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강사라 여러 대학을 다니게 되는데, 축제기간인 요즈음, 초청 특강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보인다. 강연자는 정치인, 연예인, 고위직 공무원인 동문, 대기업에 다니는 선배 등 다양하지만 강의내용은 대강 이런 것.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열풍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강의실마다 이 책이 자주 보인다. 지하철에서도 이 책을 읽는 젊은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아파도 '청춘이니까' 참아 보라는 것은 "시련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부연설명이 가능한 사회에서만 의미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의 청춘들이 처한 사회구조가 과연 '노력=열매'를 보장해 주고 있을까? 현재 고학력 청년백수가 300만 명이 넘는다는데 나는 이들이 '노력하지 않아서' 열매를 맺지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당신 생각은 어떤지.
하지만 사람들은 사회구조의 문제를 부정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면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희망?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이거 아는지 모르겠다. '할 수 있다!'는 감정. 이건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대의 현실을 섬세하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 젊은 작가 김애란의 단편 <베타별이 자오선을 지나갈 때, 내게>를 보자.
주인공 아영이의 재수하던 시절. 그녀는 한 달에 100만 원하는 기숙사형 학원은 돈이 없어서 쳐다볼 엄두도 못 냈고 세 달치 학원비를 선불로 받는 A급 학원은 언감생심. 고기반찬이 나오고 새벽에는 간식도 주는 한 달에 80만 원 짜리 학사도 별나라 이야기. 그녀가 공부하는 노량진의 11만 원짜리 독서실은 천막으로 칸을 구분한 공간에서 네 명이 함께 공부한다. 잠은 의자를 올리고 '연필처럼' 잔다.
이런 조건에서는 불리한 조건을 당찬 각오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주먹을 쥔 채 창밖을 바라보려 했으나 - 주위엔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 '열심히 하자!'라는 각오로 이불을 편 뒤 누웠지만 - 바닥이 너무 딱딱해서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는 것이 객관적 현실일 뿐.
희망의 사회적 계급화
2010년도 서울대 신입생의 아버지 직업을 조사해보니 사무직, 전문직, 경영 관리직이 전체의 65%에 이르고 비숙련 단순노동자는 0.9%에 불과했다(서울대학교 2010년 발표자료 - 서울대학교 신입생의 아버지 직업 변천사). 서울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713명이 서울대에 합격했는데 이중 42%가 강남, 서초, 송파구에서 나왔다. 참고로 서울은 25개 구다(연합뉴스, 2010년 2월 3일 보도자료).
그럼 명문대 입학과 직결되는 자사고, 외고를 보자. 자사고 학생들의 아버지 직업이 상위직에 해당하는 경우가 51%였고 외고의 경우 45%였다. 반면에 일반고 학생들 아버지의 경우 상위직이 13%였고 실업계는 4%에 불과했다. 반대로 하위직의 경우 자사고는 10%, 외고는 11%였고 일반고는 28%, 실업계는 32%였다(권영길 의원 보도자료 - 2009년 4월 29일).
경제적 변수와 학력 사이는 이처럼 천박하기 짝이 없는 '정교한 비례성'을 가진다. 그리고 이는 개인의 희망마저 통제한다. 권영길 의원실에서 조사한 아래의 자료를 보면, 외국어고의 경우 장래희망이 고소득 전문직인 경우가 76%에 이른다. 하지만 특성화고의 경우 3%에 불과하다. 반대로 중하위직종을 꿈꾸는 경우가 외국어고의 경우 11%에 불과하지만 특성화고는 79%에 이른다.
▲ 학교별 장래희망 비교 ⓒ 권영길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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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돈'이 이들을 명문대로 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하고 이것이 '희망'을 통제한다. 이 틀, 그러니까 '경제적 변수'와 학력(학벌)의 상관관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희망'을 꿈꾼다는 것의 계급적 차별이 대학생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그래서 '아파도 희망을 갖고 참으라!'는 말이 과연 대학생들에게 '할' 소리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왜 창조적으로 살 수 없게 되었는지를 고민하자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아직 재테크 하지 마라"(62-69쪽)라는 챕터에는 개그맨의 일화가 나온다. 신인개그맨 시절부터 재테크에 관심을 가진 사람치고 '성공한' 개그맨이 없다는 것.
