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별거 가정 (7) - 하얀 바퀴벌레를 본 적 있나요

무럭무럭열매 작성일 22.04.15 09:00:24 수정일 22.05.02 10: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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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가정에서 자란 이들이 겪는 슬픔은 분열 그 자체도 있지만, 가족의 분열을 불러온 원인이 가족구성원을 오랫동안 따라다니며 괴롭힌다는 점도 있다. 우리 가족을 따라다녔던, 아니 어쩌면 지금도 따라다니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가난’이다.

 

요즘에는 성격이나 가치관이 맞지 않아서 갈등을 겪는 가족이 많다지만, IMF 세대에 한 발짝 걸쳐 있는 내가 어렸을 적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가족 갈등은 하나같이 돈 문제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우리 가족 역시 돈이 갈라놓은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IMF를 정면으로 얻어맞은 우리 집은 이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십여 년 동안 반지하 월세방을 전전했다. 생색을 내려는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느낀 점을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 집은 제법 가난했다. 비록 가난 또한 상대적인 거라지만, 바퀴벌레(이하 '바퀴')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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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였던 우리 집은 바퀴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벽에도 있었고, 천장에도 있었고, 심지어 뻔뻔하게 이불 속에서 나올 때도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학교 앞에서 실내화를 꺼냈는데 실내화 가방에서 바퀴 한 마리가 갑자기 튀어나온 적도 있었다. 바퀴가 내 가방에서 나온 게 친구들에게 들킬까봐, 학교 화단으로 도망가는 바퀴를 모두가 쳐다볼 때 나 혼자 필사적으로 모른척했던 기억도 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바퀴의 월세를 우리가 대신 내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바퀴의 습성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생존본능'이다. 예를 들면 어미바퀴는 건강할 때는 알을 낳지 않다가 자기가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처하면 자식에게 면역요인을 넘기고 그제야 알을 낳고 죽는다. 독에 걸려 죽은 바퀴의 자식들은 독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식이다. 지독한 놈들이다.

 

바퀴는 그 유별한 생존본능 때문에 상당히 '샤이'한 모습을 보인다. 웬만하면 사람들 눈에 띄는 법이 없고, 눈에 띄더라도 금세 도망칠 준비를 한다. 그중에서도 바퀴가 가장 샤이해지는 시기가 있는데, 바로 변태를 하는 시기다. 변태를 하고 있는 바퀴를 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목격했다는 사실에 약간의 자부심까지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여름날, 나는 여느 때와 같이 거실에서 티비에 나오는 각종 만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법한 예전의 티비는 요즘같이 납작하지 않고 뒤통수가 통통한 박스 모양이었기 때문에 전자레인지처럼 다리가 있고 그 밑에 낮은 틈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서 한창 티비를 보고 있는데, 티비 아래 틈 깊숙한 곳에서 하얀 벌레 한 마리가 꿈틀거리는 게 눈에 띄었다. 그 벌레는 이제 막 세상에 던져졌다는 듯이 어색하고 뻣뻣한 몸짓으로 움직여서 더욱 눈에 띄었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니 바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 바퀴는 이제 충분히 두렵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얀 바퀴를 마주하자 내 몸은 다시 징그러움에 압도되어 오금이 저렸다. 그러면서도 '쟤는 다른 바퀴보다 무언가 특별하려나' 하는 호기심에 한동안 그 녀석을 조심스럽게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하얀 색깔 외에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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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검색을 통해 하얀 바퀴는 변태를 마치고 살이 아물지 않은 바퀴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좁은 틈 사이로 옆모습만 봐서 몰랐는데, 변태를 막 끝낸 바퀴를 위에서 보면 장기가 비쳐 보인다고 한다. 내가 본 바퀴의 하얀색은 사실 투명한 색이었던 것이다. 만약 변태 중인 바퀴를 집에서 발견했다면 빠른 시일 내에 집을 탈출하라는 조언도 있었다. 변태 중인 바퀴는 정말 보기 어려운 거라고, 만약 집에서 봤다면 그 집에 바퀴가 족히 천 마리는 있을 거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인 글을 보고 나서야 검색을 마쳤다. 그 당시에 세스코가 있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우리 집에서 박멸 가스만 부지런히 터트렸던 걸 보면 당시 세스코는 없었던 것 같다. 글을 쓰는 와중에 굴러다니던 펜 뚜껑을 바퀴로 착각해 상당히 놀랐다.

 

바퀴 없는 삶에 완전히 적응한 지금,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비로소 실감난다. 이제는 가끔씩 바퀴를 마주치면 소름이 끼쳐서 가까이 갈 엄두를 못 낸다. 맨손으로 바퀴를 잡던 초등학교 시절보다 담이 약해졌다고 할 수 있다. 아내 대신 바퀴 한 마리 못 잡아서야 어렸을 때 겪은 이런 경험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펜 뚜껑에 놀라기나 하고.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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