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을 담갔더니
목까지 차올랐다
너는 너무도 깊어
내 작은 지느러미로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육춘기/ 이 마음에 수심이 드리웠지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나태주/대숲아래서
나는 너를 잃었다
너를 잃은 것이 나는 두렵지가 않았다
잃었다고 해서
잊힐 사람은 아니었기에
백가희/그립다고 해서 외롭지 않았음을
잘 있냐고
건강하냐고
그렇게만 적는다
나머지 여백엔
총총히 내 마음을 적으니
네 마음으로 보이거든 읽어라
써도 써도 끝없는 사연을
어찌 글자 몇 개로 그려낼 수 있으랴
보고싶다
류석우/여백
그대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대 마음에 그물 쳤지만
그 그물 안에 내가 걸렸다
공광규/사랑
길 건너 숲속,
봄눈 맞는 나무들,
마른 풀들이 가볍게 눈을 떠받쳐들어
발치가 하얗다
너의 예쁜 감은 눈
너, 아니?
네 감은 눈이 얼마나 예쁜지
눈송이들이 줄달음쳐온다
네 감은 눈에 입맞추려고
나라도 그럴 것이다
오, 네 예쁜, 감은 눈,에 퍼붓는 봄눈
황인숙/봄눈 오는 밤
내 사랑은 네 사랑과 조금 달라
예를 들면 네가 눈을 감았을 때
바로 그 순간에 우주의 중심이 너에게 집중하지
요시모토 바나나/도마뱀 中 나선
나의 치유는
너다
달이 구름을 빠져나가듯
나는 네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너는 내게 그 모든 것이다
김재진/치유
자꾸 네게 흐르는 마음을 깨닫고
서둘러 댐을 쌓았다
툭하면 담을 넘는 만용으로
피해 주기 싫었다
막힌 난 수몰지구다
불기 없는 아궁이엔 물고기가 드나들고
젖은 책들은 수초가 된다
나는 그냥 오석처럼 가라앉아
네 생각에 잠기고 싶었다
하지만 예고 없이 태풍은 오고 소나기 내리고
흘러넘치는 미련을 이기지 못해
수문을 연다
콸콸 쏟아지는 물살에 수차가 돌고
나는 충전된다
인내심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기를
꽃 피는 너의 마당이
잠기지 않기를
전화기를 끄고 숨을 참는다
때를 놓친 사랑은 재난일 뿐이다
전윤호/수몰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