이유인즉, 적금이다 무엇이다에 강박관념을 가지면 그 '푼돈 모으기' 목표에 매몰되어 개그맨이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해야 할 '창조적 아이디어'를 고민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행사다 무엇이다 '잔챙이 삶'에만 매진하게 된다는 것. 결국 '개그맨'으로서의 퀄리티를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난도 교수는 "신인 개그맨 때는 종잣돈보다 연습과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할 소리일까? 수많은 대학생들은 등록금이라는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공부 시간의 몇 배를 아르바이트에 쏟아붓고 있다. 이 때문에 학점 관리가 힘들어지고 '그래서' 삶 자체가 까칠해진다. '창조적 아이디어'를 고민하기 싫어서 '잔챙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이들을 '여기로' 내몰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 <베타별이 자오선을 지나갈 때, 내게>가 수록된 김애란의 단편집 <침이 고인다>의 표지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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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베타별이 자오선을 지나갈때, 내게>로 가보자. 아영이는 재수 후 서울의 사립대학에서 4녀 내내 우수한 성적에 토익도 900점이 넘는다. 그러나 서른 번째 낙방을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혹시 나는 정말 괴물이 아닐까?"
문제는 그 원인을 당사자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소개서 모범 답안은 '잘' 쓰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 자체가 잘 쓰여 있어야 하는 것." 사회는 그러한 인생을 스펙이라 말한다.
물론 이것은 '돈'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돈은 또 어떻게 벌어야 하는가? 아영이는 등록금 감당도 벅차다. 학부 내내 보습학원에서 치사하기 짝이 없는 대우를 감당하고도 버티어야 하는 것이 아영이의 현실이다. 그래서 그녀는 생각한다. "대체 나아진다는 게 무엇일까?" 청춘? 참으로 치사하다
물론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솔직한 책이다. 저자의 고민과 저자 제자들의 고민이 잘 녹아있다. 그런데 이를 어째. 저자는 서른네 살에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느냐 아니냐를 놓고 고민한 적이 있었음을 무진장 심각하게 밝힌다(137-140쪽). 교수가 된 그를 찾아오는 제자들은 UN 기구에서 일을 하니 마니를 고민한다(41-42쪽).
그만하자. 이런 이야기를 '현재'의 대한민국 청춘에게 '이입'시키는 것은 매우 무례하니까. 그 '희망'이 얼마나 서울대'스러운' 것인지를 왜 김난도 교수는 모르는 것일까?
'靑春'은 푸른 봄
문제는 이런 '희망고문'이 대학생들에게 "그래 할 수 있어!"(Can Do Spirit)라고 외치게끔 한다는 것이다. 외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외치는 것만' 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결국 대학생들에게 희망조차 '무용지물'인 현실의 구조적 문제에서 자신'만'은 이 바늘구멍을 뚫을 수 있다는 망상을 가져다준다. 그러면서 20대의 문제를 언제나 개인 자질의 문제로만 이해된다.
책을 보면, "불안하니까 청춘이다. 막막하니까 청춘이다. 흔들리니까 청춘이다. 외로우니까 청춘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희망조차 '부모' 변수와 분리시켜 주지 못한 이 사회의 수준 낮은 구조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청춘인데 왜 불안해야 하지?, 청춘인데 왜 막막해야 하지? 청춘인데 왜 흔들려야 하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 사회는 바늘구멍을 '뚫고 나갈' 의지의 부족을 '희망고문'으로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구멍자체가 원체 좁아 의지 자체가 사라졌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지 않은 상태에서 메아리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결국 대학생에게 부메랑이 된다. 지금의 세상은 기업의 면접관이 "어학연수도 안 다녀왔어요? 남들 열심히 공부할 때 노셨어요?"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아주 당연시 하는 요지경 세상이다. 어학연수? 아직까지 비행기타고 제주도조차 못 가 본 대학생들이 훨씬 많다는 것에 내가 십만 원을 걸겠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靑春'은 푸른 봄. 이들은 아파'도' 된다는 이 해괴망측한 논리. 이만큼 이 사회가 심각하다는 증거가 또 어디 있을까?
저 책보고 기가찼었는데 마음에 드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