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졌구나, 시야엔 또 온통 너 뿐이다.txt

녹조라떼 작성일 15.09.01 11: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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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덕준 / 그 꽃

 

사랑하는 사람의

눈길 한 번 받고 싶어 수많은 날을

눈물로 빚어놓은 아픔일 테니

그리움을 펼쳐놓은 절규일 테니

 

그 마음, 꺾지 말아줘요.

 

 

 

 

 

 

안도현 / 봄이 올 때까지는

 

보고 싶어도 꾹 참기로 한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놓은 돌이

강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유치환 / 그리움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박희순 / 참 오래 걸렸다

 

가던 길

잠시 멈추는 것

어려운 게 아닌데

 

잠시

발 밑을 보는 것

시간 걸리는 게 아닌데

 

우리 집

마당에 자라는

애기똥풀 알아보는데

아홉 해나 걸렸다.

 

 

 

 

 

 

서덕준 / 천국

 

남들은 우습다 유치하다 한들

나는 믿는다

영원한 영혼을, 죽음 너머 그 곳을.

 

그렇다고 믿자

 

내가 늙고

어느덧 잔디를 덮어눕고

당신이 있는 그 곳에 가거든

 

한 번 심장이 터져라 껴안아라도 보게.

나 너무 힘들었다고 가슴팍에 파묻혀 울어라도 보게.

 

 

 

 

 

 

황경신 / 달리다

 

너를 만난 이후로

나의 인생은 세 가지로 축약되었다

 

너를 향해 달려가거나

너를 스쳐 지나가기 위해 달려가거나

너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달려간다.

 

 

 

 

 

 

도종환 / 칸나꽃밭

 

가장 화려했던 꽃이 가장 처참하게 진다

네 사랑을 보아라

네 사랑의 밀물진 꽃밭에 서서 보아라

절정에 이르렀던 날의 추억이

너를 더 아프게 하리라 칸나꽃밭.

 

 

 

 

 

 

이정하 / 사랑의 우화

 

내 사랑은 소나기였으나

당신의 사랑은 가랑비였습니다

내 사랑은 폭풍이었으나

당신의 사랑은 산들바람이었습니다.

 

그땐 몰랐었지요

한때의 소나긴 피하면 되나

가랑비는 피할 수 없음을

한때의 폭풍 비야 비켜가면 그뿐

산들바람은 비켜갈 수 없음을.

 

 

 

 

 

 

서덕준 / 눈싸움

 

눈을 감으면 네가 떠오르길래

잊어보려 한참 눈을 뜨고 있었지만

얼마도 못 가서 시린 눈을 감아버렸다.

 

아,

오늘도 졌구나

시야엔 또 온통 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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