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그것도 코미디 작가가 된 뒤 언제 어디서든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내 삶의 많은 것을 바꾸었다.
가장 큰 변화는 짧게는 1~2분, 길게는 10분 정도 이어지는 코미디 특성상 짧은 시간 안에 반복되는 웃음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생 자체의 호흡이 짧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책 한 권을 읽어도 장편소설은 답답해서 읽을 수 없고 진지한 대화는 5분 이상 잇기 힘들었다.
그런 내가 인생에서 가장 긴 소설이자 진지한 상대를 만났으니 다름 아닌 딸이다.
딸아이가 여섯 살 되던 해, 다리가 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부분의 동양 사람처럼 조금 휘었다고 보기엔 이상해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진찰을 마친 뒤 상상하지도 못한 얘기를 들었다.
다리가 휜 이유가 무릎 성장판에 이상이 있어서라는 것이다.
의사는 이대로 놓아두면 걷기조차 힘들 거라며, 오른쪽 다리부터 수술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게 시작일 뿐이란 걸 그땐 몰랐다.
마지막 수술을 하기까지 무려 7년이 걸렸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왜 하필 우리에게 이런 불행이 생겼을까 하는 원망과, 엄마인 내 탓이란 자책감에 너무 힘들었다.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약 없이 지내기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비 온 뒤 땅이 더욱 굳어진다는 말처럼, 힘든 일을 이겨 내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졌다.
그런 변화 때문이었을까?
가장 힘들었을 딸아이가 어느 날 교복을 입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다리가 정말 맘에 들어요. 엄마 아빠, 고맙습니다!”
나와 남편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딸아이는 7년 동안 고통마저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어른스러운 아이로 자란 것이다.
곧 이어지는 딸의 한마디.
“엄마 아빠처럼 좋은 부모님을 만난 걸 보니 나는 아무래도 전생에 지구를 구했나 봐요.”
“그럼 엄마 아빠는 전생에 지구가 아니라 우주를 구한 모양이네. 그러니까 이렇게 예쁜 딸을 만났지.”
좋은 코미디는 눈물과 웃음이 함께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딸의 한마디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가슴에서는 진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고로 지금 난 매일매일 최고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드는 중이다.
진짜 웃음이 넘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