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덕준 / 그 꽃
사랑하는 사람의
눈길 한 번 받고 싶어 수많은 날을
눈물로 빚어놓은 아픔일 테니
그리움을 펼쳐놓은 절규일 테니
그 마음, 꺾지 말아줘요.
안도현 / 봄이 올 때까지는
보고 싶어도 꾹 참기로 한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놓은 돌이
강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유치환 / 그리움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박희순 / 참 오래 걸렸다
가던 길
잠시 멈추는 것
어려운 게 아닌데
잠시
발 밑을 보는 것
시간 걸리는 게 아닌데
우리 집
마당에 자라는
애기똥풀 알아보는데
아홉 해나 걸렸다.
서덕준 / 천국
남들은 우습다 유치하다 한들
나는 믿는다
영원한 영혼을, 죽음 너머 그 곳을.
그렇다고 믿자
내가 늙고
어느덧 잔디를 덮어눕고
당신이 있는 그 곳에 가거든
한 번 심장이 터져라 껴안아라도 보게.
나 너무 힘들었다고 가슴팍에 파묻혀 울어라도 보게.
황경신 / 달리다
너를 만난 이후로
나의 인생은 세 가지로 축약되었다
너를 향해 달려가거나
너를 스쳐 지나가기 위해 달려가거나
너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달려간다.
도종환 / 칸나꽃밭
가장 화려했던 꽃이 가장 처참하게 진다
네 사랑을 보아라
네 사랑의 밀물진 꽃밭에 서서 보아라
절정에 이르렀던 날의 추억이
너를 더 아프게 하리라 칸나꽃밭.
이정하 / 사랑의 우화
내 사랑은 소나기였으나
당신의 사랑은 가랑비였습니다
내 사랑은 폭풍이었으나
당신의 사랑은 산들바람이었습니다.
그땐 몰랐었지요
한때의 소나긴 피하면 되나
가랑비는 피할 수 없음을
한때의 폭풍 비야 비켜가면 그뿐
산들바람은 비켜갈 수 없음을.
서덕준 / 눈싸움
눈을 감으면 네가 떠오르길래
잊어보려 한참 눈을 뜨고 있었지만
얼마도 못 가서 시린 눈을 감아버렸다.
아,
오늘도 졌구나
시야엔 또 온통 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