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랫동네에 텔레비전을 보러 가면 아버지가
꼭 데리러 오셨다.
아버지 등에 업혀 그날 본 내용을 말씀드리면
“참 재미있데이.”
하셨다.
소여물 끓이는 아궁이 앞에 앉아 학교 얘기를 하면 또
“참 재미있데이.”
하셨다.
새벽녘에는 내가 추울까 봐 따뜻하게 보듬어 주셨는데 촉촉하게 땀이 배도 그 살가운 마음이 느껴져 깊이
잠든 척했다.
아버지는 교육열도 대단하셨다.
스승의 날에는 삐걱대는 낡은 자전거에 고구마 한 포대를 싣고 나타나셨다.
“선생님은 도시에 사니까 이렇게 맛있는 고구마 못 드셔 봤을 끼라.”
아버지 진심이야 어떻든 난 며칠간 뾰로통했다.
내 마음을 눈치챈 아버지는 다음 해 스승의 날
“이번엔 편지도 짤막하게 써서 넣었데이.”
하며 정성껏 포장한 선물을 내미셨다.
그런데 선생님은 편지를 읽고
“영옥아, 내가 아버지를 섭섭하게 해 드렸나 본데, 뭔지 여쭤 보고 알려 줄래?”
하셨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뛰어가
“아버지, 선생님이 서운하게 해 드린 적 있나?”
라고 채근했다.
아버지는 곰곰이 생각하다 무릎을
치셨다.
“아, 선물이 너무 ‘약소합니다.’라고 쓰다가 아무래도 ‘ㄱ’ 자를 뒷 글자에 붙였는갑따.
그라모 ‘야속합니다.’로 읽으신 거 아이가?”
아버지와 나는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며 웃곤 한다.
어느덧 여든 살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등은 힘없이 굽고,
머리는 흰 머리로 뒤덮였다.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던 다리는 지팡이에 의지하신 지 오래다.
하지만 마흔 넘은 딸이 들려주는 학교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시는 모습은 변함없다.
“아버지, 오래오래 살면서 ‘참 재미있데이.’ 하고 말해 주세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