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별거 가정 (5) - 아빠의 지독한 술버릇

무럭무럭열매 작성일 22.04.07 14:37:44 수정일 22.05.02 10: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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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을 좇느라 중요한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아빠가 늘 하던 말이었다. 그리고 아빠 자신도 그렇게 말한 대로 살아왔다.

 

아빠는 어릴 적부터 이른바 ‘공으로 하는 운동’에는 전부 재능을 보였다. 축구, 탁구, 당구, 볼링 등 구기 종목이면 가리지 않고 아마추어를 가뿐히 뛰어넘는 소질을 보였다. 아빠는 원래 축구선수를 꿈꿨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하는 수 없이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빠는 자신의 꿈이었던 축구선수에서 진로를 살짝 틀어 볼링장 엔지니어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볼링에 소질이 있었던 아빠는 곧 엔지니어와 볼링 강사 일을 병행했다. 거기서 아빠의 볼링 수강생이었던 엄마를 만나 내가 태어났다. 나는 일찍이 볼링장을 놀이터처럼 드나들었고, 아빠의 볼링장 동료 직원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개다리 춤을 추고 용돈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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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가 터지면서 아빠가 볼링장에 출근하는 날은 점점 줄어들었다. 유례없는 불경기로 한껏 뒤숭숭해진 분위기 속에서 볼링을 치기 위해 볼링장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아빠는 볼링장 대신 유리를 가공하는 공장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자신보다 무거운 유리판을 나르면서 힘들게 빚을 갚았고, 그 무렵부터 아빠와 엄마는 따로 살기 시작했다. 동생과 나를 데리고 홀로 남은 아빠의 나이는 이제 겨우 30대 중반이었다.

 

아빠는 지금 ‘오춘기’를 겪고 있어. 그러니까 너희는 사춘기여도 아빠 말을 잘 들어야 돼. 아빠는 술에 취할 때면 동생과 나를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 유리 공장에 다니면서 아빠는 혼자 집에서 술을 마시는 시간이 늘었다. 개다리 춤을 춘다한들 더 이상 용돈은 쥐어지지 않았고 그저 알 수 없는 잔소리만 돌아왔다. 술 먹은 아빠의 모습은 갈수록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 되었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아빠의 주정을 묵묵히 듣고는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켰다. 아빠, 세상에 오춘기라는 건 없어요. 더군다나 지금은 새벽 세 시예요. 나는 그저 아빠와 동생과 셋이 이불을 덮고 잠들고 싶어요.

 

술 먹은 아빠는 말이 너무 많았고, 아빠를 대하는 나는 말이 너무 없었다. 각자의 힘든 사정을 안고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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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술버릇을 봐온 지 어느덧 20년에 가까워졌다. 어렸을 적 나는 생각했다. 어른들은 술이 들어가면 으레 맨 정신에 하지 못 했던 얘기를 술술 꺼내고, 목소리가 커지고, 많이 들뜨는구나. 내게는 그게 익숙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술이 들어가기 전에는 말을 최대한 아끼는 부류에 속한다. 말은 꼭 필요할 때만 하고, 언제나 나긋나긋 움직인다. 마치 ‘용건만 간단히’ 원칙을 생활 전반의 영역에서 실천하는 사람 같다. 아빠의 취미는 당구인데, 언젠가 아빠는 당구를 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구를 못 치는 사람의 특징은 어깨에 힘을 준다. 당구를 잘 치는 사람이 몸에 힘을 빼듯이 웬만한 일은 몸에 힘을 빼고 해야 잘할 수 있다."

 

나는 아빠의 이런 원칙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한 번 듣고는 지금까지 마음에 담아 실천하려고 하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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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먹기 전과 후의 괴리감이 따라올 자가 없다는 점이 아빠의 술버릇의 가장 지독한 부분이다. 마치 술이라는 녀석이 마음 깊숙이 감춰진 비밀의 스위치를 누른 듯, 나긋나긋했던 아빠는 ‘용건만 간단히’ 원칙을 벗어던지고 동적인 에너지를 내뿜기 시작한다. 아빠의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마치 이탈리아 사람처럼 온몸의 제스처를 이용해서 대화한다.

 

가족이야 이제는 그런 모습이 익숙하다지만, 아내나 다른 사람에게는 아빠의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는 술이 들어가면 꼭 곁에 없는 사람을 찾는다. 오랜만에 아빠를 만나서 같이 점심을 먹던 중, 아빠는 반찬을 곁들여 술을 조금 마시더니 며느리가 보고 싶다면서 퇴근 시간에 맞춰서 아내의 회사 앞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술도 많이 안 드셨으니 괜찮겠지 싶어서 나는 아내에게 연락을 하고 아빠와 택시를 탔다.

 

우리 셋은 고깃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고기와 함께 소주를 마시던 아빠는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장인어른 얘기를 꺼냈다. 장인어른은 인테리어 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였는데, 작업 중에 사다리에서 떨어져서 몇 년 전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장인어른 얘기가 나오자 나는 급히 옆에 있던 아내의 눈치를 봤다.

 

아빠는 평소에 아내에게 장인어른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 어째서 장인어른의 죽음을 맨 정신에 안타까워할 수는 없는 걸까. “그렇게 갑자기 가셔서 참으로 안타깝다"는 말을 꼬부랑 혀로 건넬 때, 듣는 사람의 마음에 그 말이 진심으로 와 닿기는 결코 쉽지 않다. 나는 결국 아빠에게 크게 화를 냈고, 아빠는 지금껏 그래왔듯 술이 깨고 나면 오늘 있었던 일 대부분을 기억 못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답답한 마음을 부여잡고 혼자 끙끙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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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버릇은 가끔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구석이 있다. 술을 마시면 그렇게 말이 많아지는 아빠도 깊은 속 얘기는 쉽게 꺼내는 법이 없다. 유리 공장에서 주간 야간 가리지 않고 유리판을 나르면서 아빠는 매일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서른이 넘은 지금, 말하지 않아도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만한 나이가 되지 않았냐고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지만, 아빠의 마음은 아직 헤아릴 길이 없다.

 

언젠가 아빠의 손을 이끌고 동생과 셋이 볼링장에 간 적이 있다. 볼링을 쳐본 지 십 년도 더 됐다는 아빠는 무릎이 삐걱댄다며 불편해했고, 아빠 손에 알알이 박힌 굳은살은 더 이상 볼링선수의 그것과 어울리지 않았다.

 

볼링을 마치고, 동생과 나는 아빠의 모니터에 표시된 250점이라는 기록을 멍하니 바라봤다. 동생과 나는 각각 100점과 80점을 기록했다. 그런 우리를 보면서 아빠는 볼링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면서 한껏 너스레를 떨었다.

 

축구선수도 볼링선수도 되지 못한 아빠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예전에는 지독해 마지않았던 아빠의 술버릇을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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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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