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별거 가정 (13) - 나는 아내를 7년 동안 속였다

무럭무럭열매 작성일 22.05.09 10: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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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첫사랑과 7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별거 가정에서 자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가정다운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단란하고 사이좋은, 건강한 웃음이 있는 가정.

 

감사하게도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무엇보다 유머코드가 맞는 것 같아서 그녀와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혼이 평생을 함께할 단짝을 구하는 일이라면, 유머코드는 내게 매우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평생을 함께할지 어떻게 장담하는데?" 라고 받아칠 만큼 대담한 유머를 구사할 줄 알았고, 나는 그게 꼭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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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아내와 막 사귀어 서로를 알아가던 시절, 우리는 카페에서 연애경험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돌한 성격이었던 아내는 내가 어림잡아 다섯 번째 남자라고 먼저 밝혔다. 이어서 내가 말할 차례가 되었는데, 나는 네가 처음이야, 라는 말이 선뜻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내가 연애에 서투른 모습을 보일 때마다 '경험이 없어서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아내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쳤기 때문이다.

 

알고 있다. 당시 나는 치기 어린 자격지심이 있는 이십대 초반의 평범한 학생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네가 두 번째’라고 거짓말을 했다.

 

사실 이 거짓말이 처음은 아니었다. 군복무 시절, 연애는 해봤냐는 선임의 도발적인 질문에 나는 반사적으로 해봤다고 대답했고, 옆 학교에서 1년 좀 안 되게 사귀었던 동갑내기 친구 '김수진'이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학교로 돌아와 첫사랑에게 같은 거짓말을 반복했던 것이다.

 

아내는 내 말을 순순히 믿어주었다. 그게 다행이라도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연애 경험이 없다는 치부를 들킬 위험에 처하자 나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육하원칙으로 짜인 거짓말을 술술 뱉어냈다. 거짓말이 사람을 작게 만드는 순간은 바로 이런 순간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거짓말을 믿는 사람 모두 거짓말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진실의 바닥에 닿을 때까지 천천히, 그리고 예외 없이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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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결혼할 때가 되어 아내와 나는 가족과 친구를 만나면서 부지런히 청첩장을 돌렸다. 예비 신부가 된 아내는 내 동생과 고등학교 동창에게 남편이 연애하는 걸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예전의 남편은 어떤 식으로 연애를 했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예전의 나는 애인은커녕 친하게 지낸 여자조차 없었으므로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런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고, 그럴 때마다 아내는 '흐음' 하는 반응이었다. 나는 몰래 연애를 했기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은 내가 연애한 사실을 모를 거라고 아내에게 이미 밑밥을 깔아둔 상황이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다는 사실을 나는 굳이 몸으로 부딪혀 배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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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미리 구한 신혼집에 누워 있는 아내를 보면서 나는 이제 진실을 고백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사다난한 일을 거친 7년의 연애 끝에 약속한 결혼이었다. 나는 아내를 무려 7년을 속였던 것이다.

 

아내의 컨디션도 괜찮아 보이고, 우리를 괴롭히는 일도 없이 평온했던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가 첫사랑이라고 말했던 수진이라는 아이 있잖아, 사실은⋯⋯ 연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어서 지어낸 거짓말이었어. 사실은 네가 내 첫사랑이야. 속여서 미안해."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아내에게 이 사실을 고백할 당시에는 정말 떨렸다. 아내는 어느 면에서는 사랑보다 신뢰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예를 들어 한쪽이 바람을 피우면 상호 간의 믿음이 깨진 것이기 때문에 서로 붙잡고 늘어질 필요 없이 '결혼이라는 계약'을 파기하고 깔끔하게 갈라서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당시의 고해성사는 내가 먼저 신뢰를 어겼음을 고백하는 순간이었고, 나는 아내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전혀 예상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누운 채로 가만히 나의 고백을 들은 아내는 내 말을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는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짧게 괜찮다고 말했다. 자신을 속였다고 소리치지도 않았고, 배신감에 젖어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다.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지도 않았다. 괜찮은 거구나. 나는 안심했다.

 

이게 뭐라고 결혼을 약속한 사람을 지금껏 속여 왔을까. 아내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고백을 마친 나는 아내 옆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는 나를 보고 웃었다. 다시는 아내에게 이런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는 좋은 거짓말만 해야지. 나른한 분위기가 방을 감싸고 나는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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