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노트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번 시집은 이병률 시인의 ‘바람의 사생활’입니다. 2008년에 샀던 책이니 이젠 꽤 오래된 시집이라 할 수 있겠네요.
당시 스무살이었던 저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우울을 시로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때였습니다.
그렇게 토해내는 글을 쓰다 문득 다른 시인들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처음으로 공부와 관련 없는 한국시집을 사보았습니다.
그게 이병률 시인의 ‘바람의 사생활’ 이었어요. 처음엔 제목에 끌렸습니다. 바람이 사생활이 있다면 외롭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책을 읽어보았는데, 수록된 이 ‘거인고래’라는 시를 보고 정말 많은 위안을 얻었어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읽고 있으면 왠지 석양에 거인고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한 남자가 떠오릅니다. 그를 보며 나의 거인고래도 지나가길, 그리고 그처럼 거인고래의 뒷모습을 아무말 없이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지금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