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도시락 다섯 개를 정성스레 싸서 우리를 학교에 보냈다.
당시 흔하지 않았던 계란말이와 소시지 반찬이라도 싸 오는 날이면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학교 끝나고 가는 길, 우리 집은 동네 휴게소처럼 북적거렸다.
어머니는 여름이면 참외 한 포대를 마당에 놓고 집으로 가는 내 친구들 손에 쥐여 주었다.
추운 날엔 라면 한 상자를 사 놓고 우리 집에 놀러온 친구들에게 끓여 주었다.
공부 잘하는 친구, 못하는 친구, 장난꾸러기 친구 모두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걸 좋아했다.
그땐 몰랐다. 늘 웃으며 베푸는 어머니를 보며 우리 집이 잘사는 줄 알았다.
공부 잘하고 선생님에게 칭찬받는 모범생인 데다 매년 반장을 도맡았기에 친구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이 한참 지나고야 알았다.
어머니는 오 남매를 학교에 보내고 동네 밭으로, 과수원으로, 공장으로 일하러 갔다가 우리가 올 즈음 집에 돌아왔다.
과수원에서 일하면 품삯으로 과일 한 포대를 받아 배고픈 내 친구들에게 깎아 주었다.
당신 얼굴에는 로션 하나 안 바르고, 자식들 기 세우려 도시락 반찬을 유별나게 싸 주고,
동네 휴게소 주인 행세도 한 것이었다. 자식들이 어디서든 당당할 수 있게
가난을 눈치채지 않도록 연기한 사실을 그땐 미처 몰랐다.
코흘리개 친구들을 만나면 아직도 어머니 안부부터 물어보고, 어머니가 잘해 준 일을 하나하나 기억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를 어릴 적 반장으로 높여 주고, 기대는 걸 보면서 지금의 나는 어머니가 만든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부모가 하는 일이 다 낸중에 자식들 밑거름이 되는 기라. 내 자식 잘되게 하려면 뭔들 못하겠노.
내 새끼 귀하면 넘의 새끼도 귀하고, 넘의 새끼한테 잘해 주면 내 새끼는 어디 나가도 대접받는 기라.
내 몸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제. 내가 더 뛰어대니고, 덜 묵고, 덜 쓰면서 남한테 베풀면 더 크게 돌아오는 기라.
그리고 그때의 마음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데이.
” 초등학교밖에 못 나온 게 한이 되어 자식 공부시키는 일을 목숨같이 생각한 어머니.
썩은 귀퉁이 잘라 먹고, 상한 음식 끓여 먹으면서도 남에겐 크고 좋은 것만 준 어머니.
나는 어머니 때문에 어긋날 수 없었다. 적어도 누구 집 아들이란 이름이 어머니에게 누가 되지 않게 하련다.
가진 건 없어도 마음만은 누구보다 부자인, 늘 주변을 따뜻하게 살피는 어머니처럼 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