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능 많은 야구 소년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야구에 매달렸고, 중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여러 대회에서 유망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대회가 끝나면 학교 앞 현수막에 “장하다! ○○중 야구부 대회 우승!”이라는 글과 우수 선수상을 받은 선배와 친구, 내 이름이 나란히 적혔다.
야구에 한창 재미를 느낄 즈음, 집안 사정이 기울었다. 가계부를 살피던 아버지는 몇십만 원씩 비는 것을 알아채고 어머니를 추궁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 살림살이를 던지며 싸우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밖에 나가 술을 마셨고, 그 화살은 나와 동생에게 날아왔다. 나는 눈물 흘리면서도 다음 날 야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전날의 싸움으로 집 안은 난장판이었고,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잠들었다.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
“누구세요?”
걸쭉한 목소리의 중년 사내가 말했다.
“문 좀 열어 브러야? 응?”
그날부터 시작된 빚쟁이들과의 전쟁은 3년 넘게 이어졌다. 알고 보니 어머니가 가게를 하며 물건을 대기 위해 현금 서비스와 대출을 받은 것이었다. 아버지와 싸운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그마저도 어려워지자 사채에 손을 댔다.
급기야 어머니는 내가 출전하는 전국 대회 결승 전날에 잠적해 버렸다. 나는 그날의 홈런을 부모님이 아닌 빚쟁이들에게 보여 줬다. 그리고 내 고등학교 진학과 야구 자금은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걸 막는 데 써야 했다. 다행히 야구로 유명한 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뽑힌 나는 꿈에 한 발 다가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이 더 어려워져 야구를 포기해야 했고, 야구공과 배트 대신 연필을 들어야만 했다. 그래도 나는 야구를 내려놓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연습장으로 달려가 공을 던졌다. 그 간절함이 전해졌을까. 대학에 들어가 치른 선수 선발 시험에서 합격했다. 꿈에 그리던 프로 야구 선수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무리하게 연습한 탓일까? 입단한 지 한 달 만에 어깨에 탈이 나고 말았다. 공 속도는 점점 떨어졌고, 화구는 무뎌져 연습 경기에서도 홈런과 장타를 밥 먹듯 맞았다. 부상 때문에 훈련을 제대로 못해 경기에 나가 보지도 못한 채 유니폼을 벗을 위기에 처했다.
나는 고민 끝에 포수로 전향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1군에서는 어깨가 강하고 공수를 겸비한 포수를 필요로 했다. 결국 나는 한 경기에서 도루를 아홉 개나 허용한 끝에 이별 통보를 받았다. 그 뒤 힘든 시간을 겪는데 문득 캐스터와 해설 위원이 야구 경기를 중계하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맞아, 야구는 선수만 하는 게 아니지!’
비록 경기장에서 뛰지는 못하지만, 캐스터나 해설 위원으로 야구와 함께할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시 뜨거워졌다. 지금 나는 군대에 들어와 방송을 담당하는 병사로 실무를 익히는 중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열심히 공부해 언젠가 스포츠 방송에서
“쭉~ 날아가는 공! 홈런입니다!”
하고 외칠 것이다. 야구에는 에이스가 있다. 그러나 에이스도 늘 잘 던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에이스라 불리는 이유는 홈런을 맞아도 실책해도 꿋꿋이 자신만의 공을 던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큰 위기가 찾아와도 꿈을 잃지 않고 견디면 나도 에이스가 될수 있을까? 그날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