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학교가 파하자마자 비가 내렸다.
친구 두 명과 고무신을 신은 채 논틀밭틀길을 걷다 딸기밭을 발견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딸기를 따 먹기 시작했다.
배가 부르자 우산을 그릇 삼아 딸기를 담았다.
비가 오든지 말든지 서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한 아저씨가
“네 이놈들!”
하면서 달려왔다.
부리나케 도망가는데 한쪽 발이 진흙 구덩이에 푹 빠지면서 고무신이 벗겨졌다.
고무신을 가지러 가자니 잡힐 것 같고, 그대로 가면 엄마한테 혼날 것 같고…….
머뭇거리는 사이 아저씨가 눈앞까지 쫓아왔다.
결국 체념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나 하나 잡은 걸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친구들을 향해 계속 뛰어갔다.
‘기회는 이때다!’
나는 진흙에 빠진 고무신을 움켜쥐고 아저씨 반대 반향으로 도망쳤다.
친구들을 뒤쫓다 포기한 아저씨는 방향을 틀어 성큼성큼 걸어왔다.
내가 없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저씨와 눈이 마주친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냅다 뛰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발바닥도 아팠지만 잡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뛰고 또 뛰었다.
어렵사리 아저씨를 따돌린 나는 ‘살았다!’ 하고 안도하며 먼 길을 돌아 집에 들어갔다.
다음 날, 어제 일은 까맣게 잊고 학교 앞에 다다랐는데 어디선가
“너 좀 뛰더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였다.
‘이젠 죽었구나.’ 싶어 눈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딸기는 따 먹어도 괜찮은데 밭을 망치면 안 된단다. 딸기가 먹고 싶거들랑 언제든지 와도 좋다.”
하곤 웃으며 돌아갔다.
철부지를 혼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사는 지혜를 깨우쳐 주기 위해 십 리 길을 마다치 않고 왔을 아저씨.
지금도 그곳에 가면 아저씨가
“너, 참 오랜만이다.”
하며 반겨 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