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보는 유튜브] 안나 카레니나

로오데 작성일 21.12.28 1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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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

 

국림중앙도서관 선정 청소년 권장도서,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뉴스위크>선정 100대 명저, BBC 선정 꼭 읽어야 할 책

 

 19세기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 톨스토이, 그가 남긴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 위선, 질투, 신념, 욕망, 사랑 등 인간의 감정과 결혼, 계급, 종교 등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 구조에 대한 톨스토이의 모든 고민이 집약된 걸작

 

 스테판 공작이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운 사건 때문에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기자, 그의 여동생 안나 카레리나는 이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모스크바로 온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고위 관리의 아내로, 한 아이의 어머니로 행복하게 살던 아름다운 여인 안나는 이곳에서 만난 브론스키 백작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브론스키는 스테판의 처제 키티에게 구애하던 중이었으나 그 역시 안나에게 빠져든다. 키티는 브론스키의 청혼을 기다리며 점잖은 귀족 레빈의 청혼도 거절했지만, 안나가 브론스키와 함께 하는 모습을 보고 절망한다. 레빈 역시 키티에게 거절당한 후 낙담하여 시골로 돌아간다. 한편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는 그들 가족은 물론 러시아 사교계에서도 커다란 과장을 일으키고 둘은 사회에서 싸늘하게 외면당한 채 외국으로 떠난다.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 자신의 신념, 종교나 농민 문제 등에 대한 그의 고민이 잘 드러나 있는 소설이다. 특히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농민과 토지에 대해 고민하는 레빈에게 작가의 모습이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 톨스토이는 문학뿐 아니라, 철학과 종교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 준 사상가로 평가받는데, 그의 어린 사유가 [안나 카레니나]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톨스토이가 이 작품에서 보여 준 ‘의식의 흐름’ 기법은 이후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포크너 등에게로 계승되었다.

 

 

 

  1.  1. 톨스토이에게 소설은 무엇이었는가

 

 영국의 사상 벌린은 인간 톨스토이에 대해 세계를 움직이는 제1원인을 찾고자 했던 사람이라고 평한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삶과 세상을 작동시키는 원리를 이해하고 싶어 했다. 나아가 자신과 인류에게 주어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에 답하고 싶어 했다.

 

 톨스토이가 창조한 세상과 인물에는 작가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등장인물들이 유독 많다. [유년 시절]의 네클류도프, [어둠 속의 서광이 비치다]의 사라친, [전쟁과 평화]의 피에르,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 [부활]의 네프류도프 등.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야는 [안나 카레니나]의 1부를 읽고 “로바, 레빈은 재능을 뺀 당신이군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은 대부분의 독자들로 하여금 앞에서 언급한 주인공들이 곧 톨스토이라고 믿고 싶게끔 만든다. 그러나 작자 톨스토이가 자신을 닮은 주인공 한 명을 자신의 대변자로 삼았다는 견해, 작품을 톨스토이의 삶의 직접적인 반영으로 보는 견해는 톨스토이가 소설 속에 인물을 통해 하고자 했던 작업의 의도를 왜곡할 수 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모습을 레빈 외에도 여러 인물들에게 분배한다. 전통이 오래된 류릭 가문의 후예임을 자랑스러워하고 많은 지식을 거느린 스티바, 도박에 중독되다시피 한 아쉬빈, 예술은 기법의 모방이 아닌 ‘자연에서 덮개를 떼어 내는 행위’라고 말하는 화가 미하일로프, 말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브론스키에서도 톨스토이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즉 톨스토이는 자신과 가족의 삶, 혹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낱낱이 요소로 분해하여 그가 창조하는 여러 인물들의 제료가로 뒤섞였다고 해서 그를 톨스토이와 일치시킬 수는 없다. 톨스토이는 그에게 고유한 시공간에서, 레빈은 그에게 고유한 시공간에서 각자 삶이 부여하는 과제와 요구에 충실히 응답하려 한 개별적인 인격이다.

