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무렵 금은방을 운영했다. 처음 열었을 땐 구멍가게만도 못했다. 다섯 해 만에 겨우 금은방답게 확장했으나 무리하게 빚을 보탠 형편이었다.
금은방에 가끔 찾아오던 미술 전공하는 대학생이 있었다. 금은방의 속내를 알 리 없는 학생은 나를 꽤 부자로 여긴 것 같다. 또, 인심 후하고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줄 것처럼 친근하게 느낀 모양이다. 여러 번 찾아다니며 내게 형이라고 부를 만큼 친해졌을 무렵이었다. 학생이 포장한 그림 한 폭을 가져왔다. 내게서 영감을 얻어 그렸다며 꼭 주고 싶다 했다. 나를 생각해 준 것만으로도 감동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얼른 그림의 포장을 풀었다.
“다음 그림을 그릴 재료가 없어서 그냥 드릴 수가 없네요. 재료값만 주세요.”
예수가 어린 양을 안고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성화를 패러디한 그림이었다. 푸른빛이 휘감아 내리는 색채와 구상이 매우 아름답고 정성이 담긴 그림임이 틀림없었다.
“재료값이 얼마인데?”
“십만 원입니다.”
결코 그림 값으로 큰돈은 아니었다. 그러나 십만 원씩이나 들여 사고 싶지는 않았다.
“기존의 성화를 모방했고 발등이 조금 이상하게 그려졌네.”
그림에 대한 나의 경솔한 평가는 학생에게 큰 상처가 되었던가? 말없이 그림을 싸 들고 간 학생은 그 뒤 한 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한 일 년쯤 지난 뒤에야 우연히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등록금 마련을 위해 그림을 팔러 다녔다고 한다. 나는 그림을 사 주지 못한 것이 몹시 후회되었다. 그림을 좋지 않게 말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오 년쯤 세월이 흘러 아파트로 입주했다.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가 성화만은 흔하지 않은 것으로 걸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작은 도시에서 색다른 성화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액자 가게나 선물 코너를 찾았지만 마음에 드는 성화는 없었다. 좋은 성구나 사려고 들른 기독교 용품점, 값싼 액자들 사이에서 아주 특별한 성화를 발견했다. 고급 액자로 표구한 성화는 그 학생이 내게 팔려고 한 그림이었다. 학생을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이 성화 얼마인가요?”
“이십오만 원입니다.”
나는 두말없이 그림을 샀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학생의 이름도 얼굴도 잊혔지만 그의 성화는 지금도 내 거실에 머물고 있다. 그림을 싸 들고 나가던 뒷모습만은 잊지 말라고 내게 이르면서…….
<좋은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