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클래식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클래식 음악은 악보를 충실하게 따르는 게 최우선으로 요구된다. 음악이 일단 시작되면, 클래식 연주자에게는 음악에 약간의 뉘앙스를 가미하는 정도 말고는 악보에서 벗어나는 변주는 허용되지 않는다. 클래식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이라면 연주자가 어느 구간에 어떤 방식으로 뉘앙스를 가미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그 뉘앙스조차 오묘하다.
철학자 데이비드 소로는 말했다. 구식은 모든 세대가 비웃지만, 클래식은 인류사와 함께 영속한다고. 비록 소로가 말하는 클래식은 음악 분야를 넘어선 포괄적인 개념에서의 클래식을 의미하지만, 나 역시 그가 말하는 것처럼 영속하는 가치를 믿었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은 영원한 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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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에서 악보의 변하지 않는 가치를 받들어 연주하는 것처럼, 인생 역시 무언가를 받들고 그것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만이 길인 줄 알았다.
인생이 클래식이라고 한다면 나는 ‘악보부터 잘못된 음악’이었다. 분열된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가정의 분열을 일으킨 가난까지 안은 채 ‘풍족함’, ‘자신감’, ‘만족’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먼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무언가를 연주해보기도 전에 내 1악장은 이미 얼룩져있었다. 얼룩진 악보 너머로 내 연주를 이끌어줄 지휘자조차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고, 1악장에서 좌절해버린 나는 2악장을 연주할 욕심 역시 나지 않았다.
주어진 악장을 꾸역꾸역 연주하면서도 내가 이걸 연주하는 게 맞는지, 연주가 끝나면 관객들이 내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연주에 최선을 다하지도, 연주를 그만두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이어지면서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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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은 자신의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에서 말했다.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고. 남들의 삶이 유독 비범하게 보일 때면 나는 악보―라고 생각했던 그 무언가―를 잠시 내려놓고 나만의 연주에 집중했다. 가끔은 주변 상황을 외면하고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나만의 연주에 집중하면서 알게 되었다. 인생은 클래식이 아니라는 것을.
인생은 재즈였다.
재즈는 연주 자체가 변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해진 연주법이 없다. 악보도 필요 없다. 정해진 악보를 따르기보다는 합주자와 함께 호흡을 맞춰가는 게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재즈에서는 악보, 지휘자, 합주자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변주를 찾아야 한다. 재즈를 연주하는 동안에는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재즈로 자신만의 변주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연주하는 순간의 분위기나 합주자와의 호흡에 끊임없이 집중해야 한다. 재즈는 클래식의 변하지 않는 가치와는 정반대에 있는 끊임없는 변화인 것이다.
한때 인생에서 변수는 좋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는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은 요소기는 하다. 그러나 변수는 인생에서 공기만큼 당연한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 붙잡고 있어도 소용없고 미래는 변수 때문에 예측해봤자 소용없다면, 결국 내가 통제 가능한 건 현재밖에 없다. 따라서 미래를 예측하려는 허황된 마음은 내려놓고 현재에 온전히 집중하는 자세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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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상황을 외면하고 자신만의 연주에 집중할 때면 사람들은 말한다. 스스로의 처지를 외면해선 안 된다고. 스스로의 처지를 외면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위태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의 처지를 있는 힘껏 외면하기 위해 니체의 말을 등불로 삼았다. 심연의 괴물을 바라보다 보면 자신 역시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말. 내가 무언가를 보고 있냐에 따라서 그 무언가 역시 내가 될 수 있다. 비루한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으로는 비루한 처지를 벗어나기 힘든 법이다.
따라서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결국 자신을 빛내 세상을 밝힌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현실감각이 조금씩 떨어진 사람이지 않았던가. 내 앞에 놓인 얼룩진 악보에서 눈을 돌려 이제는 나만의 연주에 집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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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에는 ‘인터플레이(interplay)’라는 개념이 있다. 인터플레이란, 재즈 연주자들 사이에서 음악으로 주고받는 대화를 말한다. 나는 이제 인터플레이하는 연주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다. 인생이라는 연주에 필요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누군가 써놓은 악보’다.
클래식이나 재즈, 그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도 든다. 결국 어느 영역에도 국한되지 않은 채 클래식이나 재즈 또는 다른 무언가로 넘나드는 게 인생이라는 변주 아닐까.
인생은 계획대로 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얼룩진 악보와 실패한 악장들은 잊고, 대신 뜻이 맞는 연주자들 곁으로 갔다. 그들의 호흡에 집중하면서 악기를 들었다. 그러자 기존의 어정쩡한 연주회는 막이 내리고 새로운 무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