 

 그렇게 작자 톨스토이는 레빈과 안나를 비롯한 무수한 등장인물들의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목적, 즉 세계를 움직이는 제1원일을 탐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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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백작(러시아어: Граф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영어: Leo Tolstoy 또는 Lev Nicolayevich Tolstoy, 1828년 9월 9일 ~ 1910년 11월 20일)은 러시아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1828년 톨스토이 백작 집안 넷째 아들로 툴라의 아스나야 폴리냐에서 태어남. 아버지 니콜라스 일리치는 퇴역 중령, 

         어머니는 마리야 니콜라예브나는 볼콘스키 공작 집안 출신

 

1830년 여동생 출산으로 인해 어미니 사망.

 

1833년 맏형에게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비밀이 새겨져 있다는 ‘푸른 지팡이’ 이야기를 들음.

 

1836년 푸슈킨의 시 [바다에], [나폴레옹]을 암송하여 아버지를 감동시킴.

 

1837년 1월, 모스크바로 이사. 6월 21일 아버지가 툴라의 거리에서 졸도하여 급사. 고모인 오스첸 사켄 부인이 

         남은 아이들의 후견인이 됨.

 

1841년 가을, 오스텐 사켄 부인의 사망으로 새로이 후견인이 된 고모 펠라케야 일리치나 유슈코바를 찾아 카잔으로 감.

 

1844년 9월 20일, 카잔 대학교 동양어 대학 아랍, 터키어과에 입학. 사교계에 출입하며 난잡한 생활을 함.

 

1845년 진급 시험에 떨어져 법과대학으로 전입.

 

1947년 3월, 임질 치료를 위해 입원. ‘철학과 실천을 종합한다’라는 인생 방침을 세움. 일기를 쓰기 시작 루소, 고골, 

         괴테의 작품을 읽음.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과 예카체리나 여제의 [훈령]을 비교 연구. 4월 11일, 

         후견인의 관리 하에 있던 양친의 유산을 형제들과 누이의 협의 하에 분할. 야스나야 폴랴나 외에 마을 네 곳을 

         상속받음. 4월 12일 카잔 대학교 중퇴, 고향인 야스나야 폴랴나로 돌아감.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 

         농노들의 계몽과 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나 농노제 사회에서 그의 이상은 실현되지 못함. 이후 삼년간 일기도 

         쓰지 않음. 뒤에 중편 [지주의 아침] 가운데서 그 시절의 일을 그림.

 

1848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모스크바에서 방탕한 생활을 함.

 

1849년 4월, 페테르크부르크 대학교에서 법학사 자격 검정 시험을 치러 두 과목을 합격했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귀향.

 

1850년 6월 11일, ‘난잡하게 지낸 삼년’을 반성하고 위해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

 

1851년 3월, [어제 이야기] 집필. 4월 맏형 니콜라이가 있는 카프카스로 가 군대에서 병사로 근무.

 

1852년 1월, 사관 후보생 시험을 쳐 4급 포병 하사관으로 현역 편입. 5월 [유년 시절]탈고 네크라소프의 추천을 받아 

         그가 주재하는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9월부터 연재, 작가로서의 첫발을 내딛음. 12월, [침입] 탈고

 

1853년 체첸인 토벌에 참가. 일가에서 전쟁에 대해 비판,9월, [득점 기록원의 수기] 탈고

 

1854년 1월, 소위보로 임명됨. 3월 [소년 시절] 발표, [러시아 군인은 어떻게 죽는가] 탈고 11월, 세바스토폴리 도착.

 

1855년 단편 [12월의 세바스토폴], [5월의 세바스토폴] 탈고. 11월,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 투르게네프, 네크라소프, 

         콘차로프, 오스트로프스키, 페트 등 <동시대인> 동인들의 환영을 받음.

 

1856년 3월, 퇴역 [1855년 8월의 세바스토폴리], [눈보라], [두 경기병], [강등병] 탈고 7월, 발레리야 아르세나예바를 

         만나 3년 간 사귀었으나 결혼하지 못함.

 

1857년 1월, [청년 시절] 발표, 유럽으로 처음 여행을 떠나 7월에 귀국, 야스나야 폴랴나에 살며 농사를 지음. 

