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별거 가정 (12) - 심심해서 예언자가 되었다

무럭무럭열매 작성일 22.05.06 22:3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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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친구와 놀 때도 있었지만 친구와 항상 붙어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혼자서 심심함을 해결해야 할 때가 많았다. 집에서 그림 그리는 것도 지겹고 티비 보는 것도 재미없을 때면 나는 재밋거리를 찾아서 밖을 혼자 정처 없이 움직였다.

 

나는 세상의 규칙을 찾는 놀이를 좋아했다. 그 놀이는 짝이 필요 없고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세ㆍ규ㆍ찾 놀이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어느 가을날이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도로 위의 차들을 보면서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어떻게 차들이 서로 한 번도 부딪히지 않고 착착 움직이는 거지?’

 

차들은 일사불란하면서도 서로 합을 맞춘 것처럼 움직였다. 그 모습이 신기했던 나는 차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그중 신호를 기다리는 차의 눈에서 불이 깜박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에 깜박이는 불은 오른쪽으로 간다는 신호일까? 과연, 차는 내가 예상한대로 움직였다. 깜박이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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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나는 스스로 질려서 그만둘 때까지 ‘깜박이 장난’을 톡톡히 써먹었다. 장난은 이런 식이었다. 횡단보도에서 친구와 함께 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면 나는 도로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넌지시 말했다.

 

“자, 이제 저 하얀색 차는 오른쪽으로 갈 거야.”

 

‘자, 이제’는 당시 내 말버릇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기대감을 심어주고 싶을 때면 커튼을 걷기 전 마술사의 심정으로 ‘자, 이제’를 외쳤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는 친구의 말을 뒤로하고 내가 가리킨 하얀색 차는 보란 듯이 우회전을 했다. 좌회전하는 다음 차, 직진하는 다다음 차까지 맞추고 나자 친구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친구들의 그런 표정 때문에 나는 장난을 끊을 수 없었다.

 

또 하나 즐겨하던 장난은 ‘신호등 예언’이었다. 신호등 예언은 등하굣길의 신호등 순서를 외우고 다니면서 파란불이 언제 켜질지 맞추는 장난이었다.

 

“자, 이제 십 초만 있으면 파란불이 켜질 거야.”

 

나는 역시나 친구와 있을 때면 이 장난을 곧잘 써먹었다. 친구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십 초를 셌고, 삼, 이, 일, 땡! 하면 신호등에는 어김없이 파란불이 들어왔다. 친구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 앞에서 배시시 웃으며 친구의 얼빠진 표정을 즐겼다.

 

마지막으로, 집에서 하는 ‘광고 예언’이 있었다. 티비에는 프로그램마다 ‘제공 자막’이 나오는데, 나는 그게 앞으로 나올 티비 광고를 순서대로 나열한 목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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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동생을 놀리는 것 또한 커다란 낙이었기 때문에 나는 동생에게 새로운 장난을 써먹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날 저녁, 동생과 나란히 앉아서 티비를 보던 중 나는 뭔가 생각난 것처럼 골똘한 표정을 지었다.

 

“아⋯⋯ 조금만 더 하면 알 것 같은데.”

“뭘 말이야?”

다음에 어떤 광고가 나올지 말이야.”

“정말? 오빠가 다음에 어떤 광고가 나올지 어떻게 알아?”

“광고를 분석하면 알 수 있어. 잘 봐, 다음에는 감자칩 광고가 나올 거야.”

 

그러면 다음 광고에는 얇게 썬 감자칩이 짠, 하고 등장했다. 이 장난의 비밀은 심지어 아빠조차 몰랐기 때문에 동생에게 그런 장난을 칠 때면 아빠는 내가 티비를 너무 봐서 아예 광고까지 외워버린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맞췄는지 알려달라는 동생의 애원을 물리치며 나는 만족감을 느꼈다. 동생에게 나는 언제나 얄밉지만 신통한 구석이 있는 오빠였다. 신통한 구석이 사라지면 내게는 얄미움만 남았기 때문에 신통함을 오래 보전하기 위해서는 장난의 비밀을 철저히 숨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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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는 덜하지만 당시에도 편리하고 세련된 놀거리는 많았다. 게임기나 변신 로봇을 갖고 노는 친구도 많았고, 당시에는 귀했던 컴퓨터로 게임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노는 게 부모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도로 위의 차들을 관찰하면서 길거리를 쏘다니는 게 부모가 보기에 괜찮은 놀이 방법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아이에게 바깥세상이란 더럽고 위험한 곳이다. 놀이터에서는 더럽다는 이유로 모래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우레탄이나 인공잔디가 대신하고 있고, 정글짐이나 구름사다리 같은 기구 역시 위험하다는 이유로 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에게 깨끗하고 안전한 길만을 요구하는 세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세상은 어딘가 삭막해 보인다. 어렸을 적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키운 것은 게임기나 컴퓨터가 아닌 모래더미나 정글짐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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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 조수미는 어렸을 때 엄마와 ‘셈 치기 놀이’를 많이 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였던 어느 날, 조수미가 엄마에게 크리스마스 트리가 갖고 싶다고 조르자 그녀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는 셈 치자.”

 

그날 밤 조수미는 엄마와 거실에 앉아 눈앞에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이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한다. 어렸을 적 크리스마스 일화를 말하는 조수미의 눈 역시 반짝이고 있었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한 환경에서 우리는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가진 게 없다고 마음까지 가난할 필요는 없다. 예전에는 내가 어릴 때 했던 장난들이 가지고 놀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했던 ‘생존형 시간 때우기’ 같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이런 장난들이 내 어린 시절을 진실로 풍요롭게 했다.

 

제한된 환경에서 세상의 규칙을 찾는 놀이를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 이런 환경이기에 날개를 더욱 활짝 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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