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별거 가정 (9) - 세상에 완전한 가정은 없다

무럭무럭열매 작성일 22.04.21 08:15:05 수정일 22.05.02 10: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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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파산 신청을 하고 한동안 고민에 잠겼다. 우리 가족이 유별난 걸까. 다른 가족은 어떤 고민을 하면서 살아갈까. 나는 언제부터 다른 가족과 우리 가족을 자꾸 비교하게 된 걸까.

 

초등학교 다닐 때 반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는 집에 플레이스테이션이 있었다. 집에 마땅한 게임기가 없었던 나는 주말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친구와 함께 컨트롤러를 잡고 온갖 게임을 했다. 게임기의 주인은 친구였기 때문에 게임 실력은 언제나 친구가 우위였지만 그래도 친구와 함께 주말마다 게임을 하는 것은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보던 다른 친구에게도 플레이스테이션이 있었다. 그 친구가 자신의 집에서 티비를 받치고 있는 거실장을 열자 거기에는 엑스박스와 닌텐도까지 있었다. 거실장 안에 놓인 흠집 하나 없는 게임기들을 보자 나는 갑자기 기름진 음식을 들이킨 듯 배가 꿀렁거렸다. 부러워서 배가 아프다는 기분을 그때 처음 느꼈다. 우리집은 거실장 같은 건 없는데. 티비 밑에는 닌텐도 대신 바퀴벌레만 잔뜩 있는데. 가끔씩 하얀 바퀴벌레도 나오는데.

 

플레이스테이션과 닌텐도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내게는 없었기에. 나는 하지 못하는 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다른 사람의 성공이 동기부여와 자극제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당시 내게 타인의 성공은 내면의 결핍과 무력감만 키울 뿐이었다.

 

자기불만족은 비교에서부터 시작하는 법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일이 늘었다. 그래서였을까, 나이를 먹을수록 성숙해지기는커녕 마음 한구석이 어딘가 찌질해졌다. 그래도 스스로의 찌질함을 감지할 수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언제까지나 찌질한 사람으로 남을 수는 없어.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나는 ‘쿨’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면 쿨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게 그런 사람들은 그저 타고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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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군에서 헌병으로 군 복무를 했는데, 우리 부대의 헌병들에게 주어진 주된 임무는 위병소 경계근무를 서는 것이었다. 2인1조로 하루에 두 번, 한 번에 네 시간 씩 들어가는 경계근무에서 모든 헌병에게 주어진 공통 과제는 ‘어떻게 하면 근무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때울 것인가’였다.

 

해결책은 언제나 하나로 귀결되었다. 바로 경계근무를 같이 서는 근무자와 흥미 있을만한 이야기를 서로 최대한 터는 것이었다. 그래도 할 말이 다 떨어져서 한두 시간은 말없이 멍하니 서있다 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말발 좋은 친구가 헌병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상병이었던 나는 여느 때처럼 위병소에서 네 시간을 견디기 위해 후임과 부지런히 입을 놀리고 있었다. 어쩌다 대화는 가족 이야기로 흘렀는데, 가족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던 나는 이야기를 짧게 마치고 다시 유쾌한 주제로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후임은 그럴 생각이 없었는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기 시작했다.

 

“저는 아버지가 많이 엄격하셨습니다. 제가 왼손잡이였는데, 아버지는 왼손잡이들이 팔자가 흉하다면서 제가 왼손으로 수저를 들거나 글을 쓸 때마다 벌을 주면서 오른손으로 먹고 쓰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저번에 저보고 양손잡이는 처음 본다고 신기해하지 않으셨습니까. 저 원래는 왼손잡이입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양손잡이가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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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되어버렸다. 그 말이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차분한 목소리로 고백하는 후임 앞에서 나는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자신의 아픔을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는 방법도 있구나. 그럴 수 있는 후임의 용기가 부러웠다.

 

가족은 한때 나의 부끄러움이었다. 엄마 아빠가 떨어져 산다는 사실, 집안의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사실을 되도록이면 감추고 살아왔다. 어느새 나는 ‘척하는 인간’이 되어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부족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척했다. 후임은 성인이 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이었다고 한다. 멋있게 웃는 사람이 부러워서 닮고 싶었단다. 나는 부러운 게 많을수록 감추는 게 늘었는데, 후임은 부러운 게 많을수록 무언가를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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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어쩌다 무언가 되어버리지만, 나는 세태에 휩쓸리지 않고 직접 내 인생의 키를 잡고 싶었다. 후임과의 대화가 발단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안에 묵혀놓았던 질문들의 답을 구하기 위해 군대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 읽는 것이 아닌 내면의 호기심에 따른 책읽기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기업인은 무슨 꿈을 꾸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대통령의 청소년기는 어땠는지, 소설가의 인생은 어땠는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내 모습에 투영했다.

 

책을 읽으면서,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에는 항상 실패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에야 실패 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나는 실패를 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성공에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나를 인정해야 한다는 걸 시간이 지날수록 느낀다. 남들의 인정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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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완전한 가정은 없다.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어떤 자세로 마주하는가에 대한 문제만 남는다. 이 사실을 깨닫자 물과 기름으로만 보였던 세상과 나의 관계에 동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친구와 플레이스테이션을 가지고 놀던 순간을 기억한다. 위병소에서 후임과 깊은 대화를 나누던 순간을 기억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들의 기억이 내게로 흘러들어왔다. 그러자 기억은 비로소 추억이 되었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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