         [루체른] 탈고.

 

1858년 농부인 아크시냐와 관계를 맺음. [세 죽음] 탈고.

 

1859년 러시아 문학 애호가 협회 회원이 됨. 농민의 아이들을 위해 야스나야 폴랴나에 학교를 세움. [결혼의 행복] 집필.

 

1860년 3월, 최초의 교육 논문 [아동 교육에 관한 메모와 자료] 집필. 7월, 외국의 교육제도를 시찰할 목적으로 

         서유럽 여행 떠남.

 

1861년 9개월 남짓 유럽 여러 나라의 교육 시설을 시찰하고 4월에 귀국, 2월 19일 발표된 농노 해방령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평가. 교육 잡지 <야스나 포랴나> 간행. 5월 투르게네프와 불화가 심화짐. 이듬해 까지 농사 조정원으로          활동하나 농민 측에 산다는 이유로 지주들의 반감을 사 사임.

 

1862년 5월, 바슈키르 초원에서 마유주 요양. [훈육과 교육] 완성. 7월, 부재중 가택 수색을 당함. 시의 베르스의 둘째 딸 

         소피아 안드레예브나(당시 18세)와 결혼. 10월, 그의 교육 잡지에 편향에 대하여 내무 장관이 관계 기관에 경고.

 

1863년 1월 <야스나야 폴랴나> 휴간. 3월 [폴리쿠슈카]발표. 9월, [전쟁과 평과] 기고.

 

1864년 8~9월. [톨스토이 저작집] 1, 2권 간행. 사냥 도중 말에서 떨어져 오른손을 다침. 모스크바에서 수술을 받음.

 

1865년 [전쟁과 평화] 첫 부분이 ‘1805년’이란 표제로 <러시아 통보>에 실림.

 

1866년 11월 10일. ‘ 1805년’ 2부 속편을 발표하면서 본제를 ‘전쟁과 평화’로 결정.

 

1867년 가을, [전쟁과 평화] 집필을 위해 보로지노의 옛싸움터 시찰, [전쟁과 평화]를 두 권으로 나누어 출판.

 

1868년 5월 [전쟁과 평화에 대한 몇 마디 말] 발표.

 

1869년  [전쟁과 평화] 에필로그 완결.

 

1871년 [초등 교과서] 1편 간행.

 

1873년 3월 [안나 카레니나] 집필 착수. 7월, 아내와 함께 사마라 지방으로 가 빈민 구제 사업에 힘을 씀. 

         [읽기와 쓰기 교육 방법에 관하여]를 <모스크바 신문>에 게재. 11월, [톨스토이 저작집] 전 8권 출간. 

         12권으로 된 [초등 교과서] 간행. 12월, 과학 아카데미의 준회원이 됨.

 

1874년 [새 초등 교과서] 편집.

 

1875년 [카프카스의 포로], [신은 진실을 보나 이내 말하지 않는다], [표트르 1세] 집필, 1월 <러시아 통보>에 

         [안나 카레니나] 연재 시작, 6월, [새 초등 교과서] 간행. [러시아어 독본] 전 4편 출판.

 

1876년 전년에 이어 아동 교육에 전념. 12월, 차이코프스키와 알음알이가 됨.

 

1878년 1월, [안나 카레니나] 단행본 출간. ‘제카브리스트’연구를 위해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로 감. 4월, 

         투르게네프에게 화해 편지를 보냄. 5월, [최초의 기억]을 쓰기 시작. 8월, 투르게네프가 야스나야 폴랴나를 방문.

 

1879년 7월, 야스나야 폴랴나에 민화 이야기꾼 쉐골론ㅅ크 방문. 그의 이야기를 토대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두 노인], 등 민화를 씀. 11~12월, 가르신과 레핀을 알게 됨.

 

1880년 2월, [교의신학 비판] 집필. 3월, [4복음서의 합일과 번역] 기고, 가르신이 찾아옴. 

         6월, 모스크바 푸슈킨 상 제막식 불참.

