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정부가 앞으로의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24일 발표된 내용 중에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책도 포함됐다. 침체된 부동산시장을 회복시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 이미 예고됐던 것처럼 LTV와 DTI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만약 자기 이름으로 된 주택 한 채 없다면, 일찌감치 기대를 접는 게 좋을 것 같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4가지로 정리했다.
1. 빚내게 해줄테니 집 사라고?
정부는 LTV는 70%, DTI는 60%로 단일화하겠다고 밝혔다. 비율을 높이는 한편, 지역과 은행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던 비율을 통일한 것.
LTV니 DTI니 하는 용어들이 어려워 보이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 은행에서 인정해주는 집값(담보가격)의 비율을 LTV(Loan to value)라고 한다. 사려는 집이 5억짜리라고 해서 그 집을 담보로 5억원을 빌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정해진 비율만큼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
DTI(Debt to income ratio)는 대출원리금(원금+이자) 상환액이 연간 총소득의 일정 비율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다. 연간 소득이 4000만원이고 DTI가 50%라면, 연간 대출원리금이 2000만원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번 정부 대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빚을 더 낼 수 있게 해줄테니 집을 사라’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그동안은 LTV 50%, DTI 50%가 적용돼 왔는데 각각 20%포인트, 10%포인트 높아졌다. 그만큼 돈을 더 빌릴 수 있다는 뜻이다.
먼저 대출자 입장에서는 주택을 구입할 때 금융기관에서 빌릴 수 있는 돈이 늘어난다.
LTV로 본다면 서울에 있는 5억짜리 집을 매입하는 경우 종전에는 은행 대출가능액이 2억5천만원었으나 앞으로 3억5천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해진다. DTI로는 연간 소득(수입)이 7천만원이고 DTI가 50%라면 지금까지 총부채의 연간 원리금·이자 상환액이 3천500만원을 초과하지 않아야 했지만 앞으로는 4천200만원으로 한도가 증액된다. (연합뉴스 7월24일)
DTI 비율만 높아진 게 아니라, 40대 미만의 DTI를 산정할 때 대출자의 소득으로 인정해주는 범위도 늘어난다. 역시 그만큼 돈을 더 빌릴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DTI 산정시 청장년층의 소득인정범위를 현행 10년에서 대출만기 범위내 60세까지로 확대키로 했다.
소득인정범위란 직전 1년 소득을 토대로 국세통계연보상의 연령대별 근로자 급여증가율을 감안해 예상소득을 추산하는 것으로 대출산정의 기준이 된다. 산식은 직전 1년소득+{직전 1년소득×(1×평균소득증율)}÷2이다.
연소득 3천500만원인 33세 회사원이 금리 4.0%, 대출만기 20년(분할상환)으로 한다면 지금까지 소득인정액이 4천57만원(10년간 소득증가율 31.8% 적용)이지만 앞으로는 4천664만원(20년 소득증가율 66.5% 적용)이 된다.
이에 따라 총 대출 가능액은 종전 3억3천500만원에서 3억8천500만원으로 5천만 원가량 불어난다. (연합뉴스 7월24일)
자, 그럼 이제 돈을 더 많이 빌릴 수 있게 됐으니 망설이지 말고 집을 사면 되는 걸까?
안타깝게도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주택을 구입할 사람들은 거의 구입했으며, 시장참여자들이 대출을 받지 못해 주택을 구입하지 못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컨센서스가 전혀 형성돼 있지 않다. 이런 마당에 대출을 더 많이, 더 쉽게 해주겠다고 해서 주택을 구입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6월17일)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지금 돈이 없어서 주택 구입을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매매시장 활성화 보다는 전·월세 시장 안정화가 우선돼야 하는 상황에서 LTV·DTI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머니투데이 7월24일)
그러니까 이런 얘기다. 빚을 내 5억원짜리 집을 샀는데, 힘들게 빚을 다 갚고 나니 집값이 4억원으로 떨어져 있다면? 빚을 낼 줄 몰라서 집을 사지 않고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 2차례에 걸친 경제쇼크로 ‘하우스푸어’ 등 과투자에 따른 후유증을 경험하면서 투자에 극히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며 “집값 상승이 불안한 상황에서 빚을 내서 집사는 것이 무리라는 여론이 팽배하다”고 설명했다. (머니투데이 7월24일)
2. 혜택 받는 사람은 따로 있다?
이번 대책으로 ‘진짜 혜택’을 받는 건 따로 있을지 모른다. 당장 LTV·DTI 완화의 효과는 집값이 높은 서울 강남권에서 가장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경환식 부동산 살리기의 과실은 강남 3구 등 고소득층이 주로 따먹을 가능성이 크다. LTV 규제를 완화할 경우 최대 수혜자는 강남 3구다. 강남 3구는 투기지역으로 지정돼 LTV가 40%로 묶여 있는데 70%로 일괄 적용할 경우 30%포인트가 늘어난다.
(중략)
또 빌릴 수 있는 돈도 고가 주택이 유리하다. DTI 영향을 제외하고 보면 6억원짜리 아파트 구입에 빌릴 수 있는 돈이 2억4000만원(6억원×0.4)에서 4억2000만원(6억원×0.7)으로 1억8000만원 늘어난다. 만약 3억원짜리 아파트라면 대출가능한 돈은 1억8000만원(3억원×0.6)에서 2억1000만원(3억원×0.7)으로 3000만원 늘어나는 데 그친다. 부동산 침체로 그동안 매매가 쉽지 않았던 고가 주택 소유자라면 반길 만한 제도 변화다. (주간경향 1086호, 7월29일)
실제로도 이번 대책에 가장 먼저 반응하고 있는 건 ‘강남3구’다.
