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응원

온리원럽 작성일 13.05.08 22: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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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은 변두리에서 작은 술집을 했다.
날씨가 추워지자 개미 한 마리 드나들지 않았고, 부채는 늘어만 갔다.
엄마의 신용 카드는 정지되고 아빠는 신용 불량자가 될 처지였다.
은행 빚 독촉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우리 집 분위기도 냉랭해졌다.
적막한 집에는 부모님에게 돈을 빌려 준 친척 어른들의 전화벨 소리만 가득했다.
주말 아침 채권자가 느닷없이 문을 두드리면, 모두 한데 모여 벌벌 떨었다.

집엔 소주병만 굴러다니고, 아빠 얼굴은 점점 그늘졌다.
엄마는 날마다 울어 눈이 부었다.
부모님은 살기 싫다는 말을 자주 하며 싸웠다.
그때마다 나는 동생 손을 꼭 잡고 귀를 막았다.

그러던 중, 부모님 결혼기념일이 다가왔다.
나와 동생은 부모님 결혼기념이면 용돈을 모아 케이크를 사고 편지를 썼다.
부모님은 우리 정성을 갸륵해하며 집에서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하지만 그해만큼은 마치 금기 사항이라도 되듯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밖으로만 나돌던 나는 그날도 친구들과 오락실 노래방에서 놀다 밤 열 시쯤 억지로 집에 들어갔다.
한데 현관문에 색색의 종이가 다닥다닥 붙은 게 아닌가!
웬 광고지인가 하고 지나치려다

“언니!”

라는 작은 글씨가 눈에 띄어 멈칫했다.
종이를 자세히 들여다본 나는 눈을 의심했다.
거기엔 이렇게 쓰였다.

“언니! 힘내! 그리고 찡그리지 마. 언니는 웃는 게 예뻐. 웃는 사람에게 복이 온대요.”

밑에는 초코파이 한 상자도 놓였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일의 전말은 이러했다.
우리 윗집엔 아주머니가 작은 공부방을 해서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들로 늘 북적거렸다.
나는 큰 소리로 뛰노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야단쳤고, 아이들은 나를 무서운 언니, 누나라고 부르며 졸졸 따라다녔다.
몇 번 그러다 친해져서 같이 놀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으며 허물없이 지냈다.
순수하고 밝은 아이들이라 함께하면 즐거웠다.

하지만 집에 안 좋은 일들이 생기고부터 점점 웃음을 잃고 아이들과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꽤 유심히 지켜보았나 보다.
저희끼리 추리하다 집에 가서 재잘재잘 이야기했고, 아주머니들은

“무서운 언니네 집에 힘든 일이 있나 보다.”

하고 장단을 맞춰 준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편지를 쓰고 용돈 오백 원, 천 원을 모아 초코파이를 준비한 것이었다.
아이들의 위로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집으로 들어가니 축 처진 부모님의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불현듯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까지 말썽 피워서 죄송하다고 울먹였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당황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참아 온 눈물을 터뜨렸다.
아빠는 벌건 눈으로 열심히 살아 보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 뒤 아이들의 귀여운 응원은 아파트 단지에 퍼졌고, 우리 사정을 전해 들은 이웃들은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일자리도 알아봐 주고, 먹을거리를 나눠 주었다.
무엇보다 감사한 일은, 마주칠 때마다 웃는 얼굴로

“힘내요!”

“기운 내, ㅇㅇ엄마!”

하는 위로의 인사였다.

지금 부모님은 빚을 갚기 위해 김치 공장에서 땀 흘려 일한다.
아빠는 가끔 얼큰하게 취하면 말하곤 한다.
그때, 그 말들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
힘내라는 한마디에 천 냥 빚을 다 갚은 것 같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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