 

1881년 2월, 도스도예프스키의 부고를 접하고 슬퍼함. 4월, [요약 복음서] 완성. 

         7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탈고, 9월, 가족과 함께 모스크바로 이주.

 

1882년 모스크바의 민세 조사에 참가. 5월, [고백]을 완성하여 <러시아 사상>에 발표하나 발행 금지됨. 

         7월, 돌고 하모브니키에 집을 삼.(뒤에 톨스토이 박물관이 됨). 10월, 헤브라이어를 배워 구약성서를 읽음. 

         12월, 톨스토이의 종교적 저작을 위험시하는 포베도노스세프의 검열 강화.

 

1883년 4월, 야스나야 폴랴나 저택에 화재 발생. 5월, 아나에게 재산 관리를 맡김. 

         7월, 파리의 잡지에 [요약 복음서]가 실림. 10월, 체르트코프와 알음알이가 됨.

 

1884년 [나의 신앙은 무엇에 있는가] 탈고, 당국에 압수당했으나 사고로 나 돎. 

         2월 공자와 노자를 읽음. 3월 [미치광이의 일기] 기고, 6월, 아내와의 불화로 가출 시도. 

         11월, 비류코프가 찾아와 체르트코프와 함께 민중을 위한 출판사 ‘중개인’을 설립하려고 함.

 

1885년 1월, <러시아 사상>에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게재, 판매 금지됨. 

         2월, 키슈노프에서 톨스토이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최초의 병역 거부자가 나옴.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사유재산을 부정. 이로 인해 아내와 불화가 심화되고 그 결과 모든 저작권을 아내에게 양도, 

         3월 이후 ‘중개인’을 위해 많은 민화 집필, 10월, [고백], [요약 복음서], [나의 신앙은 무엇에 있는가]를 

         체르트코프가 역역, 런던에서 출간, 11월, [홀스토메르] 발표.

 

1886년 2월, 코롤렌코 찾아옴. 3월,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 탈고, 5월, [최초의 양조자] 발표. 11월, [문명의 열매] 집필.

 

 

내용이 너무 길어지는것 같아서 연혁을 점프 하겠습니다.

 

 

1910년 1월, 문집 [인생의 길] 전편 완성. 2월, 단편 [호드인카], [마을의 사흘 동안] 완성. 5월 세계 평화 회의에 초청 받음.          아내의 히스테리로 가출. 6월, [무심결에] 집필. 7월, 숲속에서 다시 유언장을 씀. 8월, 가족 몰래 유언장을 작성한            것을 후회. [독서의 고리]에 수록된 모파상의 [고독]을 읽음. 부인이 톨스토이의 장화 속에서 [자기 혼자만을 위한            일기]발견. 부인과 나란히 최후의 사진을 찍음. 10월 4일, 열과 두통, 식욕부진, 불면으로, 5일, 간장의 통증으로 고          통받음. 7일, 체르트코프 방문, 부인, 히스테리 일으킴. 27일, 아내에게 이별의 편지 초고를 쓰고 승마를 함. 28일 오          전 4시, 마코비스키와 딸 알렉산드라를 깨워 채비를 하고 마코스비스키를 데리고 가출. 오프치나 수도원, 샤모르지          노의 여동생 집에 머묾. 31일 샤모르지노에서 기차로 남쪽으로 향하던중 오한으로 아스타포보 역에서 하차. 역장의          관사에서 자리에 누움. 11월, 폐렴 진단을 받음. 7일(신력 19일) 오전 6시 5분 영면. 유체는 9일 이른 아침 야스나야          폴랴나로 운구되어 고별식 뒤 ‘푸른 지팡이’가 묻혔다는 숲에 묻힘.

 

 

 연혁을 간추려야 하는데 가끔 디테일한 부분도 느껴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올려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러시아 문학을 좋아 합니다. 

전개가 빠르거나 스릴을 느낀다기 보다는 잔잔한 시베리아속에 인간의 모습이 참 좋습니다.

 

플라톤아카데미TV 에서 석영중 교수(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께서 안나 카레리나를 강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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