강남지역이 먼저 반응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집값이 비싸 상대적으로 대출규제 완화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LTV 상한선이 10%포인트 오르면 1억원짜리 집은 1000만원 더 대출받을 수 있지만 5억원 주택은 5000만원을 더 빌릴 수 있다. 서울 반포동 삼일공인 서귀천 실장은 “정부가 임대소득 과세 방침을 철회한 데다 대출이 여유로워져 다주택자들이 주택 구입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7월25일)
반면 서민들에게는 부담이 돌아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의 주장이다.
김 의원은 “특히 DTI는 자기가 상환할 능력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가계부채 문제의 질적 악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면서 “게다가 LTV/DTI 규제 완화의 효과는 추가대출을 통해서 집을 살 수 있는 고소득층과 강남권에 집중돼 강남권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실매매와 상관없이 수도권 전반의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수도권 지가를 올리게 되면 오히려 서민들에게는 부담이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머니투데이 7월24일)
3. 내집마련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이번 부동산 대책이 무주택자들의 내집마련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슨 말일까?
정부는 인위적으로라도 주택수요를 늘려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계획이다.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줘서 주택수요를 늘리겠다는 것.
우선, 소득은 없지만 부동산 등 자산이 많은 일부 노년 계층은 집을 사기 더 쉬워진다.
또 노령층으로 소득은 없지만 실물자산이 많다면 담보 여력만큼 주택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대출자 본인과 배우자의 순자산에 전년도 은행 정기예금 가중평균금리를 곱한 금액으로 순자산 소득을 계산한 뒤 도시근로자 가구의 연평균 소득액(4인가구 기준 연 5천518만원)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한 상한규정을 폐지키로 한 것이다. (연합뉴스 7월24일)
정부는 또 이미 자기 집이 있는 사람들에게 주택청약 문턱을 낮춰주기로 했다.
정부는 집이 있는 유(有)주택자에게 주택 청약 문턱을 낮춰주고, 암호처럼 복잡하게 얽힌 청약 제도도 단순화하기로 했다. 우선 청약가점제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감점 규정이 사라진다. 현재 다주택자는 가점제 주택에 청약하면 ‘무주택 기간 점수’(최고 32점)에서 무조건 0점을 받는다. 문제는 이 항목뿐 아니라 주택 보유 수에 따라 추가로 5~15점을 더 감점당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7월25일)
문제는 그렇게 해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다 하더라도 무주택자들의 내집마련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돈은 있지만 집을 이미 소유해 추가로 주택시장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이 집을 사도록 해주자는 것”이라며 “주택시장에 추가자금이 들어와 수요가 생기면 매매가격이 상승하고 그러면 집 수요가 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집 없는 서민들은 그만큼 분양받기가 어려워진다. (머니투데이 7월24일)
4. 가계부채만 더 늘어난다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미 서민과 저소득층의 빚부담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또 상당수의 사람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생활자금이나 사업자금으로 쓰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대책이 가계부채 악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 : 다른 나라가 이른바 LTV가 70, 80%정도 간다 하는데. 그 이야기는 돈을 빌려서 집을 사는 경우에 한해서 그것도 장기적으로 대출을 갚는 것에 한해서 80%씩 빌려주는 것이지 거기에서 돈을 빌려서 생계·생업자금으로 쓰라고 80%까지 빌려주는 것은 아니란 말이에요. 따라서 주거는 그야말로 기본적인 생활수단이기 때문에 그걸 통해서 대출을 받아서 생계·생업을 꾸려라 하는 취지가 아니고. 그렇게 많이 돈이 필요하다면 이것은 이제 다른 신용대출방식이라든가 다른 대출구조의 변화를 줘야 되는 것이지. 무조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가라는 것은 은행은 손해를 하나도 안 보고. 말하자면 서민들 급한 돈을 땡겨 쓰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CBS라디오 정관용의 시사자키 7월15일)
이런 상황에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최근 밝힌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방침은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증가와 가계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엘티브이와 디티아이 규제를 완화할 경우 영세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생활자금이나 사업자금을 추가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마련할 유인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미 현재 주택담보대출의 상당부분이 주택구입 목적이 아닌 생활자금·사업자금 목적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겨레 6월19일)
금융권에 주택담보인정비율(LTV) 70%를 초과하는 대출잔액이 3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상당수는 그 동안 LTV 85%까지 허용됐던 상호금융에 남아있는 잔액. 정부가 LTV 규제를 금융권역과 관계없이 70%로 일원화하기로 한 만큼 대출 만기 시에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일보 7월25일)
"DTI·LTV? 결국 대출 받아서 집 사라는 거잖아요. 글쎄요. 그렇게 와 닿지 않네요. 지금도 갚아야 할 빚이 산더미에요. 여기서 더 빌리라니요? 어차피 뒷감당은 본인들의 몫일 텐데 너무 무책임한 정책 아닌가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거주하는 박모씨) (머니위크 337호, 6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