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다.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내 가슴 속 눈물처럼 여겨졌다.
그날 아침 미사 뒤 원장 수녀님에게 좀 쉬고 싶다 하고 침대에 누웠지만 몸과 마음이 더 아파오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 엄마의 병세가 악화된 것을 보고 와서인지 기운이 빠지고,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점심시간 공동체 수녀님들이 방문을 두드리며 몸은 좀 어떠냐고, 식사할 수 있겠느냐 물었지만 그냥 안 먹고 쉬겠다고 말했다.
얼마 뒤 누군가 노크했다.
동기 수녀님이었다.
수녀님은
“엄마 때문에 아픈 거야?”
하면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더니 수도복을 벗고 내 옆에 눕는 게 아닌가.
“아이, 좁아라. 저리 좀 가 봐! 내가 너무 살이 쪘나봐.”
수녀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는 시늉을 했다.
나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어색하기도 했는데 말이다.
누운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어느새 비가 멈췄다.
수녀님이 이불 속에서 내 손을 잡아준 것도, 위로의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어쩌다 한 번씩 내뱉는 내 한숨에 같이 한숨만 쉬었을 뿐.
그러나 신기하게도 슬픔이 저 멀리 사라진 듯했다.
“아, 이제 내 방에 가야겠다. 기운 내라.”
방문을 닫고 나가는 수녀님의 뒷모습이 왜 그렇게 아름다웠을까.
고마움과 미안함이 마음 깊은 곳을 두드렸다.
10년 전 부모님을 여읜 수녀님의 슬픔을 나는 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
같은 해 같은 날 수녀원에 입회해서 4년 수련기를 보내고 또 9년을 함께 한 수녀님.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큰 의지가 되었던가.
힘들어하는 내게 조용히 다가와 눕던 수녀님이 엄마가 돌아가신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함께 아파하며 곁에 있어 준 수녀님의 말없는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선교사로 일하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 이태석 신부님의 '함께 있음'을 다시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처음에는 워낙 가난 하니까 여러 가지 계획을 많이 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같이 있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그들을 버리지 않고 함께 있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