겠습니다. 민지와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저...정말, 정말로 말입니다. 민지를 두고 죽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죽어야 한다면... 민지를 부탁합니다. 저의 남은 시간이 온 몸을 녹이는 것만 같습니다.
'다시한번 부탁을 합니다. 민지를 부탁합니다!'
- 민지엄마 (새벽편지 가족) -
사연의 주인공인 박모(26)씨는 미혼모로 현재 서울 화곡동 한 작은 방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대 병원에서 폐암 진단을 받고 현재 일산 원자력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은 너무나 절박합니다. 민지 엄마가 완쾌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뇌로 전이 된 종양은 민지 엄마를 쉬지 않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민지엄마에게는 남은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유난히 추우리라는 올 겨울! 모녀에게 우리 새벽편지 모든 가족께서 십시일반으로 사랑의 뜻이 모아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