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별거 가정 (4) - 별거 가정, 어셈블

무럭무럭열매 작성일 22.04.04 10:06:37 수정일 22.05.02 10: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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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이 뭐야?"

"아직 이혼이 뭔지도 몰라? 이혼은 엄마랑 아빠랑 영영 떨어져 사는 거야, 바보야."

"왜 떨어져서 살아?"

"그야 당연히 같이 살기 싫어서지."

"영원히?"

"그래, 영원히!"

 

초등학교 여름방학 어느 날 사촌누나와 나눈 대화였다. 이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큰아빠와 큰엄마가 이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들의 두 딸이자 나의 사촌누나들은 이혼이라는 게 무엇인지 동생과 나에게 속성 강의를 해주었다.

 

그녀들이 말하는 이혼이란, 아빠가 더 이상 아빠가 아닌 게 되고 엄마가 더 이상 엄마가 아닌 게 되는 거였다. 만나면 항상 티격태격하기 바빴던 사촌누나들은 그날만큼은 둘이 한마음이 되어 악에 받쳐 말했다. 엄마랑 아빠가 우릴 먼저 배신한 거야. 자기들 멋대로 그렇게 헤어지면 우리 역시 멋대로 행동해도 서로 할 말 없는 거지. 안 그러니?

 

나는 큰누나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한창 저기압에 있는 누나의 말에 의문이라도 던졌다가는 남은 방학 생활이 여러 가지 의미로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방학 때면 우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는 인천 제물포에 모여서 한두 달이라는 시간을 붙어 지냈고, 방학은 이제 막 시작한 참이었다.

 

─────

 

안 그래도 맹랑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두 사촌누나는 그 사건 이후로 조금 더 맹랑해졌다. 의사표현이 확실해졌고, 큰아빠와 큰엄마에게 의견을 묻지 않았다. 그런 누나들의 모습이 어딘가 어른 같아 보였다.

 

맹랑하기보다는 맹한 편이었던 동생과 나는 누나들에게 방학 생활의 전권을 맡기고는 그들이 가자는 곳을 가고, 먹자는 것을 먹고, 하자는 것을 했다. 큰누나와 작은누나가 가끔씩 의견 차이를 보였지만, 힘의 균형이 팽팽했기 때문에 그 둘은 언제나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써놓고 보니 그들 사이에서 깨나 휘둘렸을 것 같지만, 친누나가 없는 나로서는 사촌누나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여러모로 즐거웠다. 음⋯⋯ 조금 휘둘리긴 했다.

 

엄마가 집에 들어오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던 참이었기에 나는 사촌누나들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 엄마 아빠도 이혼을 하게 될까, 하는 생각이 이따금 몸을 엄습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나는 서늘해졌다. 이혼이라는 게 어떤 건지 이제 막 알게 되었으면서도, 아직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지도 몰랐으면서도 나는 괜히 서늘해졌다. 문제가 막연할수록 감정은 뚜렷해졌다.

 

─────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엄마와 아빠는 이혼서류를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살림을 다시 합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현상 유지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당시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아빠는 말했다. 동생과 내가 엄마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안 듣게 하려고 이혼을 하지 않는 거라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아빠, 우리가 그런 소리를 듣는지 아닌지는 아빠와 엄마의 이혼 여부와는 상관없어요. 그러나 말할 수 없었다. 아빠가 상처를 받을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묻고 싶었다. 동생과 내게 좋은 거 말고, 아빠한테도 그게 괜찮은 건지. 역시나 물을 수 없었다. 아빠가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아빠는 자신의 속내를 말하기에는 너무 과묵한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당시의 엄마와 아빠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 시간을 버텼을까. 영원히 의문으로만 남을 것 같은 문제다. 그들에게는 자식을 사이에 두고 천천히 헤어지는 과정이 인생에서 다신 없을 굴레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별거 가정의 서글픈 점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어느 정도 각자의 굴레를 짊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별거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가 짊어지는 굴레는 무엇인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엄마와 아빠의 약점을 낱낱이 알아버린다는 점이다. 엄마와 아빠가 각자의 사정으로 마음을 답답하게 할 때면 나는 그들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엄마랑 아빠가 자기들 멋대로 그렇게 헤어지면 우리 역시 멋대로 행동해도 서로 할 말 없는 거지. 안 그러니?”

 

사촌누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

 

그럴 때면 제물포 언덕배기에 있는 작은 동네가 그리워졌다. 거기서는 엄마 아빠에게는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나눌 수 있었기에. 사촌누나들과 모여서 그저 철없는 장난을 하면서 놀았을 뿐이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에 닿는 동질감을 느꼈다.

 

주변 사람들은 신기해한다. 어떻게 사촌과 그렇게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 나는 그저 웃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여러 기억의 갈래가 모여서 이루어진 지금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나마 이렇게 글로 남기니 조금은 설명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앞으로는 주변 사람들이 물으면 이 글을 보여줘야겠다.

 

누나들이 생각나서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누나들이 여전히 맹랑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연락을 마쳤다. 마찬가지로 여전히 맹한 동생이 누나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누나, 앞으로도 계속 내 곁에서 맹랑하자. 우리 부디, 우리다움을 잃지 말자.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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