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산의 산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그때 살던 곳이 보이는 반대편 동네에 산다. 옛 동네는 여전히 집이 따닥따닥 붙어 있고, 좁은 골목도 그대로다. 얼마 전 엄마와 나란히 누워 옛이야기를 나눴다.
“엄마, 나 초등학생 때 골목 꺾어 들어가다 똥지게랑 부딪혔잖아. 하하.”
“그래, 길이 구불구불해서 종종 그런 일이 있었지.”
그때 엄마가 나지막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 떼어 놓고 일하면서 밥은 잘 챙겨 먹는지 걱정돼 점심때마다 집으로 얼마나 뛰어갔는지…….”
40분 넘는 거리를 매일 달려와서 우리 밥 차려 주고, 정작 당신은 빈속으로 다시 공장에 가셨단다.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어릴 때 내가 사는 가난한 동네를, 그 꼬불꼬불한 골목을 정말 싫어했다. 그런데 엄마가 그 길을 어떤 마음으로 달리셨을지 생각하니 죄송하고 또 감사했다.
다른 집 엄마들은 학교 다녀오면 따뜻하게 맞아 주고, 간식도 챙겨 준다며 부러워했다. 부모님은 내게 관심 없다고 여겼는데 실은 큰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옆에서 잠드신 엄마 얼굴을 바라보니 주름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는 듯했다.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이렇게 늙으셨구나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시렸다. 나는 속으로나마 ‘엄마, 크나큰 사랑에 보답하는 딸 될게요.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부모님 사랑을 의심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일이 있을까? 부모님이 곁에 계신 것만으로 우리는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