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 맑아지는 가을에는
달빛이 깊어지는 가을에는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에는
쑥부쟁이 꽃피는 가을에는
어인 일인지 부끄러워진다
딱히 죄지은 것도 없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가을에게
자꾸만 내가 부끄러워진다
(강인호·시인)
+ 가을
툭……
여기
저기
목숨 내놓는 소리
가득한데
나는 배가 부르다
(나호열·시인, 1953-)
+ 가을의 소원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안도현·시인, 1961-)
+ 솔로몬의 계절
가을,
황금 들녘, 천고마비
풍요의 계절입니다.
아닙니다.
추풍낙엽, 스산한 산천
슬픔의 계절입니다.
그래요.
희로애락, 풍요와 빈곤
이율배반의 계절입니다.
미묘한 생각의 차이가 삶의 무게를 달리합니다.
(이영균·시인, 1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