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에 대한 8가지 철학적 고찰
나는 이 커피를 보고'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손을 뻗어 마시고 ‘이 커피는 맛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질(몸)과 정신(마음)은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까요?
미국의 철학자 로더릭 치좀(1916~1999)의 그림은 물질과 정신, 몸과 마음 사이에 관계에 관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이론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한 8가지 이론을 살펴게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
데카르트는 물질과 정신, 몸과 마음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라고 봤어요. 그렇다면 둘은 어떻게 연결될까요? 데카르트는 몸과 마음이 두뇌의 송과선이라는 부분에서 만나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이 커피를 보는 물질적 사건이 뇌의 송과선을 통해서 나의 정신에 영향을 미쳐서 ‘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사건을 일으키고, 또 이것이 송과선을 통해서 이 커피를 마시는 물질적 사건을 일으키고. 또 이것이 다시 나의 정신에 영향을 미쳐서 ‘이 커피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사건을 일으킨다는 것이죠.
심신이원론(상호작용론) : 물질과 정신, 몸과 마음은 분리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
헉슬리의 부수현상론
영국의 생물학자 줄이언 헉슬리(1887~1975)가 주장한 부수현상론이란 물질은 정신에 영향을 미치지만, 정신은 물질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존재하긴 하지만 물질의 부수적인 현상이 라는 것이죠.
우리는 뇌에서 아드레날린이 많이 나오면 흥분하고, 세토닌이 많이 나오면 행복해지고, 도파민이 많이 나오면 쾌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흥분한다고 뇌에서 아드레날린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행복하다고 세로토닌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쾌감이 도파민을 만드는 것은 아니에요.
부수현상론에 따르면, 내가 이 커피를 보는 물질적 사건이 원인이 되어 ‘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사건이 발생하고, 내가 이 커피를 마시는 사건이 원인이 되어 ‘이 커피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사건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물질적 사건은 정신적 사건에 영향을 미치지만, 정신적 사건은 물질적 사건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죠.
부수현상론 : 물질이 정신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유물론
길을 가다가 맹수를 만나면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미친 듯이 달려 도망칠 것입니다. 허벅지 근육은 격렬하게 끓임없이 움직이고, 심장은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하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땀을 비오듯 흘리겠죠. 여기에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정말로 있나요? 그런 거 없어요. 근육이 긴장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숨이 가빠지며, 땀을 흘리는 것을 공포라는 감정으로 뭉뚱그려서 말하는 것 뿐이에요.
불안한 사람이 심장 박동을 느리게 하는 약을 먹으면 불안이 줄어들고, 실연으로 슬픈 사람이 진통제를 먹으면 슬픔이 잦아져요. 불안이나 슬픔처럼 순전히 정신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도 사실은 우리 몸의 상태에 달린 물질적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직 물질만이 존재할 뿐 정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는 입장이 유물론입니다.
유물론적 입장에서는 내가 ‘이 커피를 본다’는 물질적 사건이 침샘을 자극하는 물질적 사건을 일으키는데, 우리는 이것을 ‘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사건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죠.
유물론 : 정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물질만 존재한다.
관념론
가장 단순한 형태의 관념론으로 설명해볼게요. 관념론에 따르면, 내가 보고 있는 이 커피는 진짜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뇌가 감각자료를 받아들여 떠오른 관념일 뿐이에요.
관념론 입장을 받아 들이면 물질은 존재한다 고 할 수 없고, 존재하는 것은 모두 관념일 뿐입니다. 내가 이 커피를 보는 것도 사실은 물질적 사건이 아니라 정신적 사건이고, 내가 이 커피를 마시는 사건도 정신적 사건일 뿐입니다.
관념론 : 물질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정신만이 존재한다.
스피노자의 이중측면론
스피노자는 실체는 자연 단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즉, 물질과 정신은 자연이라는 실체가 드러나는 속성일 뿐이라고 합니다.
이중측면론의 입장에서는 내가 이 커피를 보는 물질적 사건과 ‘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정신적 사건은 하나의 사건입니다. 하나의 사건이 물질적 방식, 정신적 방식으로 달리 드러난 것일 뿐입니다. 물질과 정신이 굳이 만날 필요도 없어요. 둘은 원래부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중측면론 : 물질과 정신이 사실은 하나인데. 그것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심신평행론
심신평행론은 물질은 물질에만 영향을 주고, 정신은 정신에만 영향을 준다는 입장입니다. 물질과 정신은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죠(스피노자를 심신평행론자로 보는 입장도 있습니다).
심신평행론을 받아들이면, 이 커피를 보는 물질적 사건을 일으키고,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사건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물질적 사건과 정신적 사건이 어떻게 평행하게 딱 맞아떨어지죠?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회원인론과 예정조화설입니다.
심신평행론 : 물질과 정신은 각자 알아서 움직인다.
기회원인론
프랑스의 철학자 니콜라 말브랑슈(1638~2715)는 물질과 정신이 딱 맞아떨어지는 이유는 신이 물질과 정신을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이 내가 이 커피를 보는 물질적 사건을 보고, 내 정신에 ‘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정신적 사건을 일으키고, 또 신이 이러한 정신적 사건을 보고 내가 몸을 움직여서 커피를 마시는 물질적 사건을 일으키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커피를 마시려는 의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신이 내 몸을 움직여서 마시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기회원인론 : 신을 매개로 정신과 물질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예정조화론
라이프니츠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나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나드는 다른 모나드로부터 영향을 받지도 않고 주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내가 이 커피를 보는 물질적 사건,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사건, 마시는 사건, ‘맛있다’고 생각하는 사건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모든 사건들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신이 제때에 일어나도록 이미 예정해놓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정조화설은 시계방의 비유로 쉽게 설명이 됩니다. 시계 가게에 가면 모든 시계들의 시간이 다 맞죠. 가게 주인이 처음부터 시계를 똑같이 맞추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은 모든 사건을 이미 다 맞춰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입니다.
예정조화설 : 정신과 물질이 이미 세팅되어 있다.
이제 물질과 정신, 몸과 마음, 뇌와 생각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철학적 이론을 살펴봤어요. 여려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어떤 설명에 공감이 가나요? 아니면 자신만의 더 좋은 설명이 있나요?