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물가가 기다렸다는 듯 줄줄이 널뛰기를 했다. 물가가 뛴다고 하면 우리네 서민은 값이 오르기 전에 하다못해 라면 한 상자라도 들여놓고 싶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사재기하기 뭣해 수수방관했다. 대신 연탄을 들이는 일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거실에서 활활 타며 두문불출 고삭부리 아내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연탄난로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 단골로 연탄 배달해 주는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연탄 500장만 외상으로 넣어 주세요. 다음 달에 월급 받는 즉시 입금할게요.”
“빵빵.” 연탄 아저씨는 하필이면 폭설이 쏟아질 즈음에 왔다. 냉큼 대문 빗장을 풀고 연탄을 보관하는 광문을 활짝 열었다. 트럭에서 연탄을 내려 손수레로 옮긴 뒤 광까지 끌고 가 차곡차곡 쌓는 아저씨 얼굴엔 까만 연탄 가루가 수북했다.
“아저씨, 이 커피 드시고 천천히 하세요.”
“고마워유~. 근디 일을 천천히 하면 안 돼유. 이따 또 금산까지 배달 가야 하거든유.”
날씨가 좋은 날에도 금산까지는 얼추 한 시간은 걸린다. 자칫 눈길에 바퀴라도 빠지면 오도 가도 못할 수도 있었다. “힘드시죠?”라며 인사치레로 걱정을 했다. 그렇지만 아저씨 대답은 오히려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다.
“아녀유. 일하는 게 행복해유. 제가 연탄을 배달하니 많은 사람이 추운 겨울을 훈훈하게 지낼 수 있잖아유. 또 남들은 어찌 볼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연탄으로 아이들 대학까지 가르쳤다는 데 긍지와 자부심까지 느끼니께유.”
경비원으로 입사해 칼바람 맞으며 모든 사람에게 거수 경레하는 날,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웠던 기억이 강물처럼 출렁였다. ‘이거 안 하면 밥 못 먹나?’ 라는 자문자답을 하루에도 열두 번 이상 되뇌었다.
토요일인 오늘도 근무한다. 엊저녁 연탄장수 아저씨의 소나무같이 꿋꿋한 기상을 떠올리면서 더 열심히 일하자고 다짐하며 다섯 시 43분 첫차에 올랐다.
<좋은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