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깨닫습니다

온리원럽 작성일 13.04.17 23: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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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삼대독자 집안으로 시집오셨습니다. 한동안 임신을 못해 많이 힘드셨대요.

그러다 7년 만에 나를 낳았는데, 기다리던 아들이 아니어서 호된 시집살이를 하셨답니다.

당시 엄마는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다른 엄마는 으깬 쌀밥에 물을 말아 아기에게 먹인다는데

엄마는 내 피부가 검다고 일부러 먼 거리를 걸어 우유를 사 오셨대요.

그렇게 정성을 다해 키우셨는데도 나는 생일상에 초코파이 하나 없어서 친구들을 초대하지 못한다고 짜증 냈습니다.

두 남동생이 태어난 뒤 늘 찬밥 신세였거든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때였습니다. 아빠가 허리를 다치셔서 엄마가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지요.

그러자 할머니는 내게 고등학교 가지 말고 남동생 뒷바라지나 하라고 하셨습니다.

서러워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 때 엄마가 난생처음 할머니에게 큰 소리를 내셨습니다.

“어머니! 제가 가르치겠습니다.”

덕분에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엄마는 더 힘들게 일하셔야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엄마에게 도움만 받았습니다.

시집가서도 아기를 엄마에게 맡기고 맞벌이했습니다.

하루는 아기가 우유를 토해서 수건을 가지러 간 사이, 엄마가 걸레로 아기 얼굴을 닦으셨습니다.

기겁해서 버럭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걸레가 아니라 엄마 러닝이었습니다.

너무 해져서 걸레로 착각한 겁니다.

죄송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그거 버리라고 했잖아!”라며 도리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퇴근하고 오면 엄마가 집에 계시지 않은 날이 많았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아기 돌보느라 갑갑해서 바람 쐬러 가셨나 싶었지요.

찬바람 불던 어느 날, 엄마가 또 집을 비우셨습니다. 얼마 뒤 아기를 업고 들어오시는 엄마에게 다그치듯 말했습니다.

“아기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낮에 많이 자서 저녁에 안 자면 네가 잠 설칠까 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나는 늘 엄마 가슴에 상처를 냈습니다.

아기 돌잔치 때도 그랬지요. 시댁 식구들도 있으니까 빈손으로 오시지 말라며 선물 살 돈을 건넸습니다.

엄마는 돈 있다면서 한사코 거절하셨지요. 한참이 지나 알았습니다.

엄마의 쌍가락지가 얇은 실 반지로 바뀐 것을... 오랜 세월이 흘러 갓난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생일 파티를 해 주고 싶어 친구들을 초대하라고 했는데, 반응이 시큰둥했습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나, 생각했지요.

그런데 우연히 아이 일기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집이 너무 작고 초라해서 친구들을 초대하기 창피하다고 쓰인 겁니다. 만감이 교차해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어릴 적 내가 생일에 맛있는 음식을 안 해 준다고 짜증 냈을 때 엄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나는 늘 엄마가 상처 받지 않는, 강철 가슴을 가지셨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아무리 나이 들어도 예나 지금이나 느끼는 것은 똑같은데 말이죠.

그동안 엄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못난 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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